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드디어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날 당장은 아니고 김종인 위원장을 필두로 한 선거대책위가 안정되면 물러나겠다는 것으로 20대 총선 불출마도 선언했다.

문 대표가 최근 영입한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반전의 물꼬를 튼 것이라는 해설이 가능하다. 문 대표로서는 ‘김종인 카드’로 추가 탈당으로 인한 당의 완전 붕괴를 막을 수 있는데다 총선 결과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선대위원장을 직접 영입한 문 대표는 여전히 당내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총선 대책을 맡은 김종인 위원장이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돕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30여명에 가까운 의원들의 탈당 러시를 만들어낸 당 내홍이 10개월만에 비로소 수습될지도 주목된다. 이용섭 의원처럼 복당하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탈당해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세력들과 통합 혹은 연대까지 이룬다면 문 대표로서는 기가 막힌 묘수(妙手)를 둔 것이다.

문 대표는 지난해 2.8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선출됐다. 대선 지지율 1위 후보로 승승장구했지만 얼마 못가서 문 대표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기는 정당’을 모토로 내걸었지만
4.29재보선에 참패하면서 비주류의 사퇴 공세가 시작됐다.

한때 당 혁신을 전면에 내건 혁신위원회 가동을 통해 분위기 전환도 시도했다. 하지만 당이 안정화되기는 커녕 내분이 심화되면서 주류와 비주류 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문 대표는 재신임투표,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등 잇달아 위기 돌파 카드를 던져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드디어 지난달 13일 안철수 의원을 필두로 16명이 탈당하는 사실상 분당 사태가 촉발됐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한 뒤 이어갔고,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탈당 움직임마저 가시화됐다. 바로 이 시점이 문 대표가 ‘김종인 카드’를 뽑아들은 때로 보인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탈당해 국민의 당을 창당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12월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4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리고 문 대표는 이날 신년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당 대표 취임 345일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표가 “조만간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자 당장 ‘국민의 당’ 창당을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이 즉각 김종인 위원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문 대표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 있는 승리가 어려우면 원칙 있는 패배가 낫다고 했다”면서 “문재인 대표의 김종인 위원장 영입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것으로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상진 위원장을 향해 “이 전 대통령이 국부이고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역사인식은 맞지도 않을 뿐더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말씀”이라고 강력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또한 국민의 당 측은 “역사의 단절과 반목을 해소하려는 말인데 일부 표현만 부각해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 당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이 “이승만 국부”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김종인 위원장이 반박하고 한 위원장이 다시 김 위원장의 과거 전력을 놓고 벌이던 신경전이 노선경쟁으로 확전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사실 문재인 대표가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 노릴 수 있는 첫번째 효과는 안철수 의원 등 야권 신당 주도자들이 싸울 상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자칫 안 의원과의 싸움에서 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안 의원의 입장에서는 문 대표 대신 새로운 상대가 등장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안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은 이제 문 대표가 사퇴한 더불어민주당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기 위해 당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제가 남았다.

즉 당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더욱 부각시키고 중심 세력으로 삼아서 나아갈 것인지, 혹은 일명 ‘제3 지대’를 노리는 식으로 실력 있는 기성 정치인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는 데 주력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이런 스탠스를 정한 뒤에야 당의 정체성도 더불어민주당과 완전 다른 중도 노선으로 갈지, 더불어민주당보다 더욱 야당스럽게 변신해 치킨게임을 벌일지 결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안철수 신당의 성공과 관련해서는 박영선 의원의 영입이 가장 큰 변수로 주목받은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박 의원의 국민의 당 합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대표의 김종인 위원장 영입이 갖는 두 번째 효력이 박 의원의 탈당을 멈칫하게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영선 의원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에 남아 있을 때보다 안철수 신당으로 합류했을 때 나타낼 위력이 더욱 큰 것이 사실이다.

한편, 문재인 대표의 ‘김종인 카드’ 역시 위험성은 상존한다. 문 대표가 김종인 위원장에게 자신의 비전을 완전히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느냐의 문제로 벌써부터 이들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와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언론을 통해 “친노세력을 끊어낼 자신이 없으면 맡지도 않았다”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다.

따라서 향후 문 대표를 포함한 당내 친노세력과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김 위원장의 뜻을 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김 위원장으로서는 당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럴 경우 총선을 무난히 넘기고 대권에 ‘올인’해야 하는 문재인 대표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최대의 악수(惡手)를 둔 결과를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