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위원들, 사심 버리고 '공동선' 추구해야
인수위에 학자들이 너무 많다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학자들은 세상을 정연한 논리와 이론적 구조로 파악하려는 직업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문제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잘 설명하는 편이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순된 현상이나 나중에 큰 골치거리가 될 잠재적 위협을 대체로 알지 못한다.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적인 것으로 무시한다.

학자들은 소위 ‘프레젠테이션’형 지식인이긴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실천적 스킬은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무에서 유를 건설했던 개발시대에는 선진 지식의 도입자이자 설계자인 학자들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온갖 문제투성이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성숙기의 한국경제에 ‘공허한 이론가’일 확률이 높은 학자들이 문제해결자가 될 수 있을까는 솔직히 의문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현장을 잘 아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소위 고시 출신 공무원들은 다 ‘아래 것’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뿐이지, 자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줄로 알고 있다. 또 잦은 인사 이동으로 인해, 들어왔을 땐 우수한 자원이었으나 나중엔 학자들의 전공 실력에 밀리고 만다.

현장을 잘 알기로 말한다면 기업인이나 소상공인, 시민단체들이 월등하지만 이들은 눈 앞의 자기 이익 혹은 유토피아적 시각을 ‘편집광적으로’ 주장하고 타인에게 강요하려고 하는 게 큰 문제다.

더욱 큰 문제는 학자와 공무원, 현장 기업인들이 특정 분야와 업종, 산업을 매개로 먹이사슬처럼 서로 엮여 있다는 점이다. 이들 간의 보이지 않는 연대는 대중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이들이 인수위라는 무소불위의 폐쇄적 공간 속에서 행여 공동체의 선보다는 특정 업종의 선으로 포장할 우려가 있다는 거다. 학자들로 인수위가 구성되었다는 것도 언뜻 보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먹이 사슬의 정상은 공무원과 대기업이기 때문에 학자들의 은밀한 ‘배신’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야당과 일부 언론의 지적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따라서 인수위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인수위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이 잘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이런저런 폐해를 막고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서 판단을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도 국회 상임위를 통해 특정 이해집단들과 엮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언론의 감시도 있고 자신들은 지역구의 표로 당선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 인수위에 참여한 정치인들은 각 분과를 조정하는 업무를 학자들에게만 맡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다 따지고 보면 가장 초연한 입장에서 공동선의 잣대에서 판단할 사람은 당선자에게 있다. 이번에 인수위에 들어간 학자들이 부문간 이해 당사자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각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유연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학자 같지 않은’ 학자이길 바라면서 진짜 인수위의 성공 여부는 ‘당선자’의 몫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