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부분의 범죄심리학자,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름 잡는 얘기만 해
   
▲ 성빈 범죄심리학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범죄학 박사)

범죄심리학자는 없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범죄심리학을 검색하면, ‘범죄심리학자’, ‘범죄학’, ‘프로파일러’, ‘표창원’, ‘경기대 범죄심리학’ 등이 연관검색어로 떠오른다. 범죄심리학자는 범죄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를 일컫는 학술 용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이수정 경기대 교수 등이 범죄심리학의 대표 주자로 거론된다. 최근 들어서는 박지선 교수라는 분도 범죄심리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학문적으로 범죄심리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국내 대학에서 아직 ‘범죄심리학’ 석사·박사 학위를 주는 곳은 없다. 서구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다만, ‘범죄학’ 또는 ‘심리학’ 학위과정을 개설한 곳에서 범죄심리학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는 더러 있다. 범죄심리학은 심리학인가, 범죄학인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독자적인 학문으로서 ‘범죄심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범죄심리학은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이 연구 대상의 하나로서 범죄자를 선정한 것에서부터 출발했던 것이기에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가 있다.

   
▲ 한국의 범죄심리학은 대륙법계 형법과 형사소송법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형사사법학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국내 대학의 범죄학과나 심리학과 교육과정은 규범학적 기초를 상당 부분 고려하지 않고 있어 문제이다. 범죄심리학자 중에는 우리 형법의 조문과 개별 범죄의 구성요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사진=미디어펜

범죄학자들에게도 비슷한 한계가 있다. 범죄학 입장에서 심리학은 전통적인 관심 분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연구방법론이 바탕이 되지 않은 범죄학자들의 범죄심리 연구는 피상적 결과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일반인 수준에서도 납득 가능한 심리과학적 연구방법론이 도입되면서 범죄학자들의 관심 분야도 이같은 방향으로 넓어지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범죄심리학은 이러한 연구경향을 반영한 하나의 소(小)학문적 관심 영역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대한민국 범죄심리학자는 범죄학과 심리학, 규범학에 두루 정통한 학자여야

범죄심리학은 순수 심리학자들의 과학적 연구 성과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사회학적 연구 성과를 도외시한 범죄심리학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심리학과 범죄학 양 분야의 학제적 연구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학자들에게 범죄심리학자라는 명칭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제대로 된 범죄심리학 연구자로 볼 수 없다.

국내에서는 심리학자들이 곁가지로 범죄학에 관심을 보이거나, 범죄학자들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어정쩡한 지점에 서 있는 범죄심리학자들이 다수이다. 어쨌든 범죄학과 심리학, 그 어느 하나라도 정규 대학의 학위과정을 거쳐 학문적 기본기를 갖추어야 범죄심리학자의 출발선상에 서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조차도 아닌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다.

하나를 더 첨언한다. 한국의 범죄심리학은 대륙법계 형법과 형사소송법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형사사법학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국내 대학의 범죄학과나 심리학과 교육과정은 규범학적 기초를 상당 부분 고려하지 않고 있어 문제이다. 범죄심리학자 중에는 우리 형법의 조문과 개별 범죄의 구성요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내 범죄심리학자들 대부분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름잡는 얘기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다.

   
▲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범죄심리학을 검색하면, ‘범죄심리학자’, ‘범죄학’, ‘프로파일러’, ‘표창원’, ‘경기대 범죄심리학’ 등이 연관검색어로 떠오른다. 범죄심리학자는 범죄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를 일컫는 학술 용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이수정 경기대 교수 등이 범죄심리학의 대표 주자로 거론된다./사진=연합뉴스

영미의 사회과학학적 연구방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대륙의 형사법학을 계수한 우리에게 범죄심리학은 다소 두루뭉술한 허구적 담론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심지어 범죄심리학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양형론(量刑論)에서조차 명확한 법정형에 대한 인식 없이 국민 법감정만 고려하는 일부 범죄심리학자들의 현란한 수사(修辭)는 자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의 범죄 현실을 통찰하는 범죄심리학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범죄학과 심리학, 그리고 규범학을 두루 섭렵한 대한민국 정통 범죄심리학자가 나오길 간절히 기대한다. /성빈 범죄심리학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범죄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