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97)- 영생의 허욕에 대한 날카로운 깨우침
『길가메시 서사시』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인에게 성서와도 같았다. 그리스 문화의 원형이자, 서양 정신문화의 시원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원전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 속에서 신과 자연,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대서사시는 인간의 다양한 삶과 당대의 사유방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 1천 5백여 년 앞서 만들어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 또한 인류가 남긴 위대한 문학 작품들에 견주어야 할 것 같다. 이 오리엔트의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고대 동양적 삶과 사상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 문명은 에게 해의 섬 크레타는 물론, 맞은 편 연안의 소아시아 지역과 내륙의 메소포타미아의 글과 문화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흡수하면서 형성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 신화나 초기 시에서 보여주는 동양적 요소 또한 연구자들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 가운데 『길가메시 서사시』 는 단연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메소포타미아에 산재했던 여러 민족 가운데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수메르족의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기원전 2천년 경에 수메르어로 진흙 토판에 기록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수메르 문명의 원초적인 문학작품인 이 서사시는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암송으로 전해져 왔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인류 최초, 최고(最古)의 서사시로 인정받는다.

이 서사시의 주인공은 길가메시다. 그는 기원전 3천 년 대 초반 존속했던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 우룩(Uruk)의 첫째 왕조의 다섯 번째 통치자였다. 길가메시는 3분의 2는 신이요, 3분의 1은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인한 육체와 완력을 갖췄고 축성술에 뛰어났다. 이 서사시는 절대 권력과 용맹을 지녔던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시가 겪는 도전과 모험, 영생을 추구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숙명적 좌절을 그리고 있다.

   
▲ 우룩의 성벽 유적
백성의 자애로운 목자여야 할 길가메시는 색욕이 지나쳐 나라에 처녀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여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이러한 백성들의 원망의 호소에 응답하여 창조의 여신 아루루(Aruru)는 길가메시의 난폭한 패행을 제어하기 위해 엔키두(Enkidu)를 창조하여 내려 보낸다.

동물 떼와 함께 자라고 생활한 야만인 엔키두는 인간을 초월하는 야성과 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길가메시가 보낸 여자와 사랑을 나눈 후 동물들로부터 배척받고 인간 사회로 내려오게 된다. 엔키두는 길가메시의 두 번째 자아(自我)를 상징한다. 그는 길가메시와 대결한다. 길가메시는 엔기두에 가까스로 승리한 후 난폭한 성질이 사라졌다.

이후 길가메시는 엔키두에게 우정을 느껴 의형제를 맺게 되고, 둘은 새로운 모험에 함께 도전하는 운명의 대전환을 맞는다. 그들은 우룩으로부터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한 삼나무 숲으로 여행의 길을 떠난다. 온갖 고난과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태양의 신 사마시(Shamash)의 비호를 받아 숲의 수호자인 훔바바(Humbaba)를 죽이고 삼나무 벌목에 성공한다.

하지만 길가메시를 유혹하다 모욕을 당한 전쟁의 신 이시타르(Ishtar)와 신들의 저주를 받아 자기 수족과 같던 엔키두가 죽게 되고, 길가메시는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진다. 결국 자신만은 영원한 생명을 반드시 찾겠다며 두 번째 모험을 홀로 떠나게 된다.

길가메시는 <머나먼 곳>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을 만나 영원한 생명의 비법을 얻고자 광야를 방황한다. 우트나피시팀은 대홍수를 피해 유일하게 살아남아 신들로부터 영생(永生)을 얻은 유일한 인간이었다. 길가메시는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험난한 모험 끝에 우트나피시팀을 만나 영생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한다. 우트나피시팀은 이렇게 대답한다.

