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 백지현 기자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어느 기업이건 매년 연봉협상 철이 다가오면 협상 테이블을 마주하고 노사양측 간 치열한 ‘샅바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물가상승률 대비 좀처럼 오르지 않는 월급봉투에 ‘단돈’ 얼마라도 더 올리기 위해 투쟁도 마다하지 않지만, 사측의 타협안을 적절히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이 겪는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사측에 요구한 임금인상안을 보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임금인상률이 보통 월급쟁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조종사 노조가 사측에 요구한 임금인상률은 37%다. 사측이 제시한 총액 기준 1.9% 인상안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대한항공의 조종사 평균 연봉은 1억4000만원으로 ‘37% 인상안’이 받아질 경우, 5180만원을 더 받게 되는 셈이다. 이는 웬만한 대기업 과장급 평균 연봉과도 맞먹는 수준이다.

이쯤 되면 조종사 노사가 요구하는 ‘37%’라는 임금인상률에 대한 산출기준이 사뭇 궁금해진다. 이들이 처음 주장한 임금인상 근거는 최고 경영자의 급여인상률이었다. 지난해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한 언론사에서 조양호 회장의 임금인상률이 전년대비 37% 올랐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삼아 “우리가 요구하는 임금상승률은 상징적인 수치”라며 조 회장의 급여인상률에 맞춰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37%에 달하는 조 회장의 임금상승률이 잘못 계산된 수치로 밝혀지면서 조종사 노조는 “임금인상률의 근거는 최고경영자의 보수 인상률만을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고, 십수년간의 대한항공 조종사 임금인상률, 해외항공사와의 임금수준 비교, 회사의 수용가능성 등을 근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과연 이 같은 요구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6164억원으로 예상되지만, 달러강세로 발생하는 환차손 등의 영향을 감안하면 6113억원의 손실이 추산된다. 조종사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임금인상분 1200억원은 은행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노조 마저 조종사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싸늘하다. 조종사 노조는 오는 29일까지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가결되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일반노조마저 파업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현재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반인 노조는 “조종사 노조의 주장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조종사노조의 쟁의 관련 찬반 투표는 자신들의 명분만을 내세운 것으로, 파업에 따른 피해를 동료에게 강요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파업몰이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운항직종 외 객실·정비·운송·예약·판매 등 20여 개의 직종에 대한 배려는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 최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사측에 요구한 임금인상안을 보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임금인상률이 보통 월급쟁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연합뉴스

조종사 노조가 이번에 파업에 돌입하게 되면 10년 만에 또 다시 항공대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5년 ‘항공대란’으로 불리는 파업으로 2600억원 규모의 손실은 물론 기업 이미지 실추 등 유무형의 막대한 손해를 봤다.

대한항공 파업이 현실화 될 경우 이번에는 한 기업의 손해를 넘어 국가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한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관광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한국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실제 지난 7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62만9737명으로 전년 동기 135만4753명에 비해 53.5% 감소했고, 이로 인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최대 1%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돌리면서 내수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한국경제에 기여한 규모는 8조~13조로 파악된다. 가라앉는 한국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고객인 셈이다. 한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이 항공대란사태로 한국행을 포기한다면, 그로 인한 경제손실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경제에 불어 닥친 한파가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 경제 한파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 개인 모두가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 이때, 누가 봐도 무리한 임금인상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행동은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자신들만의 주머니를 채우겠다는 이기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실익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져 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