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내 5만명 목표로 초기건설비 2조, 10년내 10조기금 필요
기존 대학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근본적 개혁을 불러올 새만금대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돼야할까. 우선 이 대학은 순수한 ‘진리 탐구’와 분방한 ‘학문의 자유’보다는 ‘상생’과 ‘우애,’ ‘평화’와 ‘공영’ ‘실천’과 ‘홍익’ 등을 설립 이념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싶다. 바꿔 말해, 순수 학문보다는 실용 학문, 과학기술보다는 경제문화, 이론학설보다 이용후생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개인과 집단의 모순과 상충을 공동체의 삶으로 포용하기 위해 사회정의와 공평분배 등의 가치에 앞서, 갈등 조정 및 타협, ‘공존동생’의 이치를 밝혀내는 연구와 더불어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지역공동체 및 글로벌 가치 창출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서구의 대학은 전통적으로 진리와 자유, ‘비판적 사고’를 내세워 왔지만 기실 사회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체제수호자와 기술자들을 길러내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현실적으로 교수·학자 등을 자체 공급하는 외에 목사, 법률가, 의사 등 전문직을 양성하는 것이 기본 기능이었고, 산업혁명 이후 점차 교사와 기자, 농업기술자, 엔지니어, 약사, 간호사 등 준전문직 배출로 확산돼 갔다. 20세기 들어 유럽의 선별적 고등교육체제보다 미국의 보편적 고등교육체제가 주류를 이루면서 교육의 민주화가 진전됐지만 21세기에 와서 대학은 고유의 리서치 기능 외에 학생들이 몇 가지 핵심 고급지식과 수학·언어·컴퓨터 등 기본기능의 획득이라는 미시적 목표에 더 골몰하는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새만금 대학 캠퍼스와 관련해 1천만평 규모의 부지를 앞서 제시했는데 국토가 비좁은 우리나라에서 꼭 그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래야 할 이유로 첫째, 해외 최고 수준의 대학들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점 둘째, 서울의 유명대학들은 원래 넓은 땅을 잡았지만 세월이 가면서 건물이 빽빽하고 답답한 캠퍼스가 됐다는 것을 감안해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는 점 셋째, 메가유니버시티는 기존 도시와 떨어진 곳에 교수·직원·학생 및 가족들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캠퍼스 타운’이 들어설 넉넉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규모의 경제는 학생 수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1960년 서강대가 개교했을 때 많은 기대를 모았고, 곧 상위권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교수들을 당시 다른 대학의 2배 수준에서 봉급을 줬고 교과과정을 미국 수준으로 설정해 학생들을 맹훈련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서강대는 여전히 유수의 대학이지만 국내 최상위권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오히려 초창기보다 못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그 이유로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이라는 사실이 초기에는 강점으로 작용했지만 장기적으로 한계가 된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의 28개 예수회 대학 가운데 가장 큰 편인 명문 조지타운대, 보스턴칼리지, 마케트대 등이 모두 1만5천명 안팎의 소규모인 것처럼 서강대도 비교적 적은 학생 수를 유지해왔고 캠퍼스도 포화상태에 이른 지 오래여서 연세·고려대에 경쟁력이 떨어졌다.

따라서 새만금대학은 개교 5년 이내에 대학과 대학원을 합해 적어도 5만명 규모에 이르러야 하고 10~15년 이내로 10만명 규모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교수요원도 초기에는 학생 수와의 비율을 20대 1, 궁극적으로는 10대1까지 올려야 세계수준에 맞출 수 있다. 교수요원을 개교 시 2천명 이상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1만명까지 늘려가야 한다. 대학직원의 수도 교수요원과 비슷한 수준에서 시작해서 결국 교수요원의 2배 수준까지 충원해야 할 것이다. 교수진은 노벨상 수상자와 수학계의 필즈상 수상자 등 세계적 석학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교수진의 전체적인 보수 수준도 경쟁대학보다 훨씬 높아야 할 것은 물론이다.

또한 글로벌 유니버시티로서 교수요원과 학생 모두 한국인과 외국인 비율이 50대50이 되도록 목표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선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와 서남아, 구미에서 수준 높은 유학생들을 다수 확보해야 한다. 50%의 외국인 학생 가운데 줄잡아 30%는 중국, 10%는 일본, 나머지 10%는 동남아 및 구미 등 여타 지역 국가에서 온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싱가포르의 교육산업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듯이 우리도 잠재적 교육시장으로서의 중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0년 일본의 오이타 현과 벳부 시, 리츠메이칸 학원 3자 협력으로 설립된 리츠메이칸아시아퍼시픽대학은 5천500여명 규모인데 일본인 56%, 외국인 44% (80여개국 출신)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뒤이어 2004년 사학명문 와세다대는 600명 규모의 국제교양학부를 설치, 영어로 교습하고 있다. 이들 두 대학은 일본의 국제화와 함께 중국 및 동남아 유학생을 일본에 끌어들이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09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를 설립했다. KAUST는 홍해안에 1천89만평의 캠퍼스와 100억달러의 설립기금을 보유하는 대학원과정 대학인데 학생 수는 800여명에 불과하다. 사우디 정부는 국가발전을 위해 ‘중동의 MIT’를 만들려고 야심적인 투자를 했지만 과기대에 갈 만한 인재가 부족해서 소규모 대학원대학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는 인재와 경험, 노우하우 부족 때문에 석유회사 아람코가 이 대학을 건설해서 첫 3년 동안 운영하도록 위탁했다. KAUST는 사우디 최초의 남녀공학으로 대학 구내에는 종교경찰이 없고 여성 운전도 허용하며, 교습언어로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로만 가르치고 있다.

