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상처에서 벗어나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부국 극일’의 계기로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게 달린 ‘위안부 소녀상’

합의는 끝났지만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이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적혀있을 뿐 명시된 바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소녀상 이전 발언에 대해 외교부는 4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당연하다. 위안부 소녀상은 민간이 알아서 해야 하는 사안이다. 때문에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도 소녀상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정대협 등 일각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두고 “지켜야 한다”, “철거는 막겠다”라며 자신의 주장을 토로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언사다. 이전에 노력하겠다는 외교적 수사를 남겼을 뿐 정부는 소녀상을 어떻게 할 의사가 없다. 박원순 시장과 정대협은 반일 정서에 기댄 언론플레이를 벌인 것이다.

위안부 사죄, 합의의 전말

1998년 일본 정부에 위안부 배상책임을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했던 김대중 정부 이래로 일본 정부는 위안부1) 자체를 부정해왔다. 이로 인해 지난 세월 한일관계의 불협화음은 상존했다. 이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가택 연금했던 노무현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와서 비로소 위안부에 대한 합의로 갈무리되었다. 2015년 일본 아베 총리가 위안부 사안에 대해 직접 인정하고 사죄했다.

지난 2014년 “고노회담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까지 발언했던 아베 총리다. 아베의 극언으로 인해, 우리 정부에게는 20년 넘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표명해온 입장, 즉 고노회담2) 내용을 재확인하고 이를 준수하라고 요구할 의무와 권리가 생겼다. 그래서 협상을 전개한 것이고, 일본 내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결국 박근혜 정부에게 백기를 들었다.

이것이 팩트고 위안부 스토리의 끝이다. 나머지 잡다한 주장들은 반일정서 유지를 통해 한일외교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는 정대협 등의 시민단체, 일본 정부 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더 미워하는 세력의 선동이다.

   
▲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상처와 분노의 상징에서 그친다. 다시는 망국의 아픔을 만들지 말자는 경각심, 또 다시 망국의 바보 정치를 하지 말자는 반성, 망국의 앞잡이 노릇 했던 과거 조선 말기 선비 벼슬아치 같은 이가 되지 말자는 결의를 우리 스스로 다져야 한다./사진=MBC뉴스 영상캡처

분명히 하자. 김영삼 정부 이래로 지금까지 한일관계에서 위안부 문제가 가장 예민한 사안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위안부에 대한 이번 한일 합의는 ‘상처 치유’가 목적이 아니다. 자발적이지 않고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3)가 전체 위안부 중 20%라 하지만, 강제 징용되어 성착취 당했던 당사자 개인의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는 고노회담을 재확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부 개입에 의해 강제징용이 있었음을 재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 정부의 세금 지원을 약속했다. 지금껏 ‘일본인’ 위안부에게도 배상하지 않았으며, 관련 퇴역 군인에게 미지급 급여인 퇴직금 지급도 없음을 원칙으로 했던 일본이다. 일본이 이런 원칙을 깨고 조선인 위안부를 위해 일본 정부가 세금으로 기금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합의는 ‘최종적’, ‘불가역적’이다. 이 용어는 우리보다 일본에게 치명타다. ‘일본 국내 극우 여론에 밀려 일본 정부가 고노회담을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약속한 것이다.

위안부 소녀상, 반일을 지나 극일로

구분은 똑바로 하자. 한일 정부 간의 합의와 민간이 세운 소녀상은 별개다.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대로 좋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정부 소관이 아니라 민간에게 달린 문제라지만, 치외법권 지역인 외국 대사관 앞에 이런 구조물을 놓은 전례는 전 세계에 유일하다.

반일 좋다. 하지만 그 반일 정서를 갖고서 뭘 어떻게 해결하나. 전쟁을 벌여 승전국 입장에서 일본을 무릎 꿇리고 복수를 하지 않는 이상, 소녀상은 온갖 반일정서와 분노를 쏟아내는 우리나라만의 상징이며 일본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구조물이다. 일찍이 미디어펜 조우석 주필은 “식민지 시절 피해자들의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고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좋으나 그걸 반일 히스테리로 펼치는 게 온당한가” 물은 바 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위안부 소녀상은 (한의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과거 일제의 망령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의식의 발로다.

