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김연주 기자] 국제유가가 연일 추락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한때 저유가는 에너지원을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축복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의 유가 하락은 과잉 공급 기조 속에 세계 경제 침체가 겹치면서 심화한 것이라 오히려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조선, 건설 등 분야 한국 주요기업 수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 쓰는 한국 경제에 유가 하락은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공장 가동 등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비용이 줄면 당연히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채산성이 높아진다.

가계 입장에선 기업의 생산비용 절감으로 제품 가격이 떨어지는 혜택을 볼 수 있다. 물가수준이 내려가면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져 소비 여력이 이전보다 커지고 이는 경기가 살아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월 유가 하락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국제유가가 35% 하락할 경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5조200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를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35만원 정도의 가계지출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유가 하락은 전반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요인이 되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원유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저유가가 큰 축복으로 생각돼 왔다.

하지만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가 20~30달러대로 추락하면서 저유가는 우리 경제에 축복이 아니라 큰 악재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임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저유가가 산유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어 글로벌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고 디플레이션 압력으로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등지의 산유국들은 저유가로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이는 곧바로 조선, 건설, 플랜트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력 수출 분야에서 눈에 띄는 수주 감소로 나타났다.

실제로 저유가로 유동성이 위축된 산유국과 시추업체들은 발주 물량을 줄이거나 아예 취소하기도 해 우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2월 초 기준으로 작년도 해외건설 수주액은 약 409억5700만 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595억6000만 달러에 비해 31.3%나 급감했다. 이 가운데 해외건설의 '텃밭'으로 불리던 중동 지역 수주액은 147억2600만 달러로 무려 52%나 줄었다.

이는 2006년 이후 중동지역 수주 금액 중 가장 낮은 수치다.

해외 수주액 감소는 산유국 발주처들이 저유가로 인해 발주 물량을 축소하거나 연기한 영향이 크다.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20억 달러 규모의 라스 타누라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의 재입찰을 잠정 중단했고, 카타르는 85억 달러 규모의 알카라나 석유화학 콤플렉스 프로젝트 발주를 연기했다.

지난해 말부터 저유가 탓에 중동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미청구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하는 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계도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시추업체들의 발주 및 계약 취소가 줄을 잇고, 해운업계는 일감이 줄어 선박 발주를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작년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 업체의 적자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8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산유국들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투자했던 '오일 머니' 회수에 나서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저유가 기조는 일부 부문에선 수출에도 악영향을 준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원료로 쓰는 석유화학 산업 강국이다. 원유 가격이 내려가면 석유화학 제품 가격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제품 수출은 전년대비 각각 36.6%, 21.4% 감소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7.9% 줄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걱정도 깊어지고 있다. 원자재인 석유 가격이 하락하면 물가도 따라 낮아지는 만큼 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도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것은 유가 하락의 영향이 크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도 전망치만큼 물가가 오르지 않아 물가관리를 하는 중앙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 원유와 경합하는 셰일가스 생산 기술의 발달로 초경질원유(콘덴세이트) 생산량이 늘고 세계 경제도 뚜렷하게 나아질 흐름을 보이지 않아 저유가 상황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공산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던 제조업 분야에서 에너지를 덜 쓰는 서비스업 위주로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는 점도 저유가 기조를 심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수요시장이 워낙 안 좋아진 만큼 배럴당 30달러 내외에서 움직이는 저유가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