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저성장의 늪? 인재 양성과 경제개방화, 자유화가 해법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싱가포르는 ‘경제자유화’의 대명사 국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 리콴유를 떠올리다

독일 노동시장 이야기를 쓰다가 흥미로운 표현 하나를 만났다―“Liberalization of temporary agency work.” 직역하면 '파견근로 자유화’, 의역하면 '파견근로 철폐’ 또는 '파견근로 차별 철폐’일 것 같다. 내용인즉, '한 근로자를 2년 이상 같은 기업에 파견할 수 없다’는 파견근로기간 제한 규제 철폐다. 이는 독일 노동시장 개혁의 근간이 된 '하르츠 개혁안’의 하나로, 2003년 1월에 도입되었다.

경제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이제는 '자유화’를 논하자는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이슈 제기에 신선한 감동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Liberalization of temporary agency work’라는 표현을 만나자, '싱가포르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겠다’며 '자유화’ 기치를 높이 치켜든 리콴유가 떠올랐다.

나는 '경제자유화’에 관해 추상화 아닌 구상화를 그리려고 한다.

리콴유의 생애

리콴유는 1923년에 태어났다. 그는 1935년 중등학교 입시에서 싱가포르 지역 1위, 1940년 졸업시험에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일본은 1941년 12월 싱가포르를 침공하여 영국군을 몰아냈다. 리콴유는 아버지의 소개로 일본기업에서 일하면서 일본과 일본어를 배웠다. 그러던 중 일본 보도담당부서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모집하자 리콴유는 일본군에 지원했다. 리콴유는 일본 점령 시절에 값진 경험을 했고, 이를 계기로 정치에 눈을 떴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한국 같으면 친일파로 몰렸을 경력이다.

전쟁 후 그는 영국 캠브리지의 필즈 윌리엄대학에 유학했다. 그는 법을 전공하여 변호사 자격을 땄다. 그는 1949년 싱가포르로 돌아와 레이콕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했는데, 레이콕이 식민지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하자 본의 아니게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그는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당시 집배원과 전화교환수 노조가 영국 식민정부와 임금협상을 벌였는데, 진전이 없자 식민정부가 '새내기 천재 리콴유 변호사’에게 일을 맡긴 것이다.

그는 협상을 멋지게 마무리하여 유명세를 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영국 식민정부가 민중과 너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리콴유는 1954년 10월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했다. 이듬해 4월 선거에서 그는 최다 득표를 얻고 당선되었다. 이후 그는 영국 식민정부와 투쟁했고, 공산 세력과도 맞서 싸웠다.

영국은 싱가포르가 1948년 이후에는 자치 정부가 될 수 있도록 민주화 정책을 추진했다. 영국은 1957년 싱가포르의 자치권을 허용한 후 외교, 국방, 헌법 정치 등에 관한 권한만 가질 계획이었다. 그래서 1959년 선거는 싱가포르 자치정부 구성과 관련된 중요한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리콴유가 이끄는 인민행동당이 총 43석 중 41석을 얻어 집권당이 되었다. 리콴유가 수상이 되었다. 그의 나이 35세. 그는 1965년 영국으로부터 싱가포르 독립을 얻어냈다. 그 후 그는 1990년까지 30년 이상 수상을 역임했고, 퇴임 후에는 3대 수상인 아들 리셴룽 수상을 조언하는 특별직을 맡아 오다가 2015년 3월 23일 91세로 타계했다.

   
▲ 리콴유의 정책은 한 마디로, 경제자유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대표적인 사례는 인재 양성과 경제 개방이다. 우리는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여 '경제자유화’ 정책을 펴야 한다. 사진은 2006년 5월 20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와 면담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리콴유, 경제자유화로 국운을 걸다

1959년에 초대 수상이 된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는 비전을 가진 정치가였다. 그가 실현한 비전을 간략히 소개한다.

(1) 독립 국가를 만들었다.
(2) 인재 양성에 국운을 걸어 훌륭한 인재를 영입했다.
(3) '싱가포르가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싱가포르를 초일류 국가로 만들었다.
∙부패와의 전쟁을 벌여 성공했다.
∙불법노조를 '법과 원칙’으로 다스려 싱가포르 노조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클린과 그린(Clean & Green) 정책으로 싱가포르를 가꿨다.
∙충성심을 높이고자 토지 국유화로 86%의 국민에게 공공주택을 제공했다.
∙싱가포르를 완전 개방하여 해외자본 유치에 성공했다.
(4) 경제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리콴유의 정책은 한 마디로, 경제자유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든다: 인재 양성과 경제 개방.

