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세상사라는 게 일정한 패턴에 의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①A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②A를 성토하는 기사가 해일처럼 쏟아진다. ③결국 A는 물러난다. ④이번엔 A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어난다. ⑤A에 우호적인 목소리들이 또 한 번 쏟아진다.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의 사퇴 이후 현재의 여론은 ⑤의 초입을 관통하고 있다. 정명훈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를 품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한계에 대한 성토가 조금씩 고개를 드는 중이다.

지난 3일엔 홍형진 소설가가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게재했다. 제목은 ‘유죄와 혐의 사이.’ 이 글은 정명훈이라는 예술가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복합적인 감정을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다.

홍 씨는 “그간 이야기된 대부분의 내용이 여전히 혐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유죄로 확인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해 “전 대표(박현정)의 인권유린 행위는 있었다”고 단언한다.

정명훈 예술감독 측에 불리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수사에 대해서 이 글은 “판단 시점을 뒤로 미뤄야 한다”고 말한다. “정명훈과 헤어지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고 하기도 했다. 표변하는 세상민심과 저열한 언론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 글을 쓴 홍형진 소설가와 한겨레신문에게 묻고 싶다. 서울시향 사태가 처음으로 불거진 2014년 12월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혐의’만으로 박현정 대표가 전 국민의 마녀가 되어버린 그 순간에는 왜 유죄와 혐의 사이에서 면밀한 구분을 하며 판단 시점을 뒤로 미루자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 박현정의 인권과 정명훈의 인권에 차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명훈과 헤어지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당시 박현정 전 대표와 관련된 사건이 빅이슈가 됐던 데에는 독특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남자직원을 성추행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한때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의 사례로 활용되기까지 했던 이 혐의는 그러나 지난 8월 ‘무혐의’로 결론 났다. 심지어 정명훈 감독 주변에서 성추행 혐의를 ‘만들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다는 새로운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여자 직장상사의 성추행’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결코 여론의 과도한 관심을 받을 일도, 유죄와 혐의 사이에서 길을 잃고 한국 언론의 수준을 떨어트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만약 누군가가 이런 사정을 역이용해 여론전을 펴기 위한 공작을 펼쳤던 ‘혐의’까지 포착됐다면, 반대편 여론에 가속도가 붙는 건 밀물 다음 썰물이 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애초부터 서울시향 직원들이 발표한 익명의 투서에는 허술하고 의심스런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러한 정황에 대한 글을 2015년 1월 발표했을 때 나는 ‘박현정에게 얼마 받고 이런 글을 썼냐’는 메일을 몇 통이나 받았다.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한 대접이 그럴 정도의 폭력적인 분위기였으니 당시 박 전 대표의 인권이 어느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졌을지는 굳이 첨언할 필요도 없다.

박현정의 인권과 정명훈의 인권에 차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명훈과 헤어지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 감독에 비해 인맥도 명성도 부족한 박현정에 대한 처사야말로 그 당시 그런 식으로는 곤란해 보였지만, 평소 인권의 소중함을 강변하던 그 누구도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