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북한 고위간부들의 잦은 교통사고 사망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김양건의 사망 다음날 바로 공식 발표했고,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의위원회가 꾸려져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는 판단에 무게가 실리지만 고위층의 잇단 교통사고 사망 때마다 타살설 의혹이 가시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고위간부들끼리 암투를 벌이던 중 교통사고로 위장해 반대세력을 제거했다는 것으로 김정일 때부터 당과 군을 번갈아 내세우면서 숙청을 일삼는 통치 스타일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김양건의 교통사고와 관련해 북한 당국이 밝힌 내용은 “김양건이 29일 6시15분 73세의 일기로 서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것이 전부이다. 사고의 구체적인 경위 및 장소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북한 매체가 고위층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보도할 때마다 똑같은 행태였다.

이에 대해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에서 간부들이 지병으로 사망하는 경우와 달리 교통사고 사망에 대해 자세한 경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교통사고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위간부가 지병으로 사망할 경우 병명까지 상세히 공개해온 북한 당국이 유독 교통사고 사망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실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위간부들은 대개 김정일이 주재하는 비밀파티에 참석했다가 새벽까지 과음한 상태로 직접 운전해서 귀가하던 중에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고위층의 비밀파티라는 게 대개 은밀하게 이뤄지기 마련이고 이곳에는 고위간부라도 운전기사를 대동하지 않고 직접 운전하게 된다.

이럴 경우 사고 유형도 고위간부가 탄 차량이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추돌하거나 추락하는 것이지만 가해차량이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에서 교통사고를 내서 고위간부를 사망케 한 누군가가 체포됐다는 보도가 있었던 경우도 없었다. 때만 되면 고위간부가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소식을 굳이 상세하게 알리고 싶지 않은 당국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0일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9일 오전 6시15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소식통은 “사실 북한의 도로 상황이 사고가 날 정도로 교통량이 많지 않은 데다 포장도로가 아닌 경우에는 속도를 내기도 힘들어 설령 사고가 난다고 해도 사망에까지 이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따라서 “고위간부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 대다수는 음주 상태에서 혼자 차를 몰다가 혹은 밤늦게나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사고가 나거나 지방에서 평양으로 오던 중 운전수가 깜빡 졸아서 벌어지는 사고가 많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간부들의 음주운전도 문제지만 신호를 무시하거나 과속하는 난폭운전도 문제이다. 지난 2006년에도 장성택은 평양시내 사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다가 사고를 낸 일이 있다고 한다. 당시 장성택이 탄 차량은 정차해 있던 차와 부딪쳤고, 이 때문에 장성택은 보름간 입원했었다.

고위간부들의 교통사고가 날 때마다 이를 보도하는 북한 매체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으니까 타살설 등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부터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위간부들이 여럿 있었고, 사고가 난 뒤에는 어김없이 숙청설, 암투설이 일곤 했다. 이번 김양건의 사망도 위장 교통사고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과거 전임 대남비서였던 김용순이 똑같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김용순도 김양건처럼 대남비서와 국제비서를 동시에 맡아 수행할 정도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2000년 6.15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합의서 서명식 등에 참석했고, 2000년 7월 김정일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선언을 조인할 때에도 김정일을 수행했다. 김용순은 2003년 6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다가 같은 해 10월 결국 사망했다.

과거 고위간부들의 교통사고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랫동안 의혹을 샀던 것은 2010년 6월 리제강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죽음이었다. 리제강 사망의 배후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이 있었다. 리제강은 당시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리제강의 죽음은 당시 김정일의 선군사상에 반발하는 당 간부들과 권력을 키우려는 군부 사이의 갈등이 발단이 된 것으로 관측됐다. 실제로 김정일이 중앙당이 담당하던 호위사업과 만수무강사업, 기초과학연구소를 그 산하로 이관시키면서 당의 권력이 축소되자 당과 군부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권력이 커진 군부가 당에 대한 간섭을 일삼자 리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 겸 본부당 책임비서를 중심으로 하는 불만세력이 커져갔고, 급기야 리제강이 김정일의 선군영도에 반발하고 김정은의 후계세습에까지 불만을 표출했다는 전언이 있다. 따라서 리제강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김정일의 승인 하에 계획적인 암살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정일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위간부는 2009년 12월 리철봉 강원도당 책임비서도 있다. 김일성 때에도 1987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새벽에 차를 몰고 귀가하다가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일이 있다.

이번 김양건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미국에서도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렉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고위층들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최고위층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할 때 뿐”이라며 의아해했다. 조지아대학의 박 모 교수도 같은 인터뷰에서 과거 김용순 비서의 사망을 언급하며 “북한 고위층들이 불명확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나 정보 당국은 김양건 비서의 사인에 대해 “단순한 교통사고로 추정된다”면서도 “첩보 자원을 동원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북한의 발표대로 단순 교통사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유는 “김양건이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인물인 데다 특별히 이권사업에도 개입한 적이 없어 교통사고를 위장한 암살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31일 김양건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30일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빈소를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면서 “김정은 동지께서 김양건 동지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충실한 방조자, 친근한 전우였다고 말하고, 싸늘하게 식은 혁명 동지의 시신에 손을 얹으시고 오래도록 격한 심정을 누르지 못해하셨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