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교육은 세계 정상수준, 대학 교육은 48개국 가운데 22위

2011년11월 영국 유력지 와 잡지 <이코노미스트>, 전통의 펭귄북스 등을 소유한 피어슨교육회사는 세계 선진국 40개 나라를 대상으로 교육시스템 평가보고서를 펴냈다. 각국의 국제 학력평가 점수, 고교 졸업률, 대학 진학률, 교육예산과 각종 사회경제지표를 종합한 순위에서 한국은 1위의 핀란드에 바짝 근접한 2위를 기록, 매우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이 평가는 초중등 교육을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고등(대학)교육의 질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대학교육 수준과 관련, 고려대를 포함한 세계 24개 연구중심대학의 협의체인 유니베르시타스 21은 2011년5월 세계 고등교육의 국가별 순위를 조사, 발표했다. 세계 48개국 가운데 한국은 22위(포르투갈, 스페인과 동률)로 점수가 가장 높은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60%의 수준이라고 평가됐다. 고등교육에 대한 GDP 대비 정부예산은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높았으나 개인 부담을 감안하면 1위 미국, 2위 한국, 3위 캐나다, 4위 칠레의 순이었다. 대학 진학률(고등교육 참여율)은 한국이 세계 최고였으나 여학생 비율은 인도와 함께 최하위였다. 초중고 교육은 세계 정상수준인데 대학 교육은 48개국 가운데 3개국 동률 22위로 한 중간에 위치한 셈이다.

한국의 초중고 교육이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대학 교육이 이렇게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후 정밀한 연구로나 밝혀질 일이지만 초중고의 경우는 첫째, 학부모의 교육열이 비교적 높고 둘째, 사교육이 성행하며 셋째, 학생들의 학습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넷째, 교사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최근 높아진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 교육의 질적 저하는 대학입시의 경쟁이 심해 일단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학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대학에서의 공부가 취업 준비와 ‘스펙 쌓기’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고, 대학에 대한 투자가 연구보다는 인건비로 쓰이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대학 재정투입이 세계 2위인 것과 같이 대학등록금 수준은 명목상 2위이지만 1인당 GDP를 고려해 환산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환율 기준 1인당 GDP가 미국의 절반 이하인데 교수 봉급은 거의 대등한 수준이니 대학 등록금이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난 대선의 공약 덕분에 교수 봉급수준 조정 등 인건비 절감보다는 대부분 국가예산을 들여 반값등록금을 만들어주게 돼있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다.

2010년 현재 한국에는 4년제 202개, 2년제 145개 등 총 347개 대학이 있다. 대학생은 332만 명으로 국민 14명 중 1명꼴이고, 대학진학률은 82%다. 소규모 사립대학이 많은 미국, 일본보다는 대학 수가 적지만 영국, 프랑스 등 국립대 중심의 유럽국가들 보다는 많은 편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8학년도에는 전체 대학 입학정원(59만명)은 고교 졸업자보다 많아지고, 2023학년도에는 4년제 입학정원(44만명)이 전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선다.

이처럼 대학이 흔하고 정원도 많은데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갈 만한 학교, 보낼 만한 대학이 없는 것이 문제다. 대학간, 학과별 수직적 서열이 수능시험 점수에 따라 명확히 정해지고 융통성이 거의 없는 바람에 수험생의 선택 범위가 좁아든다. 전공이 맞으면 대학이 틀리고, 대학이 맘에 들면 전공이 싫어서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요행히 둘 다 맞아도 점수대가 미치지를 못해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깝기만 하다.

