[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인구 120만을 갓 넘긴 울산은 자동차·선박·석유제품 등을 생산해 해외시장에 수출, 국내 경제를 견인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공장'이다.

제조업의 막강한 생산·수출 능력은 울산에 '개인소득 1위 도시'라는 타이틀을 안겼고, 이런 풍요로움은 환경과 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며 다른 도시의 시샘을 얻고 있다.

그런 울산이 심상찮다. 공장을 분주히 돌려도 수출이 뒷걸음질치고, 아예 일거리가 없어 발만 구르는 기업도 있다. 3대 산업을 축으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울산 제조업의 영광도 심상치 않은 수출 감소세와 함께 이전에 없었던 위기론을 마주하고 있다.

◇'불황형 흑자' 늪에 빠진 울산…처참한 '수출 성적표'

울산세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울산의 무역수지 누계는 231억6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연간 가장 많은 흑자 폭을 기록한 2011년의 109억 달러를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12월 수출과 수입도 비슷한 추세를 보일 전망이어서, 흑자폭은 더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보통 수출이 수입을 웃돌아 흑자가 쌓이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수출이 제자리걸음 하거나 뒷걸음치는 가운데 수입이 급락하면서 흑자 폭이 커지는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출 우등생'이었던 울산의 근래 수출 관련 성적표는 참담하다. 한국무역협회 울산지역본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 울산의 수출액은 675억 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5년간 1∼11월 수출 실적을 보면 2011년이 925억 달러로 가장 많았다. 이후 3년간은 900억 달러 선을 밑돌았지만 2012년 892억 달러, 2013년 837만 달러, 2014년 855만 달러로 800억 달러 선은 훌쩍 넘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보다 21.1%가 급락, 700억 달러도 아닌 600억 달러대에 머무는 것이다.

울산의 위상도 변했다. 국내 전체 수출에서 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1∼11월) 13.9%까지 떨어졌다. 울산 비중은 2005년 15.9%를 기록한 이후 2014년까지 한 번도 1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자체별 수출 순위에서도 울산은 2004∼2007년 4년 연속 2위를 차지했고, 2008∼2012년 5년 중 4년(2010년은 2위)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3년부터 올해까지는 경기에 1위를 내주고 3년 동안 2위로 내려앉은 상태다.

◇3대 산업 축 모두 '삐걱'…석유화학은 '반 토막'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울산의 3대 산업 가운데 단연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석유화학이다.

석유제품 수출량은 올해 1∼11월 2880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 감소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 145억 달러로, 작년보다 47.5%나 급감했다.

석유화학제품도 올해 수출량은 683만t으로 작년보다 22.4% 줄었지만, 수출액은 67억 달러로 43.4%나 떨어진 수준을 보였다.

올해 울산의 전체 수출에서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수출액은 2.8%만 감소했다는 점이 석유화학산업의 처참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런 부진은 대외적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산업 특성 때문으로, 특히 국제유가가 작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지면서 수출 단가가 덩달아 하락한 영향이 크다. 이 밖에 중국과 중동의 설비 증대와 자급률 상승, 셰일가스 확대 등이 수출량에 악영향을 미친 것도 요인이다.

조선산업은 선박 인도가 늘어나면서 1∼11월 수출액이 139억 달러로 작년보다 20.1% 증가,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올해 현대중공업의 저조한 수주량이 반영되는 2∼3년 후 수출이 뚝 떨어지는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191억 달러의 수주 목표를 세웠지만 11월까지 실적은 목표치의 64.6%에 불과한 116억 달러에 그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조원의 적자를 낸 이 회사는 올해 3분기에 8976억원 영업손실을 내는 등 올해도 조 단위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내수 판매가 호조를 보인 자동차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미국과 중국 등 거대시장 부진과 러시아와 브라질 등 신흥국 침체로 11월까지 현대차의 해외시장 판매량은 381만6908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했다.

이 때문에 울산의 자동차 수출액도 11월까지 147억 달러로 작년보다 4.5% 줄었다. 이 기간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22억 달러로 작년보다 22.2%나 급락했다.

◇올 수출 700억 달러대 그쳐…"내년도 어렵다"

한국무역협회 울산지역본부는 올 초 발표한 '2015년 수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울산 수출이 873억 달러로 작년(927억 달러)보다 5.8% 감소하며, 900억 달러 선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로선 900억 달러는 고사하고 800억 달러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2011년 1015억 달러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1천억 달러를 돌파할 때와 비교하면 불과 4년 만에 처량한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산업현장에서는 '울산경제 위기론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27일 "올해는 저유가에도 정제마진(원유 1배럴을 공정에 투입했을 때 공급 단계에서 얻는 이익)이 높아서 영업이익이 좋았지만, 당장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중동의 공격적인 진출로 수출시장에 공급이 넘치면 그나마 유지하던 수출 규모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장병익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생산공장을 갖춘 울산은 원자재를 많이 수입해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이 이상적이다"면서 "제품 수출이 감소하고 원자재 수입이 급락해 '불황형 흑자'가 나타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수출 위기가 단순히 경기 순환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대외적·구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당장 반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심준석 무역협회 울산본부장은 "내년에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완만히 회복되면 교역량도 늘어나 울산 수출도 증가세로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보합세를 보일 국제유가의 영향으로 최대 수출품목인 석유와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큰 폭으로 회복하기는 어려워 전체 수출도 소폭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고 내다봤다.

차의환 울산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대외적 여건이 국내 산업이나 울산 수출에 유리하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면서 "기업들 스스로 사업 재편이나 성장 동력 개발 등 위기 대응과 활로를 모색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년에 당장 수출이 늘거나 부가가치가 창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