“먼 옛날부터 영구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든 자와 죽은 자, 그것은 얼마나 비슷한가! 잠든 것은 색칠한 죽음과 같다. 주인과 종이 운명을 다했을 때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지하세계의 재판관 아눈나키(Anunnaki)가 와서 운명의 어머니 맘메툰(Mammetun)과 함께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삶과 죽음을 주었으나 죽음의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우트나피시팀은 인간은 필멸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음을 갈파한 것이다. 그럼에도 길가메시가 영생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조르자, 그는 6일 낮 7일 밤을 잠자지 않고 견뎌 내야 한다는 숙제를 준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잠의 안개에 굴복하여 일곱 밤 동안 잠에 빠지고 만다. 이후 길가메시는 간청하여 간신히 우트나피시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가 일러주는 대로 길가메시는 바다 밑 신비의 식물에 난 영생의 꽃을 얻게 된다. 하지만 돌아오던 중 방심한 틈에 뱀에게 한 순간에 영생의 꽃을 빼앗겨버린다. 길가메시는 허무한 심정으로 빈손으로 고국 우룩으로 귀환하고 얼마 후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길가메시의 서사시를 읽노라면 역사와 신화가 여러 상징으로 혼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야기의 배경 시대와 장소가 명확하지 않고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기원전 3천년 경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실재했던 우룩 왕조의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역사적 실재성을 보여주는 대목도 적지 많다.

예를 들어 삼나무 숲 모험도 습지와 초원의 열대지방으로 재목과 광물이 나지 않던 우룩과 산림을 갖고 있던 동쪽 고지의 아랏타(Aratta) 사이의 갈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길가메시가 산림지대의 토착세력을 물리치고 삼나무 벌목에 성공한 자체가 당대에는 충분히 숭배할만한 영웅적 행위였을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로부터 1000km 떨어진 현재의 레바논 지중해 연안까지 가서 삼나무를 벌목해 오는 수메르인들, 기원전 7세기경의 부조
우트나피시팀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들려주는 홍수이야기도 후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노아의 방주(Noah's ark)’ 이야기와 아주 흡사하여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의 논란거리가 되었다. 편자 샌다아즈는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수메르의 홍수 설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독립적 설화로 내려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홍수가 잦았고, 유사한 설화가 그 지역을 넘어 중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점에는 이론(異論)이 없는 것 같다.

이 시에 나타난 수많은 신들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양태는 다양하다. 신은 의인화되어 시기하고, 분노하며, 기뻐하고, 질투하며, 징벌한다. 또 자연에 대한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갖고 있던 인간들이 이러한 신들과의 교감을 통해 삶을 영위하던 고대 사회의 가치관과 습속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수메로족이나 셈족이 섬기는 신들의 복잡한 계보나 이들의 역할과 특징에서, 훨씬 후대에 그리스 신화에서 활약하는 신들과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수메르인이 섬긴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인안나(Inanna)와 셈족의 이시타르(Ishtar)는 그리스 신 가운데 아프로디테와 아테나 여신의 복합적인 상징을 갖고 있다. 또 수메르인이 신들의 아버지로 섬긴 아누(Anu)는 그리스 신 제우스에 해당된다.

이 서사시가 전해주는 핵심적 교훈은 아무리 뛰어난 영웅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다. 엔키두와 길가메시의 영웅적 삶도 필멸(必滅)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엔키두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빠져 자신만은 영생을 얻어야겠다는 허욕과 자만으로 무모한 모험에 도전한 길가메시에게 역리(逆理)의 결과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려 한 것은 아닐까.

불로초를 구하려 애쓰던 진시황도 길가메시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영생을 얻기 위해 광야를 떠돌던 길가메시에게 젊은 여인 시두리(Siduri)는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평범한 행복을 즐기라고 충고한다. 이는 내세보다 현실의 평범한 삶을 더 중시하던 수메르인들의 인생관을 대변해줄 뿐만 아니라, 후세 인간에게도 주고자 한 깨우침이 아닌가싶다. 영생할 수 없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행복은 소소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길가메시여, 어디로 급히 가려 하십니까? 당신이 찾으려는 생명은 찾지 못할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그들은 인간에게 죽음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게 남겨 두었습니다. 길가메시여, 당신에게 충고를 드리죠. 좋은 것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낮으로 밤으로, 밤으로 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 줄 어린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안에 꼭 품어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박경귀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추천도서: 『길가메시 서사시』, N. K. 샌다아즈 판독, 이현주 옮김, 범우사(1978), 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