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 존립자체를 담판 짓자는 중국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협상은 타협을 전제로 한다. 양자협상은 당사자의 양보를 요구한다. 다자협상에는 중재자가 포함됐다. 그렇다면 북한 핵의 당사자와 중재자는 누구인가? 중국과 미국은 당사자인가, 중재자인가? 아니, 근본적으로 북한문제를 둘러싼 각종 협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복잡한 협상 방정식의 시작은 1953년 정전협상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휴전협정인지 정전협정인지 분분한 탓도 당시 시대상과 정치적 해석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각종 다자협상에 때때로 북한이 한국의 당사자 적격성을 두고 우격다짐 이의를 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대국들을 협상장으로 모이게 했던 북한 이슈는 핵과 미사일이 관련된 안보문제였다. 1994년 제네바합의는 핵 포기와 경제지원을 맞바꾼 극적인 북미협상이었다. 북한의 남한 따돌리기 전략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접근을 알면서도 미국이 나서 북한과 담판을 했던 최초의 사례다.

그 후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협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지속가능성은 이행에 대한 신뢰에 달린 법이다. 미국이 북한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포기하게 된 마지막 협상은 2012년 2.29합의다.

한번 더 속는 셈치고(?) 미국이 합의한 이것마저 두 달도 안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파기되자 20여 년 동안 온갖 다자협상과 양자협상을 병행해 왔던 미국은 이로써 완전한 ‘전략적 인내’에 들어가게 된다.

표방된 북한의 협상 목표는 언뜻 일관된 듯 보인다.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팩키지 딜’(일괄타결)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것이 요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의 당사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 더러, 시간에 따라 목적과 의도를 바꾸며 혼란을 유발해 왔다.

그런데 오랫동안 듣다 보니 차라리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일단 다 해주고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한반도 평화를 담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가 됐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새롭지 않다.

   
▲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시작된 2016년 통일부는 5.24조치 유지 등 강력한 대북제재 실천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에 힘쓰기로 했다. 또 통일부 내에 북핵 문제 전담팀(TF)을 꾸리고 앞으로 남북회담이나 남북관계 차원에서 비핵화 문제를 적극 제기할 방침이다. TF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부처 간 협업도 담당한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중심으로 벌인 동북아 안보협상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서울 불바다론’을 지나 전격 타결된 제네바 합의 이후 1996년부터 개시된 북미 미사일 협상은 1999년 9월 베를린 합의에 이르렀고,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로 연결됐다.

1996년 4월부터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거쳐 2003년 4월 북-중-미의 3자회담, 곧이어 8월부터 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양자 및 다자협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바 있다.

핵과 미사일 문제가 지역간 안보 차원이 아니라 전세계 질서와 깊이 관련된 국제적 현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북한과의 모든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미국으로선 끝까지 상호 신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마지막 협상이 2.29합의였던 것이다.

그런데 4차 핵실험이 20여일 지난 이 시점 새로운 포맷의 협상 틀을 대통령이 직접 제시했다. 핵심 당사자인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이라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디를 지향하는가?

한마디로 북핵으로 무너진 기존 동북아 안보질서의 근간을 흔들어 남북통일에 이르는 다리를 놓든가 최소한 중국이 취해왔던 수동적(?) 자세를 바꾸겠다는 절박하고 애처로운 몸부림이다. 절박하다는 것은 북한 핵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며 애처롭다 함은 현실적 실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북핵 문제를 미국이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기준선을 낮추자는 암묵적 가이드라인으로 중국에 위임한 것이라면, 5자회담 제의는 북한 체제의 존립자체를 ‘담판’ 짓자고 한국이 중국에 보내는 강력한 신호이다. 미국과의 사전교감이 있었건 없었건 미국으로서야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카드이고 중국이 바로 거부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는 안보외교는 위험하다. 한번 삐끗하면 추락된 위상은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의 외교적 언급은 신중할 수 밖에 없고 북한 핵 같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힘든 이슈에 대해서는 상징적 메시지를 넘어서는 발언은 난망한 법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중 관계, 한반도 정세, 한일중 3국 협력을 포함한 지역 및 국제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북핵 실험에 대한 대북 제재에 중국은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6자회담에서는 당사자와 중재자가 혼재돼 있었다. 중국은 그저 좌장역할이나 하며 체면을 세우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6자회담의 실패는 모두의 실패이기에 도발자인 북한 외에는 책임자를 특정하기 곤란했다. 그런데 5자회담에서는 모두가 당사자가 된다.

마치 큰 사고를 친 학생의 처리문제를 두고 교장실에서 열리는 끝장토론에로의 초대와도 같다. 퇴학을 시켜야 할지, 전학을 보낼지, 정학을 부여할지 뭐든 정해야 한다. 심지어 한번만 봐주자는 담임교사의 선처주장은 자신의 책임을 담보로 한다.

이런 5자회담이라는 구체적 방법을 외교장관이나 안보수석이 아닌 대통령이 제시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모 아니면 도’가 되는 길을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던지는 것은 일도양단의 선택을 강제하는 ‘양날의 칼’이다.

뜻밖에 가장 부담스럽게 된 당사국은 중국이다. 일단 거부는 했지만 제3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침묵으로만 일관한다면 중국은 ‘나쁜 아이(북한)를 더 망치는(spoil)’ 길을 택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의 묵인에 북한의 핵 도발이 기생하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 핵의 숙주가 중국이 되는 모양새로 ‘전락’하게 되는 중국 책임론이 부상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북한이 중국에 그만한 역내 안보의 ‘성역’이 될 수 있을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벌이는 패권경쟁은 미국을 역외로 밀어내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건만, 북한의 안보위협적 발호는 미국을 도리어 역내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역설적인 맥락이 아닐 수 없다.

미〮소로 대표되던 이념 대립이 와해되기 전부터 핵과 미사일 등 글로벌 안보이슈에 대한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했다. 이들을 규제하기 위한 관리 규범(governance)는 진작에 합의됐다.

그런데 북한이 대륙을 건너는 미사일과 그 미사일에 얹힐 핵을 갖추는 순간 중국에게 북한은 모순적 존재가 돼버리는 것이다. 5자회담 제안은 그 틈을 적확히 파고 들었다.

중국으로선 5자회담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역내 패권의 주도권(initiative)이 흔들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지난 해 9월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박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이런 상황을 예측한 포석이었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5자회담 제의가 내포하고 있는 가장 취약한 부분 또한 바로 그 점이다. 회담의 성립 자체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는 한달 여 후가 지나면 어떤 식이든 발표될 것이다. 문제는 지난 번 3차 핵 실험에 대한 제재안 보다 더 강력한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별로 없다는 거다. 5자회담 제의는 안보리 결의와 무관하면서도 병행되는 작업이다.

5자회담은 대북 제재만을 위한 방법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를 어떻게 할지 끝까지 묻는 존재론적 고민을 다섯 개 나라가 머리를 맞대 함께 하자는 발상이다. 지난 50년간 이런 관점의 회담 제의는 없었다.

뜻밖에 던져진 5자회담 제의의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