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한국경제 상황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영문 명칭인 'korea'와 태극 도안을 사용하고 있는 국적 항공사의 날개가 접힐 판국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의 무리한 임금 인상요구로 인해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파업을 빌미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조종사들의 비뚤어진 특권의식을 바라보는 일반 노조와 국민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한국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수용해야 하는 대승적 차원의 조종사 노조의 결단력이 필요할 때다.

   
▲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의 임금37% 인상요구와 관련해 “한국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는 전문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대한항공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연봉 37% 인상요구로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사측은 기본급과 비행수당을 합친 총액 기준 1.9%인상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방침으로 양측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공개한 운항승무원의 최근 3년간 임금인상률을 살펴보면(총액기준) 2012년 3.3%, 2013년 동결, 2014년 2.1%로 일반직과 같은 수준을 적용받았다. 그러나 조종사 노조가 예년의 10배가 넘는 임금인상률을 요구하면서 일반노조마저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노조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조종사 노조의 쟁의 관련 찬반투표는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닌 노조 집행부의 명분만을 내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노조는 지난해 말 사측과 임금협상에서 1.9% 인금인상에 합의한 상태다. 

조종사 노조의 37% 임금 인상요구 배경은 임원진과 조종사 임금 인상률을 포함해 외국 항공사의 연봉수준, 회사가 올려줄 수 있는 수준 등이다. 특히 최근 중국 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의 가파른 성장에 따른 ‘조종사 품귀(品貴)’현상이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국 항공사들은 급증하는 항공수요에 따라 국내 대형 항공사 평균 연봉의 두 배 수준을 제시하며 숙련된 조종사들을 대거 스카우트하고 있다. 중국 항공사가 제시하는 연봉은 기장급 기준으로 세후 3억5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에서 중국 항공사로 이적한 조종사는 2013년 7명, 2014년 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46명이 중국 항공사로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최근 중국의 항공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중국 항공사들이 우리나라 대형 항공사의 2~3배가 넘는 고임금 제시하며 베테랑 조종사들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오 특임교수는 “그러나 조종사 노조의 요구는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자수는 110여만명에 이르며, 영세 자영업자수는 400여만명, 일용직에 종사자는 600여만명에 이른다. 월 소득이 150만원도 안 되는 국민이 1000여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경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위 5~10%에 속하는 고임금 노동자들이 37%에 이르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기득권을 양보하는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고 말했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대외적으로 중국 항공사에 비해 임금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국경제의 상황과 국내 항공업계가 처한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의 최고점을 찍었던 조선업계가 대승적인 타협안을 도출한 선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3조원 규모의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은 수원사업장 매각에 이어 임원 수 줄이기 등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2015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기본급의 6.77%에 해당하는 12만7560원 인상과,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성과급 250% 이상 보장 등을 요구하며 노사간 갈등을 이어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사는 임금협상을 놓고 첫 교섭 이후 6개월여 동안 총 43차례의 교섭을 진행한 끝에 기본급 동결(호봉승급분 2만3000원 인상). 장려금 100%+150만원, 격수당 인상 등 임금체계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잠정 합의안을 확정했다.

현대중공업이 임금협상과 관련한 합의안을 도출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업계 불황과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흑자전환을 위해서는 대승적인 양보가 필요하다는 노조의 전향적 태도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더욱 대한민국 국적의 항공사다. 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을 경우 노선의 정상 운항이 불가능해진다. 가뜩이나 태국이 요우커 유치 경쟁에서 우리나라를 제치고 중화권을 제외한 아시아 내 1위로 올라서고 있는 상황에서 요우커 유치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파업이 현실화 될 경우 관광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에 떨어질 것"이라며 "또 한국을 관광지로 선택한 해외 여행객들은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목적지를 변경하게 되면 단체관광 취소에 따른 항공사만의 손실이 아닌 호텔이나 음식점 등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