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을 최선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운 정치를 고대한다

한국 정치의 나아갈 방향, “뷰티풀 마인드”

차선을 최선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운 정치를 고대한다



일단, 지난 대선에서 한 바탕 새 정치 바람이 불었으니, 한국 정치는 희망이 있다. 이제는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런데 도대체 새 정치란 무엇일까 소극적으로는 문제가 많았던 기존의 구태정치를 청산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국민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감동을 주는 정치적 노력을 통해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와 국민통합은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공리주의, 그리고 불가능성의 정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역설한 공리주의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봤다. 개인의 행복의 합이 사회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사회구성원 각자가 최대의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면 사회는 그만큼 행복한 사회가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 이해충돌로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우리는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전체 이익의 극대화로 이어지지 않는 이런 현상을 이른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한다. 어떤 한 모임에서 한 명의 매우 매력적인 미인을 두고 여러 명의 남자가 다투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남자들은 저마다 최고의 행복(미인)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서로 간의 대결과 질투와 갈등이다. 이런 갈등이 심화되면 그 모임은 깨지고 만다.


1972년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는 민주주의 같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는 개인들의 선호를 통합해 하나의 합리적이고 유효한 사회적 선호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애로의 불가능성의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불가능성의 정리 역시 구성의 오류를 지적한 것으로 공리주의적 관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결국 최대다수의 최대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사회를 통합해야 할까


존 내쉬와 뷰티풀 마인드

2002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한 론 하워드 감독, 러셀 크로우 주연의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는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수학과 출신의 천재 수학자이자 1994년 노벨경제학 수상자 존 내쉬(John F. Nash Jr.)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실화영화다.


존 내쉬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오히려 사회 전체에 해가 된다는 점을 밝히고, 사회구성원들이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서‘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면 (비록 자신이 가장 원했던 최적의 이익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이른바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서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내쉬의 균형이론이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 제목은 그런 내쉬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가 양보하고 협동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가 새 정치로 추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 내쉬 균형이며, 내쉬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새 정치는 아름다운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단,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강자가 먼저 양보하라

그것은 강자가 먼저 그리고 좀 더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게 가진 약자가 양보할 수 있는 양은 강자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한 국가사회에서 강자란 정치권력을 쥔 여당과 경제력을 장악한 부유층이다. 굳이 막연하고 규범적인 차원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강자가 먼저 그리고 좀 더 양보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안 내주려고 버티다 판이 깨져 자신마저 상당한 피해를 입기보다는 먼저 조금 더 양보해 내쉬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지킬 게 더 많은 강자들에게 사실 더 유리하다.


약자의 최선의 전략도 양보다

약자 역시 강자의 양보에 협력해 자신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한다. 강자가 먼저 양보함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이에 협력하지 않고 최대의 이익만 추구하면 처음 몇 번은 원하던 최대의 것을 얻어낼 수 있다 해도 계속 그럴 수는 없다. 강자일방적인 양보를 계속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면 결국 내쉬 균형은 깨지고 만다.


이는 미시간 주립대학교 로버트 엑셀로드(Robert Axelrod)교수의 실험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엑셀로드 교수는 서로 협력하면 모두가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서로 배반하면(협력하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조직했다. 그 결과 정치처럼 계속 반복되는 게임의 경우 최선의 전략은 ‘네가 한 게임에서 협력하면 나도 그 다음 게임에서 협력해 보답할 것이고, 네가 한 게임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나도보복으로그다음 게임에서 협력하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상응행동전략(tit-for-tat strategy)이라고 하는 이 전략은 여야 간에 게임이 계속 반복되는 정치에서도 최선의 전략이 된다. 따라서 강자가 양보할 때(협력할 때), 약자도 양보하는 것(협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강자와 약자가 이렇게 협력하면 국민통합은 저절로 이뤄진다. 결국, 차선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차선을 최선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운 정치를 기대한다

더욱이 여야가 협력하느냐 협력하지 않느냐의 결과는 여야 두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 모두의 현재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왕 새 정치를 하겠다고 한 만큼, 이런 점들을 고려해 최선을 최선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차선을 최선으로 추구하는, 그리고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과 아름다운 정치를 우리 정치인들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