과거사에 따른 지속적인 분노 배출과 ‘절대로 끝나지 않는’ 사죄 요구는 능사가 아니다. 분노에 찬 우리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 우리가 힘이 없어 강탈당했던 주권, 그로 인해 고초를 겪었던 그분들의 사례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국제사회는 배려와 양보로 이루어지는 따뜻한 세상이 아니다. 힘이 통용되는 리얼리즘의 세계다.

   
▲ 위안부를 부정했던 아베의 극언으로 인해 우리 정부는 협상을 전개했다. 일본 내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결국 박근혜 정부에게 백기를 들었다./사진=SBS뉴스 영상캡처

위안부가 군부 개입 아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자백 받았고 이에 대한 사죄 또한 받았다.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성은 지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상처는 어떤 것으로도 씻겨지지 않는다. 후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며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감히 제안한다. 결의의 시작은 민간이 나서서 소녀상을 청와대 앞마당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이전하는 것이다.4)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든, 과거의 고초와 상처를 잊지 않고 ‘부국’에 매진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다.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상처와 분노의 상징에서 그친다. 다시는 망국의 아픔을 만들지 말자는 경각심, 또 다시 망국의 바보 정치를 하지 말자는 반성, 망국의 앞잡이 노릇 했던 과거 조선 말기 선비 벼슬아치 같은 이가 되지 말자는 결의를 우리 스스로 다져야 한다.5) 소녀상의 이전은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부국 극일’의 계기가 될 것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1) “위안부와 정신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정신대는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있었던 여성 노동 동원 체제다. 일제는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을 발동하여 12~40세 미혼 여성을 산업 현장에 강제 동원했다. 반면 위안부는 그 전부터 일본군 주둔지에서 발생한 여성들의 성 착취 제도다. 대부분 조선인 민간업자에게 위탁 경영되었고, 일본군과 총독부가 알선과 도항증 발급 등으로 적극 협조했지만 위안부 모집은 위안소 조선인 경영주나 그 대리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 인터뷰. [2004.11.30 시사저널]

2) 1993년 이래 일본 정부는 고노회담을 계승해왔다. 고노회담은 “조선인 위안부 모집에 군부가 개입되었고 강제성이 있었다”면서 “이에 대해 사죄하고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3)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정신대는 여성 근로자를 말하는 것이고,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성´을 제공한(빼앗긴) 여성들을 말한다. 위안부는 ‘종군위안부’와 ‘일본군위안부’ 두 종류가 있다. 자발적이지 않은,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이 후자, 일본군위안부에 해당된다. 현재 국내에 있는 위안부 중 자신과 같은 ‘일본군 위안부’는 20%뿐이며, 나머지 80%는 ‘종군위안부’다. 이 통계는 내가 직접 전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증언을 통해 분석한 결과다. 지난 2002년 이미경 한나라당 의원은 의정활동보고서에서 ‘자신은 4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 이 간담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명이었다. 국회의원이 숫자까지 부풀려 가면서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심미자 무궁화회장 인터뷰. [2005.04.16 독립신문]

4) 이는 신백훈 농협대학교 겸임교수가 2015.12.30과 2016.1.4 본지 칼럼 지면을 통해 앞서 주장한 바 있다. 신백훈 교수는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국회의사당 앞으로 옮기자', '위안부 협의, 소녀상이 국회의사당으로 가야 하는 까닭은?' 칼럼을 통해 “소녀들이 끌려 갔을 때 우리 국민들은 뭘 했는가? 식민지 국민이라서 할 일이 없었는가?”라면서 “대사관이 아니라 청와대, 국회 앞의 소녀상을 보면서 정치인 지식인 군인이 반성하고 온 국민이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5)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국회의사당 앞으로 옮기자’ 신백훈 농협대 겸임교수. [2015.12.30 미디어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