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94)-누가 한류골프의 도도한 흐름을 막으랴

『명심보감(明心寶鑑)』『채근담(菜根譚)』과 함께 중국의 3대 격언서로 널리 『현문(賢文)』에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은 새 사람이 옛 사람을 대신한다.(長江後浪催前浪 浮世新人換舊人)’란 글이 있다.

장강(양쯔강)의 거대한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옛 사람은 물러가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뜻으로, 도도한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런 이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2000년 이후 세계 여자 골프계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는 ‘태극낭자’‘한류골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세리로부터 점화된 ‘태극낭자 횃불’은 박세리 키즈로 전해져 급기야 세계 여자골프를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유럽 선수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는 어느덧 과거의 페이지로 넘어가고 세계 여자골프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태극낭자들이 써나가고 있는 것이다. 극동아시아의 작은 한반도에서 발원된 ‘한류골프’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장강의 뒷 물결’이 되었다.

그 상류는 미미했으되 중류를 지나면서 거대한 강으로 변모했다. 지구과학의 시각으로 보면 세계 여자골프계에 이런 대지각 운동이 일어난 적이 없다.

일부 골프 전문가들이 태극낭자가 일으키는 ‘한류골프’의 거센 돌풍을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에 비유하는 것도 지나치다고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LPGA투어 31개 대회 중 한국국적의 선수들이 차지한 우승이 15회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교포선수들의 우승(6회)을 포함하면 21승으로 우승 점유율이 67%를 넘었다. 이 정도면 한국국적 선수와 교포선수들에 의해 LPGA가 점령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갑자기 나타난 몇 마리의 메기가 평화를 구가하던 조용한 연못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효과정도로 받아들이던 시각이 경계로 바뀌더니 이제는 태극낭자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른 느낌이다.

   
▲ 2000년 이후 세계 여자 골프계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는 ‘태극낭자’‘한류골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세리로부터 점화된 ‘태극낭자 횃불’은 박세리 키즈로 전해져 급기야 세계 여자골프를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 1일 바하마의 파라다이스 오션클럽 GC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2016년 시즌 개막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김효주(21)가 ‘우승 사냥’을 다짐하고 나온 스테이시 루이스(31)의 추격을 뿌리치고 우승, 올해도 태극낭자들이 도도한 흐름은 더욱 거세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삽화=방민준
지난 1일 바하마의 파라다이스 오션클럽 GC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2016년 시즌 개막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김효주(21)가 ‘우승 사냥’을 다짐하고 나온 스테이시 루이스(31)의 추격을 뿌리치고 우승, 올해도 태극낭자들이 도도한 흐름은 더욱 거세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해도 시즌 개막전인 코츠 골프챔피언십에서 최나연의 우승으로 태극낭자 돌풍의 신호탄을 쏘았는데 올해는 지난해 두 번째 대회로 열렸다가 개막전으로 바뀐 퓨어실크 바하마클래식에서 김효주가 우승함으로써 지난해 루키 신분으로 첫 우승의 영광을 안은 김세영을 대신 챔피언 방어에 성공했다.

김효주로 말하면 일찌감치 리디아 고와 함께 세계 여자 골프계를 이끌 쌍두마차로 평가받아온 강자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대회를 치르느라 1승(JTBC 파운더스컵 대회)에 머물며 김세영에게 신인상을 내주었지만 스윙이나 정신력에서 보면 리디아 고와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 선수 모두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스윙과 상황 변화에 따른 마음의 요동을 극소화하는 능력을 지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김효주의 우승만으로 한류골프의 격류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 컷을 통과한 선수에서 태극낭자들이 차지하는 비중과 상위그룹의 점유율을 보면 흐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컷을 통과한 80명 중 한국선수(8명)와 교포 및 한국계(8명)를 합치면 16명으로 점유율이 16%에 지나지 않지만 톱21엔 10명, 톱11엔 6명이 포함돼 점유율이 절반을 넘나들고 있다. LPGA사상 최초로 파4 홀에서 알바트로스를 기록한 장하나(24), 한때 선두에 나서 우승경쟁에 가세했던 곽민서, 재미교포 메간 강, 한국계 앨리슨 리 등은 언제라도 우승 가능한 자질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유소연 최나연 양희영 등의 베테랑과 슈퍼신인 전인지 가 가세하고 무서운 잠재력의 양자령(20·영어이름 줄리 양)등이 제 컨디션을 발휘한다면 지난해를 능가하는 ‘한류골프 전성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신인상을 차지한 송영한(25·신한금융그룹)이 SMBC 싱가포르 오픈(총상금 100만달러)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더욱이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미국)를 꺾어서 기쁨은 더 컸다.

여자골프와 같은 도도한 흐름은 아니지만 한국 남자선수들로 심상찮은 꿈틀거림을 보이고 있다.
KPGA투어 2013년 신인왕과 2015년 JGTO(일본프로골프투어) 신인왕 출신의 송영한(25)이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안투어 및 JGTO를 겸해 열린 SMBC 싱가포르오픈에서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를 1타 차이로 제치고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남자선수가 세계랭킹 1위를 꺾은 것은 2009년 8월 PGA챔피언십에서 양용은(44)이 타이거 우즈를 무릎 꿇게 한 이후 두 번째다. 이밖에 올 들어 PGA투어 소니오픈과 커리어빌더 챌린지대회에서 연속 톱10에 이름을 올린 김시우(21)의 등장과 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에서 준우승에 오른 노장 최경주(46)의 투혼은 남자골프에서도 한국선수들이 무시 못 할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