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분야 협력 절실…북핵 위협 함께 해결해 나가야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지난 12월 29일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타결함에 따라 이를 통해 양국이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특히 6일 북한의 수소폭탄 핵실험으로 남북뿐만 이ㅏ니라 전 세계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이 있다.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새로운 한일관계 설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7일 서울 프레스센터 무궁화실에서 열린 바른사회의 ‘새로운 한·일 관계,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새로운 한·일 관계 모색에 대하여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한·일 안보협력에 관하여 김태우 건양대 교수(전 통일연구원장) ▲한·일 경제협력에 대해서 최창규 명지대 교수가 각각 발표했다. 각 발제에 대해서는 박인환 건국대 교수와 이지수 명지대 교수가 토론을 펼쳤다.

남광규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이번 합의가 한·일 간 모든 갈등 요인을 해결한 것도 아니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통을 온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지만,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해 나갈 하나의 계기이자 출발점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광규 교수는 “아베 총리 취임 후 가장 전향적인 자세와 내용을 담은 만큼 이를 시작으로 갈등 속에서도 신뢰와 협력을 바탕한 발전적 방향으로 관계를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래 글은 남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새로운 한·일 관계 어떻게 나갈 것인가

작년 12월 28일 한·일 간 오랫동안 풀기 어려운 과제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한·일 양국이 구두합의에 이르러 마침내 위안부문제를 타결했다. 1991년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지 24년 만의 결실이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합의내용을 전하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런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하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밝혔다. 기시다 외무상을 통해 아베총리는 위안부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혀 사과와 사죄를 거부하던 이전과는 다른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했다.

이번 한·일 간 위안부문제 타결로 한·일 간 갈등 요인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 간에 해결할 문제들이 많고 새로운 갈등들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2001년 한·일 월드컵 이후 가까워졌던 한·일 관계가 그동안 정체, 퇴보했다가 다시 양국이 성숙한 관계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크게 보면 이제부터 한·일 양국은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서로 손을 잡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불행했던 한·일 관계가 앞으로는 갈등 속에도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한·일 관계는 더 이상 “가까고도 먼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올 해가 바로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1. 구두 <한·일합의문>의 내용

지난 달 28일 한·일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문에서 밝힌 구두 합의문의 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 측의 표명사항으로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2)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 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한다. 3) 일본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2)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또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

한국 측의 표명사항은 1)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정부가 상기 1.2)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고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한다. 2)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3) 한국정부는 이번에 일본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

   
▲ 청와대는 지난 12월 31일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와 사회혼란을 야기시키는 유언비어는 위안부 문제에 또 다른 상처를 남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2. 합의문 내용의 평가