새만금대학의 강의는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등 3개 언어로 이뤄질 것이다. 다만 한국어 강의는 전체의 10~15% 정도로 제한하도록 해서 학생들이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스럽게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아울러 모든 학부생은 졸업할 때까지 2개 국어에 유창하고 나머지 1개 언어에 대해서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학 입학한 다음 1년 동안 언어집중 교육을 받는 기간을 갖고 모국어 외의 제1외국어와 제2외국어, 통계학 및 컴퓨터언어에 대해 배우고 익힌다.

새만금대학은 기본적으로 종합대학이기 때문에 각종 전공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 기술에 중점을 두는 이공계보다는 국제법률·국제무역·회계보험학 등 고급서비스분야와 의학·의공학·약학·노인학·직업치료 등 전문의료분야, 경영·교통관리·공공정책· 등 행정관리분야, 건축·음악·미술·디자인·무용·공연예술 등 예술디자인분야, 교육·소통·사회복지 등 정보사회분야 등 비이공계에 중점 투자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자 전략이다. 예컨대 의공학부는 공대가 아니라 의대 안에 설치함으로써 졸업자는 의사 자격을 얻음과 동시에 첨단 의료장비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언어지역학부와 ‘문·사·철’ 등 인문학부와 경제학 등 사회과학부도 어느 정도 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술디자인분야는 세계로 퍼지고 있는 ‘한류’를 우리나라 수출 주력산업의 하나인 ‘K-컬처’ 산업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기존 예술대학의 장르의 병립과 연합 단계를 넘어서서 종합예술 차원의 ‘one source-multi use(OSMU)’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한다. 실제 월트 디즈니가 세운 미국의 캘아츠(CalArts)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둔 학교인데 새만금대학은 한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이공계보다 비이공계 전공을 우선하는 이유는 포스텍이나 KAIST 등 과학기술 중심대학과의 중복 투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21세기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여전할 것이고 우수한 이공계 학위소지자의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지만 이는 서울대 등 기존 대학의 이공계 학과와 포스텍과 KAIST 등 과기중심대의 정원을 대폭 확충함으로써 채워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여겨진다.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인구가 적은 한국으로서는 인적 자원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합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21세기 경제에 과학기술 인재 못지않게 경영·관리·법률·행정 분야의 인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대학 학사제도는 졸업정원제가 그 기간이 될 것이다. 즉, 입학 때 특정 전공에서 100명을 뽑았다면 졸업은 70명 이내에서 절대기준 합격자에 한해 시켜주는 것이다. 예컨대 회계학부에서 100명이 입학했다면 2·3·4학년 진급할 때 의무적으로 약 10명씩 성적순으로 탈락시키고 졸업시험에서는 절대기준으로 사정해서 기준미달자는 1년 뒤 재시험 기회를 준다는 식이다. 재학생 중 탈락자는 일반 대학에 편입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길을 열어주고, 졸업시험 2회 낙제자는 이수증(디플로마)만 수여한다. 입학전형은 수능시험의 최저기준은 폭넓은 인재 선발을 위해 비교적 낮은 선에서 정하되 특정 과목, 논술, 학생부, 특기 중에서 한 가지라도 탁월한 성적을 보이면 우선 선발하도록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재정, 돈의 문제다. 미국의 유명 대학은 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학생 1명당 약 10만달러 안팎의 연간 예산규모를 갖고 있다. 즉 3만명 규모면 악 30억달러, 5~6만명 규모면 50억달러의 매년 수입 지출규모를 갖고 있고, 사립대는 주로 등록금과 기부금, 재단 지원 등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반면 공립대는 등록금을 사립대의 대략 3분의 1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부족분을 주 정부 등에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새만금대학 역시 등록금을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책정하는 대신 80% 이상의 재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장학제도를 잘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러면 새만금대학을 생기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앞서 사우디아라비아는 KAUSA의 800명 대학원을 위해 100억달러의 기금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 250억 달러까지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우디정부의 돈을 대학의 명의를 빌려 합법적으로 분산 투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그 정도 규모 대학의 설립 운영에 이렇게 많은 돈이 안 든다는 지적이다.

1884년 미국 스탠퍼드 부부가 16살짜리 외동아들을 잃은 후 대학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하버드대 총장을 찾아가서 물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하버드와 똑같은 대학을 만들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 찰스 엘리엇 총장은 “1천5백만 달러면 충분할 것 같군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 스탠퍼드일가는 1천만평 땅을 포함해 모두 4천만 달러(2010년 환산 약10억 달러)의 자산을 기부했다.

새만금대학을 위해 얼마가 필요할지는 세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지만 1천만평의 부지를 정부가 무상 기여하는 것을 전제로 건설비와 초기 비용 등 2조원 남짓(20억 달러)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해 최대 10조원 규모의 대학기금을 10년 이내에 축적하도록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합하더라도 4대강 사업을 하느라 쏟아 부은 22조원에 비하면 절반 남짓에 불과하고, 우리 경제와 교육에 훨씬 더 생산적인 성장동력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이병효<코멘터리(www.commentary.co.k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