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대협 막무가내 어거지…언론도 국민여론 호도 반성해야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개인간 약속이든 기업간 상거래 계약이든 국가간 양자협정(bilateral agreement)이나 국제적인 다자협정(multilateral agreement)이든 모든 형태의 협상과 합의는 ‘신뢰’(‘in good faith’)라는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In good faith’란 구체적으로 ‘정직, 믿음, 성실의 기본원칙을 따르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in accordance with standards of honesty, trust, sincerity’)’는 뜻이다.

이번 한·일간 위안부문제 협상 타결 이후 합의사항의 이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방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의를 깨자는 것과 다름없다. 협상 타결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발과 반대시위에 관한 보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은 ‘합의’는 불순한 의도의 일시적 ‘담합(collusion)’에 불과하다. 이번 한·일 양국간 협상 타결이 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민을 우롱하는 담합인가?

20여 년 만에 타결된 위안부문제 협상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끝나기 사흘 전인 작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의 외교장관은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일본 총리의 사죄' 등을 핵심으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양국 정상이 기존 주장에서 한 발씩 물러서며 한·일간 최대 난제(難題)로 남아있던 위안부문제가 20여 년 만에 타결된 것이다.

합의문 발표에 이어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며 합의문 내용을 확인했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착실히 실시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총리의 책임 인정”과 “정부 예산으로 보상” 등을 근거로 "사실상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발표하는 데는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에 불만을 가진 일부 국민들을 향한 박 대통령의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 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해를 해주시기 바란다"는 대국민 메시지나 아베 총리의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위안부 관련)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한·일은 새로운 시대로 향할 것"이라는 기자회견 발언은 이번 합의사항을 이행하려는 양국의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 한일위안부 협상과 관련해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소녀상 이전을 놓고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이면합의를 했다는 등 전혀 근거없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사실과 진실이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사진=연합뉴스
“10억 엔에 우리의 혼(魂)을 팔았다”?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제1야당의 대표는 ‘굴욕’, ‘외교 참사’라는 등 험한 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10억 엔에 우리의 혼(魂)을 팔았다”며 국민을 상대로 “100억 원 모금운동”을 벌이겠다고도 했다. 우선, 지난 20여 년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주장에 이끌려 다니며 정권이 네 번 바뀌도록 위안부 문제 타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번 협상 타결을 비난하고 나설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 발표 당일 88세의 한 피해자 할머니는 "정부가 애쓰고 법이라는 게 있으니까 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일부 피해자 할머니와 정대협을 중심으로 한 거센 반발 분위기 속에 묻혀버렸다. 과연 이번 협상 타결이 국민으로부터 지탄 받아야 할 일인가?

1992년부터 만 24년간 수요집회를 주최해 온 정대협도 그들의 입장문을 통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지만……”이라며 일본의 책임 시인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합의가 "피해자들과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고 성토하며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하면서 협상 타결 이후에도 수요집회를 계속 벌이고 있다. 정대협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이유를 짐작할만하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1990년 11월 발족한 정대협은 수요집회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위안부문제 해결을 주도해왔다. 정대협은 위안부문제를 국내외적으로 공론화시킨 공(功)도 있지만,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정대협이 정해놓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라는 틀에 갇혀 20여 년을 전전긍긍해왔다.

작년 말 격주간 시사지 <미래한국>은 '정대협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좌파단체들과 연계되어 있는 정대협의 실체를 밝혔다. 정대협 홈페이지에 공동대표로 등재된 여성대표 3명과 실행이사들의 행적을 보면 이 단체의 성격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다른 좌파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12년 대선 당시 반 박근혜 운동에 앞장섰거나 통진당해산 반대운동 등에 나섰었다. 그리고 이들 여성임원들의 배우자 중에는 간첩 혐의나 국가보안법위반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사람들도 있다.

