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지도부 공론화…북핵 앞 좌파의 위선적 평화타령 깨야

   
▲ 조우석 주필
북한이 또 사고를 쳤다. 저들은 6일 전격적으로 4차 핵실험을 했다. “첫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는 저들의 발표는 우리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만해도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전략과 중국의 압력이 통한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모두가 물 건너갔다.

저들은 수소탄 실험 성공을 발표하며 “핵개발 중단이나 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특유의 우악스러운 다짐을 반복했다. 실망스러운 것은 무기력한 우리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에게 엄중 경고를 한다느니,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느니 하는 엄포만을 반복할 뿐이다.

대북확성기 재개가 가시적 조치의 전부인데, 실효적 조치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이 나라 언론도 그렇다. 어제 날짜 조선일보의 경우 “우리 힘으로 북핵을 무력화시킬 비상 자위(自衛) 수단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막상 꺼낸 카드가 달랑 두 가지에 불과했다.

어제 정치권에서 나온 핵무장론, 의미있다

즉 킬 체인(kill chain)과 고고도 미사일 방어(THAAD) 도입, 1991년 철수했던 미 전술핵을 재배치 검토가 그들이 검토한 것의 전부다. 한반도에 최악의 재앙과 파국을 가져올 이 국면에서 북핵에 상응하는 핵무장 능력을 갖추자는 당연한 문제제기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천만다행은 어제 7일 여야 지도부에서 핵무장론이 등장한 점인데, ‘몽유병자 여의도 정치권’에서 이 무슨 변화인가 싶을 정도다. 그동안 쉬쉬해왔던 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인데, 새누리당 지도부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핵무장론을 꺼냈다. 그는“그게 국방위원장 시절부터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이 공식논평을 통해 핵무장론은 안보 포퓰리즘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대표 문재인이 “핵무장론은 부적절한 논의”라고 비판했지만, 확실히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 8일자 일부 신문은 사설에서 핵무장론을 공론화하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흥미롭다.

이 대목에서 나는 2년 전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발언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이웃집 깡패가 최신형 기관총을 구입했는데 돌멩이 하나 들고서는 집을 지킨다고 할 수 없다”는 설득력있는 비유와 함께 핵무장론을 거론했던 거의 첫 번째 정치인이었다.

당시 그는 모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발언도 했는데, 책임있는 정치인으로 너무도 당연한 발언이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든다고 한 게 30년 전이고, 북핵 위기는 20년 전부터 있었다.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면 비상사태를 선포했어야 한다. 국가로서 제대로 작동이 안 된 것이다.” 그의 경우 미 유학 시절 외교정책 공부를 하며 동서(東西) 냉전시대 외교 전략이란 대부분 핵 억지 전략이었다는 걸 익힌 바 있기 때문에 핵무장론을 제기할 수 있었다. 핵은 핵으로써만이 억지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인식이 이른바 정치학적 현실론(political realism)이다.

   
▲ 새누리당 지도부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핵무장론을 꺼냈다. 그는 “그게 국방위원장 시절부터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사진=미디어펜
정몽준이 2년 전 보여준 핵무장론 소신

세계1,2차 대전의 발발 자체가 평화라는 게 단순한 희망 내지 소망만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물리적 힘의 균형이 확실한 카드라는 인식이다. 동서냉전이 열전(熱戰)을 터지지 않고 효율적으로 관리된 것만 해도 순전히 그 덕이 아니던가?

실은 <군주론>의 니콜로 마키아벨리, <리바이어던>의 토마스 홉스 이후 수백 년 동안 다져진 게 서구 지성사 핵심인 정치적 현실론이다. 그게 훗날 헨리 키신저 같은 인물을 배출해냈지만 지금도 국제정치학에서 신학-철학에 이르기까지 서구 인문사회과학의 뼈대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체 왜 이런가? 우리 인문학은 ‘현학적인 문약(文弱)’이거나 ‘위선적 평화주의 옹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현실정치권은 정치의 요체인 안보문제에서 왜 이렇게 서툴고 버벅대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내가 보기엔 이런 멘탈리티 자체가 병적이다. 한국사회는 자기 파멸을 재촉하는 ‘국가 이전 단계’이며, 내부의 구성원과 엘리트 계층은 책임있는 시민-지식인 이전의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게 국방을 미군에게 외주(外注)를 준 채 태평하게 사는 이 나라 대한민국 위기의 또 다른 징후인데,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가관이다.

예전에 한 번 밝힌 바 있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인 2010년 봄 이명박 정부의 고위 인사가 조언을 듣기 위해 망명객 황장엽에게 물었다. “우리가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면 구석에 몰린 쥐처럼 북한이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지 않을까요?”

답답한 표정의 황장엽이 따끔하게 반문했다. “누가 고양이 신세이고, 누가 쥐란 말이요? 서울 불바다를 호언하고 핵을 가진 북한이야말로 고양이 아닌가요?” 기억하시는지? 3년 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남북이 일대일로 붙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한 의원 질의에 한 장성은 “우리가 패배한다”라고 어이없는 답을 했다.

   
▲ 북한이 6일 전격적으로 4차 핵실험을 했다. “첫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는 발표는 우리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만해도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전략과 중국의 압력이 통한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모두가 물 건너갔다./사진=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 바보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그게 문제가 되자 며칠 뒤 당시 국방장관 김관진이 같은 질문에 “북한은 멸망한다”고 겨우 수습을 해야 했다. 실은 주적(主敵) 북한을 보는 우리의 태도부터 문제가 있다. 군 통수권자였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그럼 전쟁하자는 겁니까?”라는 발언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그런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대한민국 사회에 나는 오늘 한 마디를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의 발언인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나라만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이 능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북한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킬 때만이 무력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상식이지만, 핵무장론은 너무도 당연한 문제제기다. 너무 늦었을 뿐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국제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책임있고 당당한 논의를 벌어야 비로소 국제사회에서도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대접을 받는다.  /조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