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혁신 두고 구태정치 재연되나?
<2012 대선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

수단으로 변질되는 ‘정치혁신’ 구호

정치혁신 두고 구태정치 재연되나

목적과 수단의 전위

근대 관료조직은 국가의 효율적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관료조직의 존립과 이익이 최고의 목적이 되었고 국가의 효율적 통치는 관료조직의 존재이유를 뒷받침해주는 구실(수단)로 변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정당은 동일한 정치적 이념(예컨대, 민주주의)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성된 조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정당의 존립과 정권장악이 최고의 목적이 되었고,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은 지지자를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변했다.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는 이런 현상을 ‘목적과 수단의 전위현상’이라고 한다.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 고수하는 이유

목적과 수단의 전위에 의해 이제 정당의 최고 목적은 정권장악이 되었다. 정치혁신을 내건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의 입당 제의를 거절하고 무소속 후보 한계론에 반발하는 것은 정당에 들어가는 순간 정치혁신이란 자신의 목적이 정권교체의 수단으로 변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철수 후보가 정치혁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는 어렵다 하겠다. 반대로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는 안철수 후보가 사실상 정치혁신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정치혁신위원회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안철수 후보가 내건 정치혁신 구호는 여당과 야당이 보여준 기존의 구태정치에 환멸을 느낀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철수 후보의 정치혁신 구호를 문재인 후보 측이 수용하면서 정치혁신이 목적에서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보도에 의하면 문재인 후보는 14일 조국 교수가 제시한 단일화 3단계 방안(공동 정치혁신위윈회 구성 공동 정강정책 수립 세력관계 조율)을 수용함과 동시에 안철수 후보 측에 공동 정치혁신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얼핏 보면 정치혁신에 민주당이 동참함으로써 정치혁신세력의 외연이 확장된 모습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조국 교수의 단일화 3단계 방안의 목적은 후보 ‘단일화’다. 그리고 후보 단일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교체다. 따라서 단일화를 위해 공동 정치혁신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은 정치혁신 이슈를 정권교체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혁신과 정권교체 간에 목적과 수단의 전위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 정치혁신이라는 국민적 열망이 정치적 산술게임의 도구가 될지는 안철수 후보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민주당도 혁신 대상이다

그간 당내 혁신 요구조차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민주당이 단일화가 절실한 대선정국에서 정치혁신 이슈에 뛰어든 것은 오히려 정치혁신 구호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전체로서 민주당이 정치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처분을 기다려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중은 제 머리를 못 깎는 법이다. 과거 검찰에게 검찰개혁을 맡길 수 없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설혹 조국 교수의 3단계 단일화 방안대로 야권이 정치혁신 내용에 합의하고 ‘세력 조율’을 통한 단일화로 대선에 승리한다 해도,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정권에 참여하는 한 국민이 원하는 정치혁신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보상해야 할 식구가 많은 정권장악세력이 기득권을 포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혁신의 첫걸음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단

따라서 문재인 후보 측이 진정으로 정치혁신을 원한다면, 정치혁신위원회 구성을 ‘공동’으로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안철수 후보 측에 온전히 칼자루를 넘기고 그 칼날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또 안철수 후보 측이 진정으로 정치혁신을 원한다면, 정권교체에 연연하지 않고 먼 곳을 내다보고 꼿꼿하게 정치혁신을 추구해야할 것이다. 정치혁신은 정권교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치를 가진 이 시대의 소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