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협력'만이 살길이다
세계를 집어삼킬 것 같았던 애플 제국이 흔들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카리스마와 창조성을 갖지 못한 팀쿡 CEO가 이를 만회하기엔 도저히 역부족인 것 같다.

작년 아이폰5의 애플 맵 대실패는 잡스 사후 팀쿡이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증명해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조직의 장으로서 신제품의 콘텐츠 구성과 품질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부 디자인과 개발팀들의 오만과 태만이 어이없는 실수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짐작된다.

한달 전 한국의 초기 예약판매 열기가 중국의 부진과 대비되어 미 CNN이 서울에서 현장 중계할 정도로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달 판매량의 뚜껑을 열어보니 겨우 40만대 정도에 그쳤다. 업계가 예상한 150-200만대와는 턱없이 적은 수였다.

기존의 아이폰4 소유자들은 별로 새로운 것도 없는데 비싼 새 버전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비해 작년 9월말에 출시된 갤럭시 노트2는 지금까지 115만대에 이른다.

태블릿에서도 애플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해 3분기 애플의 태블릿 시장 점유율이 전분기의 65.4%에서 50.4%로 급감한 반면 구글 안드로이드로 구동되는 삼성의 점유율은 2분기 9.4%에서 18.4%로 급성장했다. 그 다음이 아마존의 킨들 파이어가 9%, 대만의 아수스텍이 8.6%로 뒤를 좇고 있다.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급증하자 구글 플레이를 통한 콘텐츠의 다운로드가 50% 안팎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애플 앱스토어에서의 콘텐츠 다운로드 증가는 답보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애플은 스스로 그어놓은 혁신의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상대인 삼성과 구글, 아마존은 넓은 광장에서 자유롭게 상상하며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가격대의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애플은 자신이 최초로 설정한 크기와 둥근 모서리, 폐쇄적인 운영 체제라는 요새 안에서 파상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적들의 공세를 지금 힘겹게 방어해내고 있는 모양새다.

IT의 독점력은 그 수명이 너무 짧은 것 같다. 그런데 묘한 것은 독점자의 내부에서 수명 단축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플이 삼성의 ‘따라하기’에 특허소송으로 맞서지 않고 대범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혁신을 오히려 스스로 파괴한다는 각오로 초심을 유지했더라면 갤럭시가 아이폰을 결코 추월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튠의 성공에 너무 취한 나머지 앱스토어를 자신만의 생태계로 구성한 점도 큰 실책으로 귀결되고 있다.

애플은 지금이라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특허 전쟁을 걷어내고 모든 가능성에 대해 창의성을 발휘할 다짐을 하고 개방적인 운영체제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이 ‘창조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창조성’의 어두운 측면인 ‘자기파멸적 속성’을 간과한다. 기업도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밀림의 사자는 배가 부르면 조용히 쉰다. 만약 사자의 식욕이 멈추지 않는다면 남아도는 동물들은 없어지고 결국 죽어버린 밀림이 되고 말 것이다.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그 생태계는 소멸된다. 그러므로 자연은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독점자를 병들게 하여 해체하거나, 그를 제거하는 새로운 도전자를 불러들인다.

미국 ITC가 애플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 삼성전자에게 휴대폰 판매액의 88%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보증금을 맡겨야 한다고 판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보호무역주의의 선봉장인 ITC가 다음 달 최종 판정에서 수입금지와 판매 중지 조치를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 시장의 과도한 보호와 특허 장벽은 미국의 강점인 ‘창의성’의 쇠퇴를 알리는 서장이 될지도 모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하례식에서 “10년 안에 삼성의 사업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도전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언제나 초심의 자세를 유지할 때 정상의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다.

중국 IT기업들이 무섭게 삼성을 좇아오고 있다. 삼성은 애플이 했던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삼성은 중국의 도전자를 깔보지 말고 혼신을 다해 맞서는 초심의 도전자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과 같은 소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대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흔히 갖는 ‘자만심’의 함정에 빠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