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에 천만평규모 메가유니버시티 설립하자!
1967년 9월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을 불러 “철은 산업의 쌀”이라면서 포항제철 설립 특명을 내린 것은 꽤 알려진 일화다. 박 대통령은 만주군 장교 시절 철강과 석유 생산능력이 전쟁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체감하면서부터 제철공장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5·16 직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입안하면서 철강이 전후방 연관효과가 가장 큰 ‘기간산업 중의 기간산업’으로 공업화의 관건이라는 사실을 재차 인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군사정부는 울산에 30만톤 규모의 일관공정 종합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일찌감치 수립했지만 1962년 12월13일 최고회의에서 건설 승인이 취소됨과 함께 유산되고 말았다. 우선 국내 수요가 부족한 데다 기술 확보방안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외자 8천만 달러를 빌려줄 나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이듬해부터 도입된 무상 3억-유상 2억-상업차관 3억 등 총 8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 가운데 1억2천만 달러가 2차 5개년계획의 주력사업인 포항종합제철 건설에 투입됐다. 포철은 소양강댐과 함께 대일청구권 자금이 쓰인 대표적 사업이다. 이후 포스코로 이름을 바꾼 포철은 한국의 자동차·조선·기계·전자·건설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효율성과 시장가치가 높은 제철회사로서 우뚝 섰다.

그 다음 ‘산업의 쌀’은 반도체. 1982년 이병철 삼성 회장은 미국 방문에서 HP본사와 IBM반도체공장을 둘러본 다음 이듬해 2월 ‘도쿄선언’에서 반도체사업 본격 진출을 공표했다. 이때 한국 전자산업의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10년 전인 1974년 아들 건희 씨가 반도체를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이 회장은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매년 일본에서 상당 기간을 머물면서 일본 산업계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한 끝에 반도체사업에 뛰어들기로 최종 결심한 것이었다. 그의 나이 74세 때의 새로운 선택이었다.

세 번째는 초고속통신망 등 인터넷 인프라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2년 청주교도소에 수감중 앨빈 토플러의 대중계몽서 ‘제3의 물결’을 읽고 우리나라를 지식·정보 강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은 모두 ‘정보화사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김대중 당선자였고, 그는 인수위를 통해 ‘초고속정보통신망 조기 구축’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했다. 이후 5년 임기동안 ‘산업화는 뒤졌어도 정보화는 앞서자’는 표어와 함께 IT드라이브에 약 10억 달러를 투입했다. 그 와중에 KT 경영진 등은 “네트워크 인프라에 과잉 투자하고 있다”면서 반대 분위기가 짙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20세기 우리 경제 발전의 핵심 역량이 철강과 반도체, 인터넷인프라 등 3가지 ‘산업의 쌀’이었다면 21세기 지식정보경제에 있어 핵심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의 쌀’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단수가 아니라 몇 개의 복수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을 든다. 문화산업이나 디자인, 사람 마음을 읽어야 하는 마케팅 등을 생각하면 타당성이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종교적 영성을 새로운 양식거리로 내미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잠시 논의 밖으로 미뤄두기로 하자.

다른 이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성과물인 특허정보가 새로운 ‘쌀’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도서관으로 바뀔 예정인 옛 서울시청 건물을 특허정보도서관으로 특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또 다른 이는 법률·회계·금융·보험·의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뭉뚱그려 지식경제의 ‘쌀’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제조업을 쉽사리 내버려서는 안 되지만 장차 선진국 가운데서도 선두에 서려면 이들 분야가 고도로 발전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이 모든 것을 두루 포괄하면서도 지극히 실용적인 하나의 답은 없는 것일까 있다. 글로벌 유니버시티가 바로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유니버시티는 기존의 대학과 규모, 성격, 구성, 구조, 학사 등 여러 모로 차원이 다른 ‘새(新)대학’을 말한다.

이 대학은 우선 ‘글로벌’에 걸맞게 학생과 교수, 총장과 이사회 등 경영진이 모두 범세계적이어야 한다. 20세기의 최첨단 공장의 대표적 예가 포스코 광양제철소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라면 21세기 최첨단 공장은 바로 현장력과 상상력이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이런 면에서 재빠른 싱가포르는 이미 미국의 명문 예일대의 분교를 유치, 2013년 8월에 예일-싱가포르국립대(NUS) 캠퍼스를 개교할 예정이다. 그들은 차세대 먹을거리로 의료관광과 카지노 등 도박관광, 금융 허브 등과 함께 외국인 유치를 전제로 한 글로벌 교육산업을 상정하고 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는 단지 4개 대학이 있을 뿐인데 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과 뉴욕대 미대 등 현재 8개 외국대학의 국제 캠퍼스가 있다. 이밖에 싱가포르의 대학들과 협력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세계의 최고 수준 명문대가 13개나 별도로 있다.

