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조국애'라 가르치는 문학교과서…국가정체성 흔들어
   
▲ 황인희 『잘생겼다 대한민국』 저자

애국가와 태극기는 독재의 상징이 아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프랑스 의회에서는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가 두 번이나 울려 퍼졌다. 1월과 11월, 무장단체 IS의 테러를 당했을 때마다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국가를 불렀다. 11월 파리 테러 때 수만 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시민들이 대피할 때도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질서를 유지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들이 국가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프랑스 의회에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퍼진 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97년 만의 일이라니 말이다.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군가로 만들어진 라 마르세예즈는 가사가 호전적이고 선동적이며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깔려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의회에서 불리지 않았다.

이런 일화는 국가(國歌)의 역할에 대해 훌륭한 사례를 제시한다. 국가는 당파와 이해관계를 떠나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존재이다. 나라가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민의 힘을 모으고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라고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의 힘이다. 국기(國旗)도 마찬가지이다. 국기를 폄훼하는 사람은 그 나라 국민이라 할 수 없다. 국기나 국가는 특정 정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문학 교과서에서는 예전에 극장에서 애국가를 들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을 ‘강요된 조국애’라고 가르치고 있다. 1987년에 발표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다루면서 말이다. 본문 가운데 특히 애국가의 가사가 직접 인용된 “대한 사람 대한으로 / 길이 보전하세로”라는 대목에 밑줄을 그어놓고 거의 모든 학습 자료가‘강요된 조국애를 상징한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 1980년대에 쓰인 시의 상황을 오늘까지 적용해 태극기와 애국가의 가치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사람들, 그들이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등을 돌리라고 학생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사진=미디어펜

이 시가 발표된 1980년대 후반에 여러 가지 강압적인 정책이 시행됐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황지우 시인은 극장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답답한 시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시대적 절망감을 ‘주저앉는다’라는 표현으로 드러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인의 답답함이나 절망감이 애국가나 태극기에 경의를 표했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또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일어나서 애국가를 듣는 것이 청산해야 하는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그때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자유는 있었고 다 같이 따라 부르도록 강요된 것도 아니다. 단지 애국가가 연주되고 화면 전체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으니 일어나서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국가 정체성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이다.

필자가 문학 교과서를 고발하면서 언제나 전제로 두는 것은 작품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그 작품을 교과서에 골라 싣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작품에 접근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다.

11종 문학 교과서에 실린 현대시들을 풀이해놓은 <해법문학-현대시>(천재교육)에는 “애국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관객들은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맹목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시의 민중들을 의미한다”라고 해설되어 있다. 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의 서정적이고 화려한 영상은 그것이 꾸며낸 현실이고 어리석은 국민들을 지배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에 의해 교묘하게 포장된 것임을 고발하고 있다”라고도 해설했다.

이 해설대로라면 그 시절 극장에 가서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길 가다가 국기 하기식 시간이 되어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경의를 표했던 사람은 모두 ‘맹목적인 삶’을 살았거나 ‘우민화에 넘어간 어리석은 국민’이 된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애국가나 태극기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 자체를 어리석은 일로 여기며 자라게 된다. 이런 해설을 통해 당시 정권은 물론 그 당시를 살았던, 지금 학생들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까지도 한꺼번에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 2015년 한 해 동안 프랑스 의회에서는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가 두 번이나 울려 퍼졌다. 1월과 11월, 무장단체 IS의 테러를 당했을 때마다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국가를 불렀다. 현재 우리나라 교과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사진=천재교육 문학참고서 표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인성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 인성 교육 안에 국가 정체성 교육이나 어른 공경 등에 대한 교육이 담겨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한편에서는 인성 교육을 강조하면서 한편에서는 애국가나 태극기에 대한 경의를 부정하고 앞선 세대를 멍청한 세대로 만드는 교육이 진행된다면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행태나 다를 바가 없다.

프랑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조국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국민이 애국가나 태극기 아래 하나가 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에 쓰인 시의 상황을 오늘까지 적용해 태극기와 애국가의 가치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사람들, 그들이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등을 돌리라고 학생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황인희 『잘생겼다 대한민국』 저자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