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대타협 일방 파기…기득권 지키기 국민 배신 '자멸의 길'

[미디어펜=문상진 기자]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대해서는 오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그늘을 드리우는 ‘투쟁 일변도’의 싸움을 하지는 않는다는 이미지다. 최근에도 한노총은 민노총과는 달리 정부와의 협상 프레임 안에 들어와 대화를 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일말의 기대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결국 한노총이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한 지난 19일, 한노총의 실체는 재차 분명해졌다. 그들은 스스로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기득권 집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노동개혁청년네트워크와 노동시장개혁촉구운동본부는 20일 오전에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번 한노총의 대타협 파기 선언을 ‘일자리 파탄 선언’으로 규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또한 한노총에 대해 ‘일자리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배반하는 것이고, 청년들의 희망을 꺾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들로 인해 청년들과 구직자, 비정규직만 꼼짝없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

한노총 김동만 위원장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9·15 노사정 합의가 정부·여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 휴지조각이 되었고 완전 파기되어 무효가 됐음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사정위원회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갖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계하기 위해 긴 시간동안 지속해온 노력의 결과를 결국 무위로 만들고야 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9‧15 노사정 대타협은 현재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는 일자리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의 ‘고통분담 실천선언’이자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노총의 이번 파기는 그들이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한노총이 민심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졌다.

   
▲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는 한노총 김동만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한노총이 이렇게 강고한 기득권 집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왜일까. 일단 그들은 정부와 여당의 탓을 하며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여당이 “노사정 합의 다음 날인 지난해 9월 16일 합의를 위반한 채 비정규직 양산법 등을 입법 발의하면서 처음부터 합의 파기의 길로 들어섰고, 노사정위의 역할과 존재를 부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한노총의 노선이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스스로 방황한 측면이 더 컸다. 한노총은 9‧15 합의 뒤 내부 강경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실재하지도 않았던 ‘정부가 쉬운 해고를 조장한다’는 프레임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패착에 빠지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대표적인 ‘기득권 노조’인 금융, 공공 및 대기업 노조의 반발도 이번 한노총의 몽니에 크게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발전보다는 조직 이기주의가 그들에겐 더 중요했다.

이번 합의 시도는 애초부터 이른바 ‘쉬운 해고’와는 관련이 없었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이 지난주 “확언컨대 쉬운 해고는 없다”고 말한 그대로다. 해고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 해고가 쉬워져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지만, 일단 고용부 측은 “한국에서 해고 관련 입법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며 숨을 골랐다.

다만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상위 10% 고소득자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근로 시간을 단축해 청년층에 일자리 15만 개를 제공하며, 파견층을 넓혀 장년층에게 일자리를 주는 등 상대적으로 ‘빠른 실현이 가능한’ 조항들이 삽입돼 있었다. 기대보다 개혁의 칼날이 무뎌진 만큼 노동개혁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긴 했지만 일단 노사정이 서로 합의를 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기어이 폭탄을 던진 한노총은 2016년 한국의 노동계가 과연 ‘대화’의 상대일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정부에 대해서는 거절과 싸움을 하는 것만이 능사인 것으로 인식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지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름을 한노총이 아닌 ‘갑노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합의가 싫다면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강력한 개혁 의지뿐이다. 지금까지는 협상을 위해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정의로운 투쟁이라면 단호하게 나갈 수밖에 방법이 없다. 더 이상 눈치를 봐서는 안 되고 볼 필요도 없다.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들, 그 중에서도 15만 개의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생긴 수많은 청년들과 비정규직에 대한 진정한 보호를 위해서라도 흔들림 없는 노동개혁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