지방대나 하위권 대학은 물론이고, 어엿한 유명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돼서 백수 또는 백조로 지내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전공도 취업현장의 고용 수요보다는 학생들의 선호를 반영한 인기학과와 졸업하기 쉬운 전공 위주로 늘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보다 한국의 불문학 전공자가 더 많고 독일보다 독문학 전공자가 많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오게 된다. 또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전공자가 매해 수만 명씩 배출돼도 유명 디자이너는 극소수고, 대학마다 컴퓨터학과가 있어도 졸업생의 전공관련 취업률은 극히 저조한 현상이 빚어진다. 또 성공률이 매우 희박한 방송연예과, 실용음악과가 줄이어 생겨나 연예계 지망생을 양산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법대와 의대는 모두 전문대학원으로 넘어갔고, 사범대를 나와도 교사가 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는 만큼 어렵다. 대학 졸업후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실전에 유용한 전공을 택하려 해도 예컨대 국제금융과는 찾아볼 수 없고 경제과, 경영과만 즐비하다. 요컨대 나와 봐야 도움이 안 되는 곳은 많은데 들어가고 싶은 대학과 전공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존의 대학체계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을 꼭짓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학 서열이라는 가파른 피라미드에서 한 칸이라도 위에 올라서려고 치열하게 다투는 와중에서 맨 꼭대기의 승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다 패배자가 되고 마는 ‘불행의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다. 이 피라미드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이 포스텍과 KAIST 등 두개의 과학기술대학이다. 이밖에 3군 사관학교와 경찰대 등 특수 교육기관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국내 대학체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국 대학으로 유학하는 학생 수가 2011년 현재 총26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한국 유학생 수가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3위를 유지하고 있고 인구 대비로는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미국과 일본, 중국과 호주 등 일부 국가 유학생의 경우 학업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외화를 낭비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심각한 정도에는 이르지는 않은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몇 년 내로 넘어서게 되면서 일부 지방대들은 자구책 차원에서 중국 유학생을 자질을 따지지 않고 유치하는 바람에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고 이들 대학의 단계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김영삼 정부의 대학설립 준칙화정책에 따라 ‘1군(郡) 1대학’이라고 할 정도로 난립한 신설대학들 가운데 일부는 통폐합 등의 방법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만금대학의 창학은 한국 대학체계를 빅뱅에 가까운 수준에서 뒤흔들어놓을 것이 틀림없다. 기존의 대학들은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경쟁자를 맞게 돼 자신들도 환골탈태하는 쇄신을 하지 않는 한 발전은커녕 생존을 위협 받게 될 것이다. 새만금대학은 기존 대학들에 대해 자극제 노릇을 해야 하지만 굳이 견제자가 될 필요는 없다. 새만금대학의 경쟁자는 해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만금대학은 대학 구조조정을 넘어 대학개혁의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국민대통합은 새만금대학이 대학개혁 못지않게 기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대통합은 계층과 세대, 성별의 문제도 절실하지만 역시 지역적 균형발전이 급선무라 할 수 있다. 지난 반백년 동안 깊이 뿌리내린 지역차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전국 모든 지역을 균등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다분히 몰역사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동안 지역차별의 피해를 본 호남에 대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생산적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새만금대학은 국민대통합을 위한 가히 최선의 카드라고 할 만하다.

역대 영남정권에서도 국무총리직과 농림부 장관은 거의 호남 몫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통령제에서의 총리는 자리는 높아도 실권은 없는 ‘얼굴 마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농림부 장관은 각료 가운데 비교적 미미한 존재였다. 군과 감사원장, 국정원장, 검찰청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 인사가 특정 지역 출신에 의해 독점되는 것과 각 부처의 차관·차관보·국장급 요직에서 다른 특정지역 출신들이 배제되는 것이 더 큰 인사상 문제였다고 봐야 한다.

묵은해 연말에 어떤 인사가 “해양수산부가 부활하게 되면 부산이 아니라 전남 지역에 본부를 두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해서 잠깐 화제가 됐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꼭 바람직한지 자체가 의문이다. 정부 부처를 유치하는 것이 해당 지역에서는 큰일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생각만큼 실속 있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느 한쪽으로 갈 것이라고 널리 예상되는 일을 뒤집어 빼앗아 오다시피 할 때의 부작용과 후유증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새만금대학은 전북 지역은 물론 호남지역 전체에 공업단지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뿐 아니라 자부심의 원천이 될 것이다. 가까이 이웃한 대전 및 충남 남부지역도 영향권 안에 들어 여러 가지 혜택을 입을 수 있다. 더 큰 그림을 본다면 서울의 주요 대학과 지방 국립대학이 하나의 교육문화 생태계를 이루고 영남의 포스텍, 호서의 KAIST, 호남의 새만금대학이 솥의 세 발을 이루는 형세가 되어 또 하나의 대안적 생태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병효<코멘터리(www.commentary.co.k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