이번 한일 합의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문제와 관련해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아베총리가 분명한 사죄와 반성을 한 것은 아베 총리 취임 이후 가장 전향적인 자세와 내용을 담은 것이다. 특히 아베총리의 사죄는 위안부문제와 관련해 언급한 1993년의 고노담화와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표현 수준이다. 적어도 아베로부터 기대할 수 있었던 내용이상이며 그동안 우리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과, 사죄를 한 것은 위안부문제에 대한 아베 수상의 달라진 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위안부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부분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법적 책임과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책임과 일본군의 관여를 말함으로써 외교적 수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법적 챔임과 강제성에 대한 완곡한 내용을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사안이지만 그동안의 한·일 간 입장과 외교적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이번 합의는 한·일 양국이 현재 합의할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한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번 합의내용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아픔과 고통을 온전히 해소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반드시 풀고 가야 할 한·일 간 현안에서 이 만큼의 내용이 나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아베 수상 내면에 있는 진정성까지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보여주었던 위안부문제에 대한 아베 수상의 인식에 비하면 매우 전향적인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이 이처럼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이번 합의에 임한 것은 위안부문제로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는 것이 아베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고 한·미·일 3각 공조 회복을 위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 위안부를 ‘성노예’로 표현하는 등 위안부문제와 관련한 미국 내 여론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14년 4월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일본의 위안부문제를 ‘끔찍하고도 지독한 인권침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까지 일본의 책임을 뼈아프게 지적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동맹국가로 협력을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범죄행위인 위안부문제는 인류 보편의 인권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합의내용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런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한다고 한 점, 아베총리가 위안부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 한다”고 밝힌 점은 간접적으로 일본의 위안부 강제 모집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일본 정부가 10억 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내용상 배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배상이라는 표현을 하게 되면 일본의 법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와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이전문제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에 소녀상 이전을 우리 정부가 결정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소녀상 이전문제를 갖고 국내정치에 이용하게 되면 소녀상 이전문제는 자칫 국내정치의 정쟁에 악용되는 큰 ‘화약고’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현실적 제약 속에서 잘 타결한 합의내용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내용이 아닌 소녀상 이전문제 때문에 국내 정치국면이 바뀔 수도 있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소재로 악용할 경우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상 이전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 우선 위안부할머니들의 의견을 중시하고 시간을 두고 소녀상 이전문제도 전향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일이 위안부문제를 외교적으로 타결했음에도 소녀상이 계속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것은 타결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위안부할머니들과 관련한 공식 시설물을 설치한다고 하니 잘 타협되어 소녀상을 그 쪽으로 이전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합의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쳐 미해결된 위안부문제가 그 동안의 논의들 중 가장 발전한 내용으로 합의된 점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점은 합의 직후 대만을 비롯해 위안부문제와 관련된 국가들이 일본에 대해 관련 협상을 요구한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역대 정부들이 하지 못했던 요구들을 모두 다 관철시키려는 것은 위안부문제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한·일 관계를 파탄 내려고 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합의를 반일반정부의 소재로 선동하는 데 악용하거나 일부 한·일 언론계에서 합의내용과는 상관없는 근거 불명의 언론 보도들을 통해 한·일 양국 국민들을 자극하는 행위들을 삼가야 할 것이다.

3. 새로운 한·일 관계의 계기가 되어야

이번 합의로 2015년 내에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한·일 정상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제 한·일 양국은 그동안 냉랭했던 양국관계를 2016년 올해부터는 서서히 풀어나가야 한다. 사실 위안부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독도에 대한 자국 영토 주장 등 그동안 한·일 관계가 막혔던 주요 원인은 일본 때문이었다. 이번 위안부문제 타결로 한·일 간 갈등 요인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양국이 성숙한 관계로 나갈 수 있는 계기는 일단 마련되었다.

돌이켜보면 한·일 관계는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2013년 12월 아베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위안부문제로 인해 한·일 관계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양국 모두 더 이상 과거사문제로 한·일 관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한·일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될 경우 경제·안보협력 분야에서 까지 완전히 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졌다. 한·일 관계 파탄은 양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알듯 현재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이 차지하는 전 세계 경제 비중은 20% 가까이 이르고 있으며 세계 3대 경제권으로 3국간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나 역사, 정치안보에서의 갈등으로 경제적 상호협력이 발전하지 못 하는 것은 동북아 3국의 ‘페러독스’라 할 수 있다. 동북아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이 커져가는 반면 과거의 유산과 분출하는 민족주의가 동북아가 처한 현재의 딜레마다. 성장하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 발생하는 힘의 변화과정에서 정치, 군사적 갈등 요인들, 역사분쟁 및 북한 핵문제와 같은 부정적 유산들이 현재 동북아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문제 타결을 계기로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함께 한·일은 미래의 공동발전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 크게 보면 이제부터 한·일 양국은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서로 손을 잡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불행했던 한·일 관계가 앞으로는 갈등 속에도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한국과 일본은 공동번영과 21세기 동북아 평화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지닌 객관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부의 역사 부정과 독도 영토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하겠지만 일본과의 경제적·안보적 협력은 필요하며 시민사회 및 학생·문화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 특히 북핵문제 및 한·미·일 대북공조체제 강화를 위해서도 일본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의 정책변화에 대해 너무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한 과민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면 한국 주권이 금방이라도 침해될 것처럼 반응하는 것도 현실과는 다른 지나친 억측이다. 미일안보체제는 일본의 독자적인 군사대국화를 견제하는 기능이 있으므로,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미일동맹의 대일 견제적인 성격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헌법 개정과 집단적자위권 문제 등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주권 사항이며, 이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일본은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 속에서, 한미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이 미일동맹을 맺고 있는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선택한 일본에 대항하여 한국이 중국과의 안보협력을 택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한미일 3각 동맹을 통해 일본은 미국의 안보에 의존하면서 경제발전에 매진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한국도 급속한 경제개발정책을 통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발전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군사역할 증대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간에 불안 요인 축소 및 최소한의 신뢰구축을 위한 다각적 대화 채널을 열어두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는 일본을 포함한 다양한 다자안보협력체 구축 노력을 주도하며 대북억제력 강화를 위해 한·미·일 사이데 강하면서도 효율적인 안보협력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남북한 유사시 대응의 주축은 한미동맹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와 같은 상황에도 미일동맹의 후방지원 역할은 필수불가결이다. 유엔사(United Nations Command) 후방기지가 모두 일본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내 해·공군기지를 원활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 틀을 더욱 보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는 역내 인구 7억 8,000만 명, 명목 국내총생산(GDP) 26조 6,000억 달러, 교역규모 10조 2,000억 달러의 거대 경제동맹체를 포괄하고 있다. 일본과 세계 시장에서 자동차, 조선, 전자반도체, 철강, 화학 등 주요 제품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우리나라로서는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TPP 후속 가입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4. 일본은 신뢰받는 선진문명국으로 21세기 동북아와 세계에 기여해야

