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현대증권의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현대증권이 현대엘리베이터에 헐값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대상선은 메리츠종금증권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2500억원)과 현대엘리베이터(1392억원)로부터 3892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현대증권 지분 4679만4254주(19.8%)를 담보로 넘기면서 이를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과 콜옵션(조기매수청구권)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부여했다.

만일 현대상선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경우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증권 주식 4679만4254주를 대출 원리금 또는 최근 1개월 가중평균주가의 120% 중 높은 가격으로 먼저 사들일 수 있게 됐다. 만기 전에 콜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다. 오릭스가 현대증권을 인수하려던 가격이 6475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30%이상 저렴한 가격에 현대증권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현대그룹 지배구조는 현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대상선을 매각하거나 포기해 산업은행으로 넘기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증권’으로 바뀐다. 현대그룹으로서는 부실덩어리인 현대상선이 아닌 우량기업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의 최대주주가 되는 셈이다.

이에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매각에 대한 진정성이 다시 의심을 받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이 걸려있는 매물을 누군가 선뜻 인수에 나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오릭스 측에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파킹딜(경영권을 매각하는 것처럼 꾸미고서 일정 기간 뒤 다시 지분을 되사는 계약) 의혹이 불거진 터라 이번에도 의심이 커지고 있다. 사실 현대그룹으로서도 현대증권을 팔 이유가 전혀 없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2971억원을 올리는 등 그룹 내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가 가진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은 ‘배임’에 해당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우선매수권은 담보대출 시 일반적인 안전장치로 부여된 것으로 포기하면 배임문제가 발생한다”며 “다만, 행사여부는 매각 절차 진행시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