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재현 기자]# 이혼 4년차 돌싱 직장인인 김 모씨(38, 남)는 직장 동료와 간단하게 술 한잔 후 집에 들어가 채팅을 했다. 자주 방문하던 000 채팅사이트에서 하나의 쪽지를 받았다. 제목은 "조건만남, 부담없이 만날 남자 찾아요". 김 씨는 쪽지에 발신인에게 답변을 했다. 이어 채팅방에서 아이디 빨간여우를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무르익자 바로 만나자는 얘기에 빨간여우는 "위치가 어디냐"며 김 씨에게 물었다. 김 씨는 서슴없이 자신이 사는 동네를 얘기했고 빨간여우는 "자신이 2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바로 가려면 택시비와 조건만남비를 먼저 보내달라"고 했다. 김 씨는 혹시 모를 조건만남 미끼 사기를 의식한 듯 "사람 못 믿나? 오면 바로 지급하겠다"고 손사래쳤다. 이어 빨간여우는 "못믿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워낙 흉흉하기 때문에 조건만남을 하더라도 돈도 못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선입금을 해야 만날 수 있다"고 답했다. 만날 기대감에 부풀은 김 씨는 "설마"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지만 입금을 하지 않고선 만날 수 없다는 단호한 답변에 빨간여우가 알려준 계좌에 50만원 가량을 송금했다. 계좌번호가 있으니 나중에 무슨 일이 나더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설마했던 생각은 역시나였다. 2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빨간여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빨간여우 아이디는 바로 탈퇴되고 말았다. 송금한 50만원을 되돌려 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대포통장의 계좌번호였으며 법적으로 돌려받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 조건만남으로 만난 여중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37)씨가 지난해 4월 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법 밖으로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악마의 속삭임에 빠진 남성들의 사기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조건만남'이란 짜릿한 유혹에 현혹돼 보이스피싱 사기의 덫에 걸린 사람, 신상공개 협박에 돈을 뺏긴 사람, 아니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기와 협박으로 피해를 봤다 하더라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까닭에 "조건만남 피해를 봤다"며 하소연할 때가 없어 속앓이만 할 뿐이다. 더욱 그 사정을 노린 조건만남 사기범들은 더 지능화된 수법으로 남성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12일 경찰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23일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 국내 인출책 A씨(25) 등 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중국에 있는 조건만남 보이스피싱 사기 조직에 가담해 약 1300명의 피해자들로부터 8억5000만원을 인출해 중국 사기조직에 송금했다.

조사과정에서 이들에게 직접 돈을 입금한 피해자만 61명, 금액으로는 1억2000만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 사기 뿐만 아니라 협박과 납치, 구타까지 당한 사례도 발생됐다. 간큰 10대들은 조건만남을 미끼로 유인한 뒤 협박과 폭행으로 30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다. 또한 피해자의 차량을 빼앗고 차 트렁크에 가둔 뒤 약 3시간 가량 끌고 다녔다.

즉석만남 앱(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20대 여성을 유인한 후 스마트폰을 빼앗은 사례도 있다. A씨와 B씨는 한 차량을 미리 빌딘 후 운전석과 조수석 뒤편 좌석에 숨어 있다 여성이 차량에 탑승하자 돈을 갈취했다. 여성 피해자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려 팔꿈치와 무릎 등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여성 피해자가 반항하지 않았을 경우 끔직한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건만남을 미끼로 한 보이스피싱 사기도 지능화되며 범죄영역을 넓히고 있다. 금감원 내 '불법사금융신고센터'에 보이스피싱 피해상담과 구제신청을 문의하는 건수는 적다. 1300명 피해자 중 100여명에 불과하다. 

김용실 금감원 서민금융지원국 팀장은 "우리원으로 상담전화는 그리 많지 않다"며 "조건만남 피해자들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특별법 상  불법거래를 가장한 행위인 만큼 지급정지와 피해구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는 피해자들이 하소연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정때문에 사기피해를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팀장은 "금감원에 상담하는 분들에게 불법거래인 만큼 구제대상이 아니어서 친절하게 경찰에 직접 신고를 해야 한다고 얘기지만 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대부분 경찰 신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은 금융사기 피해자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법원의 소송제기가 필요없는 간이한 피해구제절차를 마련했다. 하지만 재화공급, 용역 제공이나 이와 관련한 불법 거래를 가장한 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서 제외된다. 

다만,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은 가능하기 때문에 즉시 경찰청에 신고해야 한다.  

경찰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성매매와 연관있다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벌칙)에 따르면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돼 있다. 조건만남은 성매매 미수인 만큼 21조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다. 대신 성매매(조건만남 포함)의 경우 현장에서 적발될 경우 처벌 받는다. 조건만남의 대가로 이체한 돈은 법적으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돼 돌려받을 수 없다.

조건만남과 더불어 몸캠피싱 피해도 늘고 있다. 몸캠피싱 사기의 유형을 보면 피해자에게 '너0000'이라는 스마트폰 채팅어플을 통해 접근해 '스000'라는 채팅어플이나 'voice.apk'라는 음성지원파일을 설치하게 한 후 얼굴 등의 영상을 녹화하고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빼내 이를 지인에게 유포한다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수법이다. 이 역시도 형법상 협박죄 등에 해당하지만 전기통신금융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조건만남이나 몸캠피싱 사기범 등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없는 점을 노리는 범죄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신고없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뿌리뽑지 못한다.

피해를 입지 않도록 어떠한 경우에도 응해서는 안되며 만일 피해를 입을 경우 송금 이체내역서, 사기피해 발생 화면 이미지 등 증거자료를 첨부해 즉시 경찰청에 신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