지금 세계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면서 21세기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 동북아 지역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 일본은 ‘동아시아 속의 일본’ 보다는 ‘서구와 미국과 함께 하는 일본’의 방향으로 국제관계를 추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동북아 이웃 국가들과 전쟁을 했고 식민 지배를 통해 동북아에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동북아가 국제사회의 중심 지역으로 부상하는 이 때, 일본도 이제는 동북아의 일원으로 21세기 동북아와 세계의 미래를 발전시키는 것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뒤따르면 동북아에서 일본의 위상은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고 신뢰받고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일본의 아베정권이 보여주는 역사인식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창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아베총리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일본과 동북아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이전보다 더욱 깊어져 왔고 아베가 보여주는 역사인식이 ‘새로운 21세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19세기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져 왔다. 따라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량에 맞게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과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과거사문제로 한국을 비롯해 주변국으로부터 불신을 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일본 리더십의 시작이다.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동북아의 화해와 번영, 경제통합에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군사적 역할 확대를 통해 ‘보통국가’(normal state)의 길을 가는 것을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 아베정권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더라도 일본의 보통국가 추구는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군사적 역할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국제관계의 역사적 흐름과 속성에 비추어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군사역할의 증가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

   
▲ 한일 양국 정부간 타결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굴욕적인 외교 참사'라고 규정하고 규탄대회를 개최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2월 31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협상 수용 불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근현대 국제관계사를 보더라도 나폴레옹이 유럽전쟁을 일으켰던 프랑스는 패전 이후 유럽 질서를 만들었던 비엔나체제에서 제외되었다가 얼마 지나 <엑스라샤펠회의>를 통해 비엔나체제에 복귀되었다. 2차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도 냉전체제 종식 이후 유럽에서 그 역할을 확대해 지금은 유럽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냉전체제와 달리 여러 국가들, 혹은 국제세력들이 각축하는 양상을 보이는 다극화된 국제관계에서는 과거의 전범국, 패전국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국제체제의 주요 행위자로 들어가는 것이 국제관계의 반복되는 역사와 일반적인 속성이다. 따라서 패전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본이 보통국가로 나가려 하는 것은 국제관계의 일반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대외정책은 미국과 떼어놓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을 통해 표현되는 미국의 동북아 지역에 대한 대외정책의 성격도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는 동북아에서 패권국가로 등장한 중국에 대한 미일동맹의 강화로 볼 수 있다.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일정 부분의 군사적 역할을 일본이 대신해줄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더 이상 <평화헌법>에 구속되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동북아 국제질서에 뒤쳐질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즉, 일본뿐 아니라 미국까지 제친 중국의 경제력과 날로 확대되는 군사력, 한 수 아래로 보았던 한국의 성장과 국제적 역할의 증대, 한중협력의 심화 등을 보면서 일본은 동북아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초조감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의 장래가 불확실하고 박근혜정부가 통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면서 일본도 남북문제에서 입지를 강화하면서 남북관계의 추이에 적극적으로 대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베의 인식이 보통국가론을 넘어 퇴행적인 국수주의적 모습으로 나가면 일본의 보통국가 지향은 동북아의 주요한 갈등요인이 될 것이다. 사실 일본이 아베정권 출범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이웃 국가들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면 일본의 내면에는 자신들이 2차 대전에서 미국에게 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피해를 입힌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흔히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자신보다 실력이 우월한 자는 인정하고 그에 복종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 사죄한다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한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이 동북아 이웃 국가들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세계화’로 발전해 나가는 21세기 국제 문명사회에서 19세기 말 제국주의적 인식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인류 보편의 기본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다.