리콴유는 자원이 부족한 싱가포르가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고, 자체적으로 그럴 능력이 없으면 세계 끝까지라도 가서 인재를 데려 오기로 했다. 이는 곧, 인재개방 정책이다. 현재 싱가포르에 있는 4개 대학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능력 있는 교수들이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고, 2개 대학은 해마다 세계 100대 대학에 들곤 한다. 싱가포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인재 양성에 국운을 건 리콴유의 인재관 덕분이다.

리콴유는 경제를 완전 개방했다. 1950년대의 세계는 수입대체를 내세워 너도나도 '보호주의’를 고수했는데 리콴유는 갓 세운 나라를 '완전 개방했으니’ 그 지도력에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 표현하면 'Liberalization of Singapore economy’가 될 것이다. 리콴유는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경제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싱가포르는 세계 초일류 국가

리콴유가 실시한 경제자유화 정책의 성과를 정리한다.

첫째, 싱가포르는 경제개방화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라다. 경제개방화는 일반적으로 (수출+수입)/GDP 비율로 나타낸다. UN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 비율 1위가 룩셈부르크로 374.2%, 2위가 싱가포르로 350.8%다. 싱가포르는 수출·입 비중이 한 해 GDP의 3.5배가 넘는 나라다.

둘째, 경제개방화 또는 경제자유화는 해외직접투자에 반영된다. UN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유입되어 쌓인 해외직접투자 저량(貯量, stock)은 2014년 말 8,329억 달러에 이른다. 서울 크기의 1.1배에 지나지 않은 이 작은 나라에 쌓인 해외자본 저량은 실로 엄청난 액수다. 같은 해 중국은 9,568억 달러, 한국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1,674억 달러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경제개방화 또는 경제자유화를 뒷받침하는 정책 덕분이다. 한 예로, 법인세율이 싱가포르는 (최근에 들어와 구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0% 안팎으로 낮춰오고 있지만) 17%로, 아일랜드 12.5% 다음으로 낮다. 싱가포르는 20%이던 법인세율을 2008년 18%로, 2010년 17%로 낮췄다. 법인세율이 낮으니 해외투자가 몰려들 수밖에! 그러다보니 GDP 대비 수출·입 비중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을 수밖에!

셋째, 싱가포르는 국가경쟁력이 해마다 세계에서 1, 2위로 높다. 스위스 IMD 자료에 따르면,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015년 싱가포르는 홍콩에 이어 2위다. 홍콩은 국가로 보지 않으니 싱가포르가 1위다. 싱가포르는 해마다 미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 분야에서 1, 2위를 차지해왔다.

넷째, 싱가포르는 자유시장경제 활성화 수준을 나타내는 경제자유지수가 세계에서 1, 2위로 높다. 프레이저 인스티튜트 자료에 따르면, 경제자유지수 순위에서 2013년 싱가포르는 홍콩에 이어 2위다. 홍콩은 국가로 보지 않으니 싱가포르가 1위다. 싱가포르는 해마다 미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1, 2위를 차지해왔다.

   
▲ 미국의 경제지인 포브스는 작년 3월 29일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꼴 지도자로 소개한 바 있다.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79년 10월19일 청와대를 방문한 리콴유 전 총리를 접견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경제자유화로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세계 8위

경제자유화가 잘 이루어진 결과 싱가포르경제는 두드러지게 좋은 편이다.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변화를 보자.

다섯째,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고도성장 국가다. 1971∼2014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7.1%로, 같은 기간 9.1%의 중국 다음으로 높다. (한국은 7.0%.) 이 성장률은 2014년 1인당 국민소득 10대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여섯째, 2014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14년 54,224달러로, 많기로 세계 8위다. 싱가포르는 고도성장의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1989년에 1만 달러대, 1994년에 2만 달러대, 2006년에 3만 달러대, 2010년에 4만 달러대, 2011년에 5만 달러대로 32년 만에 1만 달러대에서 5만 달러대로 올랐는데, 세계 최단기 기록일 것 같다.

우리는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여 '경제자유화’ 정책을 펴야 한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