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해 12월 중국 공연을 위해 방중한 북한 모란봉악단이 12일 공연 4시간을 앞두고 돌연 철수한 사건은 이유를 불문하고 중국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많이 회자됐다.

사건이 벌어지고 2주 후 김정은 제1비서가 이를 사과하기 위해 베이징에 각료급 특사를 보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올 정도로 당시 북한의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모란봉악단 철수 3일만에 김정은이 4차 핵실험을 승인하는 사인을 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면서 이 사건은 묘한 여운을 남겨왔다.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을 취소한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전언과 관측도 나와 있다. 이 가운데 11일 국가대극원에서 진행된 모란봉악단의 공연 리허설 중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장면이 대형 화면에 등장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전언이 있다.

당시 모란봉악단의 리허설을 지켜보던 중국 공산당 관리가 이를 지적을 터인데 결국 이 관리가 화면 삭제를 요청하면서 내뱉은 발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2015년 12월 중국 공연을 위해 방중한 북한 모란봉악단이 12일 공연 4시간을 앞두고 돌연 철수한 사건은 이유를 불문하고 중국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많이 회자됐다. 북한은 다음달일 1월6일 4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한달여만인 2월7일 6번째 장거리미사일인 '광명성 4호'를 발사했다./자료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9일 정통한 중국소식통은 중국 관리가 무대 배경화면을 문제 삼으면서 국제형사재판소를 언급하자 현송월이 발끈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배경화면은 201212월 북한이 쏘아올린 은하3호 로켓 발사 장면으로 모란봉악단이 아니라 북한 공훈국가합창단 공연의 배경이었다고 한다.  

처음 중국 관리는 다짜고짜 “(화면을) 삭제하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현송월이 나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언쟁이 이어졌다. 그러자 중국 관리는 너희가 그러니까 김정은이 ICC에 회부되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송월은 모란봉악단의 단장으로 중국 방문 당시에도 샤넬백을 들고 남한 언론과 거리낌없이 인터뷰를 할 정도로 당찬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김정은의 친위 걸그룹단장인 현송월의 권력과 관련해 소문도 무성하다.

또 지난 201512월 유엔총회는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런 결의안이 유엔에서 논의될 때마다 항상 중국, 러시아 등이 반대표를 던져 북판 편을 들어왔다.

중국 관리가 은하3호 화면을 삭제하라며 ICC를 거론한 것은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불만이 쌓인 중국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현송월과 중국 관리 사이에 벌어졌던 일은 곧바로 평양으로 보고됐을 것이고, 평양으로부터 다시 지침을 하달받은 모란봉악단은 공연 당일인 12일 공연시각(오후 730)을 불과 3시간여 앞둔 오후 47분 북한 고려항공 편을 이용해 베이징을 떠났다.

악단이 호텔을 나설 때 언론에 잡힌 영상에 따르면, 이번 공연을 주도한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등 북측 인사들이 철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보다 앞서 시 주석의 측근인 쑹타오 대외연락부장과 왕자루이 전 부장이 호텔에 나와 북측 인사들을 설득했지만 실패한 일도 전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중국 측은 업무 측면에서 서로의 소통 연결에 원인이 있었다고만 밝힌 바 있다.

중국 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모란봉악단의 공연 당일 철수에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들 측에도 과오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루만에 악단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북한 당국도 본심을 그대로 내보이기보다 마침 깜빡 잊고 있었던 김정일 4주기를 이유로 내세웠다고 한다. 소식통은 앞서 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이 국가대극원의 일정에 맞춰서 모란봉악단 공연날짜를 잡았다가 뒤늦게 김정일 사망일인 1217일을 불과 5일 앞두고 노래와 춤을 추는 공연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중국 측에 양해를 구하고 악단을 철수시켰다고 전했다.

당시 소식통은 김정일의 애도기간을 맞아 북한에서는 주민들에게 술과 가무를 금지시키면서 정작 중국에서 김정은 악단이 공연을 했다면 두고두고 김정은에게 큰 부담으로 남을 뻔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모란봉악단의 철수에 이어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했고 또다시 한달만에 광명성으로 불리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북중관계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모란봉악단 공연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10일 기념행사에 중국 정부가 서열 5위인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기획된 것이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던 중국 측 입장이 현송월의 혀끝에서 밀린 것이다. 이번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앞서서도 우다웨이 북핵 6자회담 중국 수석대표가 방북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일도 있다.

북한의 도발에는 유감정도를 표하면서도 한반도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 발표한 한미를 향해 강하게 반발한 중국이 어부지리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보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더 큰 변고라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모란봉악단 철수 때부터 입단속에 입을 맞춰온 북중관계가 어떤 기로를 맞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