오늘날 유럽통합의 시작은 독일의 올바른 과거사 청산과 이웃 국가들의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 정부는 지금도 90세가 넘은 나치 전범을 법정에 세우는 등 잘못된 과거사 정리를 멈추지 않고 있고 이런 자세가 이웃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일본도 이제는 잘못된 과거의 유산을 미래의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희망찬 한·일 관계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대국 일본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이를 주변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국가로 일본은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5. 한·일 관계는 바람직한 미래 세계의 출발선이 되어야

동북아가 21세기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부각하면서도 현재 동북아는 국가들 간의 긴밀한 경제협력의 필요성과 군사경쟁이 상존하면서 영토분쟁, 북한 변수를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 동북아의 국제정치적 환경이 마치 120여 년 전 구한말과 유사한 형국이지만 세계화로 표현되는 지금의 국제사회는 과거 제국주의시대와는 다른 모습이고 당시와 다르게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정체하면서 한국의 국제적 역할과 위상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점 등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비록 동북아에 갈등적인 요인들이 많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당장 미국 대 중국, 중국 대 일본, 더 확대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로 나간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무엇보다도 미·중관계가 갈등요소를 갖고 있지만 서로가 필요한 협력관계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일본의 군사역할 확대가 과거의 군국주의로 회귀하기에는 시대적 환경이 다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도 정상국가로 변모함에 따라 1894년 청일전쟁 이전의 동북아 국제관계로 정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부상도 1840년 아편전쟁으로 몰락하기 이전의 중국으로 되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아직도 19세말에 기인한 역사적 유산과 20세기 중반의 냉전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북관계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분단의 종식과 통일한국의 출현은 1894년 이후 왜곡되었던 동북아국제질서의 정상 상태로의 회귀의 마지막 순서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 3국 중 특히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아시아와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요 국가들이다. 한·일 양국이 과거에 메여서 발전적 미래로 나가지 못하면 그것은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 국제사회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한·일 관계는 문화교류사에서 보면 사실상 일제의 식민 지배 등 일부의 시기를 제외하곤 오랫동안 선린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지금도 매년 500만 명 이상의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성숙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 인식의 바탕위에 서로 이익이 되는 협력관계, 문화․인적교류 확대를 통해 깊이 이해하고 국제무대에서 함께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국제사회에 대한 공헌을 높여주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되면 일본은 남북한을 통해 중국의 동북 3성,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공동 진출로 대륙과의 연결과 소통이 가능해지며 이를 통해 일본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21세기 동아시아 공동체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경제통합을 통해 일본은 기술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된 남북한은 동북아의 냉전구조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했던 일본도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구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남북 분단의 시작이 일제의 한반도 강점에서 기인한 바, 일본이 통일한국을 지지하고 협력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어두운 과거를 완전 해소하고 공동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게 한다.

한국과 일본은 별도로 보면 개별 국가라는 하나의 점(點)이지만 21세기 바람직한 동북아국제관계와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일 관계는 동북아 및 세계평화와 협력을 향한 출발의 선(線)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중국과 북한이 동북아 공동번영에 참가할 경우 동북아는 21세기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에 매우 중요한 하나의 면(面)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일 양국이 ‘함께 해야’ 하는 역사적 당위를 지금부터 공유하길 기대한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