우리가 세울 새로운 글로벌 유니버시티를 우선 ‘새만금대학’이라 하자. 더 좋은 이름을 나중에 정할 수도 있지만 메인 캠퍼스가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면 그곳은 ‘새만금 지구’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이고, 대학 이름도 지명을 따는 것이 일단 순리이기 때문이다. 새만금대학은 글로벌 유니버시티답게 궁극적으로 전 세계 각지에 10~20개의 캠퍼스 내지 센터를 둘 수 있고 온라인상의 사이버 유니버시티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서는 메인 캠퍼스를 제대로, 훌륭하게, 드넓고 아름답게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학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인데 8천180에이커(약 1천31만평)의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글로벌 유니버시티가 들어서려면 적어도 스탠퍼드대 정도의 캠퍼스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넓이의 평평한 땅은 아마 새만금 지구 외에는 찾기 어려울 듯하다. 새만금지구는 담수호를 제외한 토지 면적이 약 8천500만평이다. 지난해 3월 확정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에 따르면 주로 수출농업전진기지 등 농업용지와 메가리조트 등 관광용지로 개발될 예정인데 글로벌 유니버시티가 들어서면 부가가치가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만금대학은 싱가포르의 Yale-NUS와는 달리 완전한 한국 고유 브랜드로 가야 한다. 삼성과 현대가 처음 수출을 본격화할 때 일본의 소니나 토요다, 혼다와 달리 우리말 받침 때문에 발음이 외국인에게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발음의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전 세계인에게 친숙한 이름이 됐다. 새만금도 곧 세계적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또 하버드나 프린스턴, 옥스퍼드의 명성을 빌리기 보다는 우리 독자적으로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의 국내 대학과는 고교의 일반고-특목고 관계처럼 병존하면서 지향점을 달리해 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외국 대학 분교 등은 현재 추진 방향대로 수도권의 송도지구 등지에 집중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글로벌 유니버시티로서 새만금 대학은 2020년 이후 한국과 아시아 경제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낼 곳이다. 2012-2013년 영국 타임스 고등교육부록(THE)이 펴낸 세계 대학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0위 포항공과대학(포스텍), 59위 서울대학교, 68위 KAIST, 183위 연세대학교 등 4개 대학이 올라있다. 대학순위라는 것이 원래 계량화가 수월한 이공계에 유리하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지만 포스텍은 전교생이 3천2백여명, KAIST는 근 9천명이기 때문에 인재공급이 양적으로 넉넉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만금대학은 적어도 5만 명 이상 많으면 10만 명 이내의 메가유니버시티가 돼야 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명문대는 학생 수가 적은 데 비해 중서부 및 서부의 주립대학은 규모가 월등 큰 편이다. 설립 목적과 역사,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버드대는 학부 6천6백여 명, 대학원 1만4여 명 등 총2만1천여 명인데 오하이오주립대(OSU)는 학부 4만2천여 명 등 총5만6천여 명 규모다. 영국도 옥스퍼드대와 캠브리지대는 2만~2만5천명인데 맨체스터대는 4만 명이 넘는다. 전 세계적으로 10만 명 이상 대학은 54개나 되지만 대부분 개방대, 또는 방송통신대인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세계 대학순위에 드는 학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는 5만 명 안팎인데 이 정도 크기로 시작해서 차츰 규모와 경쟁력을 늘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포항제철을 세울 때 기존 제철공장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존 공장들은 노후한 설비 대문에 효율과 경쟁력이 떨어졌다. 포철이 일관공정의 종합제철소로 태어나면서 한국 철강산업은 세계의 선두로 도약할 수 있었다. 대학교육의 경우는 새만금대학이라는 신규 경쟁자를 투입함으로써 기존 대학의 발전을 촉진하고 독려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아시아의 메인허브 대학이자, 나아가 세계 고등교육의 메카로 발돋움할 새로운 대학을 갖게 될 것이다.



이병효<코멘터리(www.commentary.co.k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