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감 쌓이는 소송 만능주의
애플과 삼성의 재판 과정이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기술 용어와 법률 해석들이 뒤섞인 기사와 논평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한국에서는 삼성이 유리한 국면을 이끌고 있는 것 같지만 미국에서 바라보면 꼭 그렇게 보이진 않을 듯싶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팬덤 현상이 가라 앉은 지금, 사람들은 애플을 차츰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잡스가 그토록 추구했고 잡스 팬들이 숭배했던 애플 ‘혁신’이라는 게 팍스콘 중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아가고 있다.

삼성도 애플에 질세라 ‘혁신’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다. 미국 MBA스쿨 경영학자들과 컨설턴트들은 입만 열면 ‘위기’를 얘기하고 ‘혁신’을 외친다. 바야흐로 글로벌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돼가고 있다.

그러나 병영막사처럼 갇힌 공장에서 힘든 노동과 규칙에 시달리는 중국 노동자들의 실태를 보면서, 도대체 ‘혁신’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으로 창조한 자신들의 모바일 세상을 한뼘도 삼성에게 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잡스에게 ‘특허전의 승리’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자기존재 확인증’ 같은 거였다. 그러한 ‘혁신’에의 집착과 오기는 영국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과문을 물타기 하려는 행동에서 잘 읽을 수 있다.

그 혁신을 지키기 위해서 중국 노동자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막대한 혁신의 대가가 결국은 미국 로펌들의 배를 불리는 데로 쓰여지고 있다. 애플에 맞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삼성의 천문학적 소송 비용을 감안하면 미국 변호사들만 살판 났다. 사실 글로벌 IT기업들을 보면 온통 소송판이다. 그 소송판은 거의가 미국 로펌들이 차지하고 있다. 거대한 기술 혁신의 열매를 미국 변호사들이 다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이 소송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혁신’은 나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서 나의 소유라고만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디자이너의 혁신은 따지고 보면 ‘앞선 무수한 예술가와 장인들의 작품에서 베낀 것이고 예술가와 장인의 작품들은 자연에게서 베낀 것이다’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혁신’도 적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본래 나의 것이 아닌데, 나의 것인 양 주장하는 건 정말 볼썽 사납기 그지없다.

또한 ‘혁신’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혁신이란 것도 ‘유한한 만족’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다 쇠락한다. 인간사에서 변치 않는 것은 특정 기업과 특정 개발자, 특정 변호사들에게 독과점적 이익이 돌아가는 시간은 오래 할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기술기업들이 주도하는 소송 패러다임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