정대협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김 국방위원장 서거라는 급작스러운 비보에 북녘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는 조전(弔電)을 북측에 보내기도 했다. 위안부문제를 해결한다며 결성된 단체가 김정일 사망에 나서서 조전을 보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불가역적(不可逆的)’ 합의

이번 합의문에 쓰인 '불가역적(不可逆的)'이란 용어의 적절성을 놓고도 여론이 분분하다. 영어로 ‘irreversible’(또는 ‘irrevocable’)에 해당하는 용어로서 북한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상대와의 합의에나 어울릴 단어가 이번 합의문에 들어간 것은 양국 모두가 ‘신뢰’(‘in good faith’)라는 기본정신에만 의존하기에는 껄끄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만큼 한·일 양국 모두에 민감한 사안이고, 협상 타결 후 양국 국민의 반발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위안부문제는 일본이 어떤 궤변을 늘어놓던 간에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며,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평생의 한(恨)이자 고통이다. 그러나 피해자들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명분을 찾지 못한다면 일본의 어떤 사과나 보상도 피해자들의 아픈 과거를 지우거나 그 고통을 씻어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합의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마음의 평정을 찾는 전기(轉機)가 되도록 현명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불가역적’ 합의 때문이 아니라 고령의 생존 피해자들의 고통의 시간을 더 이상 연장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후 독일수상들이 무릎을 꿇고 나치의 유태인학살 만행을 사죄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일본총리의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놓고 ‘수요집회’가 아니라 ‘매일집회’를 한들 무엇이 변하겠는가? 그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볼모로 이들의 고통을 24년간이나 헤집어 온 정대협은 이번 합의를 기점으로 국내외의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멈춰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며칠 전 “소녀상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문제”라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내용은 아쉽고 실망스럽다. 광화문광장 세월호 시위텐트를 서울시에 미뤄놓고 2년째 방치하고 있듯이 정대협의 ‘수요집회’도 민간단체의 일이니 계속 방치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정대협이 주장하듯 소녀상이 “위안부문제 해결과 평화를 외쳐 온 수요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의 상징물”이라면 이 소녀상을 길거리에 계속 세워놓고 한·일간 갈등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추모장소에 모셔놓고 기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 한일 양국 정부간 타결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굴욕적인 외교 참사'라고 규정하고 규탄대회를 개최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2월 31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협상 수용 불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언론이 국내외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지난 1월 6일 정대협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 만 24주년을 맞는 1212회째 집회를 개최했다. 약 1500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이들은 "소녀상 이전은 있을 수 없다"며 소녀상 옆에다 위안부 할머니 석고상 하나를 추가로 갖다 놓기도 했다. 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정대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한·일 양국 정부의 태도가) 건방지기 그지없다"며 "양국 정부의 협상 내용을 전부 무시하겠다"고까지 했다. 이번 협상 타결로 입지(立地)가 흔들리게 된 정대협의 궁여지책일 수도 있는 이런 군맹무상(群盲撫象)의 억지를 우리 언론은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일부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이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100억 원 남짓의 돈을 받고 일본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줬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국가간의 외교적 협상이 어느 한 쪽 당사국의 주장과 요구대로만 타결될 수는 없다. 더욱이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는 상대와 20여 년을 끌어온 줄다리기 끝에 이뤄진 이번 협상은 어느 한쪽이 완승할 수 있는 협상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 합의는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생존해 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로 어렵게 이뤄낸 성과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번 협상 타결 이후에도 계속 반대시위를 벌이는 정대협을 위시한 시민단체들이 전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언론이 이들의 행적을 크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여론을 오도(誤導)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번 합의사항들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한·일 관계를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나라와 피해당사자들을 위하는 길이다. 우리 언론이 국내외의 갈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이다.

좋은 것을 볼 것인가 나쁜 것을 볼 것인가?

나치의 유태인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최장수 생존자였던 체코 출신 알리스 헤르츠 좀머(Alice Herz-Sommer) 할머니가 2년 전 11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유태인강제수용소에서 나치에 의해 처형당했고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선생이었던 그녀 또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독일의 패망과 함께 풀려났다. 그녀는 1986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내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매일 3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며 살았다.

그녀는 장수의 비결에 대해 “우리가 좋은 것을 볼 것인지 나쁜 것을 볼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 달렸다. 당신이 남에게 좋게 대하면 남들도 당신에게 좋게 대한다. 남에게 베풀면 되돌려 받는다.”라며 “낙관적인 마음가짐(optimism)”이 그녀의 삶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총 238명 중 금년 1월 현재 국내 생존자는 42명(국외 생존자 4명 포함 총 46명)뿐이다. 지난 1월 13일에는 90대 할머니가 자신도 위안부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소녀상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문제”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고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피해자 할머니들 스스로 시위단체에 이끌려 길거리시위로 계속 허송세월 할 것인지 정부를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이다. 세월은 인간의 기대만큼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