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사태로 부실 금융감독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의 설립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된 것이다.

금소원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금융소비자보호 업무를 떼내어 이를 전담하는 독립적 정부기구가 될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의 실천이자, 여야 정치권이 합의한 사항이다. 금소원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갖출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금감원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지는 거대 금융규제기관으로 발전할 것 같다. 과잉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의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CFPB,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oard)를 닮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향후 금감원, 금융위원회(금융위)와의 역할을 조정하는 문제도 있지만 중복, 과잉규제의 위험에다가 또 다른 유형의 감독실패가 추가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현재의 통합금융감독체계는 15년 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감시, 감독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감시, 감독을 수행하는 집행기구로서, 정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로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로 출범하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주 업무로 하는 합의체 정책기구로서, 금감원과 감독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소규모의 사무국만을 산하에 두었다.

동 위원회는 2008년에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통합, 개편되어 국무총리 직속 금융위원회(금융위)가 되었다. 오늘날의 금융감독체계는 사실상 금감위와 금감원이라는 이원화되어 있다. 금감원은 2012년에 금융소비자보호 업무를 감독, 검사부문에서 떼내어 원장 직속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신설했는데,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을 겨우 넘긴 시점에서 금소처를 확대, 강화하려는 정부기구가 바로 금소원이다.
 
금소원의 원장은 장관급이며, 이미 거대한 규모인 금감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력과 자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로 예정된 금소원의 설립이 이루어지면, 금융산업은 금융위, 금감원, 금소원의 3대 기관에 의해 규제와 감독을 받게 된다.금융의 부작용이나 금융 불안은 취약한 금융제도나 잘못된 금융정책에서 나왔고, 관료화된 금융감독이 별로 성공적이 못했음을 되풀이해서 입증하였다.

이는 현재의 금융감독체계 아래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 수년 간 키코 사태, 저축은행 부실, LIG 건설 CP사태에서 부실 금융감독의 문제가 대두된 데 이어, 최근의 동양증권의CP사태에서도 재현되었다. 비대해진 금융감독체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원인은 관료화된 감독체계의 한계 때문이다.

감독의 방식이나 대상의 선정에서 좁은 시각이나 편견, 금융안정성에 대한 집착이나 보수적 태도, 규제목표에 대한 집착, 지나친 위험회피나 책임회피 성향, 부처 이기주의와 영역확장 주의, 감독대상에 의한 규제포획의 문제가 감독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금융감독의 실패는 금융의 안정성을 해치고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기 때문에 금융에 대한 감시, 감독은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없어서는 안 될 금융인프라이다. 그러므로 이들 문제점을 고려하여 금융감독의 범위나 수준을 적정선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기관에 대한 견제나 감시체제가 필요하고 금융소비자보호의 범위를 제한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일부에서 금소원을 민간기관으로 만들고 별도로 민간주도의 금융감독위원회를 두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규제기관이라는 성격상 별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민간기구의 형태로 출발한 금감원의 요직이 모두 금융관료들이나 정치권과 연관된 인사들로 채워진 사실이 그 증거다.

보다 큰 문제는 금융소비자보호가 감시, 감독업무와 병행될 수밖에 없으며 재재기능을 갖지 않는 한 쓸모가 없으므로, 금소원의 업무가 완전히 독립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금소원 설립은 중복, 과잉규제나 책임전가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므로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업무자체도, 금소원의 독립성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정부규제로서의 금융감독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있어야하는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금융감독 실패와 금융소비자보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안문제인 동양그룹 사태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겠다.

동양그룹 사태는 멀게는 1998년대의 대우그룹의 부실 기업어음 사태에서 부터 최근의 LIG 건설 사태와 유사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부실 감독의 경우라는 데서 저축은행의 경우와도 공통점이 있다.동양그룹의 부실화는 건설경기의 부진이라는 외부적 요인에다가 무리한 기업확장이라는 경영실패가 겹쳐 발생하였다. 그런 연유로 금융권에서의 차입이 막혀 있었고,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으로 돌려막기에 급급하다가 상환부담을 감당하지 못하자, 5개 주력기업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문제는 4조원에 이르는 동양그룹 부채의 절대다수가 회사채와 기업어음이며, 채권자의 거의 모두가 개인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저축은행의 경우와 달리 예금보험과 같은 보호막도 없으므로 투자금액 전부를 날리게 될 가능성도 크다. 더구나 이들의 상당 부분이 노후대책용이나 사업자금 마련용과 같은 저축성 투자인 까닭에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태의 중심에는 그룹계열사인 동양증권이 이런 편법 단기자금조달에 주역을 담당하였고, 불완전판매의 의혹까지 받고 있다는 점이 있다. 그렇기에 동양그룹 사태는 금소원 설립을 통해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일부에서는 차제에 금산분리 입법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입법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동양그룹 사태는 부실의 원인, 과도한 부채비율, 회사채와 기업어음에 매달린 고금리 단기자금조달 방식, 기업집단 구조, 계열 증권회사를 통한 자금모집, 부실 금융감독과 금융시장에 끼친 악영향, 이런 모든 점에서 15년전의 대우그룹사태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이 기간 사외이사제도 확대,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과 같은 기업지배구조 강화정책이 도입되었고, 금융위-금감원체제의 강력한 감독기구도 정립되었다. 실제로 동양그룹에 대해서도 감시, 감독 장치가 겹겹히 쳐 있었다. 그럼에도 감독실패가 되풀이되었다.그렇다면 기업에 대한 감시, 감독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론상 모든 이해관계자가 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진 집단은 기업 자신, 자금공급자, 즉 투자자와 감독기관으로 좁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기업내부에서 감시, 감독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집단은 이사회, 특히 사외이사들이다.

그룹총수의 무리한 지분확대와 기업 확장으로 부채비율이 1,200퍼센트를 넘게 되고, 주가 하락과 신용등급하락과 같은 부실화가 드러났음에도 계열증권사를 동원한 고금리차입을 방치한 동양그룹 주력기업의 이사회는 책임은 면할 길이 없다.
 
애써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가, 저축은행 사태, 웅진그룹, LIG 건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별로 쓸모없음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다음으로 감독기관의 책임이다. 위에서 논의한대로 금융위-금감원 금융감독체계는 지난 15년간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감시-제재 기능을 갖춘 거대 금융감독기구로 성장하였다.

그럼에도 이번 동양그룹사태에서 늑장대응, 몸사리기, 책임 떠넘기기와 같은 관료적 폐단과 무능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동양그룹 기업어음의 위험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금감원이 부적격 어음의 발행을 막는 조처를 금감위에 건의하였지만, 금융위가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시행하는 데는 1년4개월이 지난  올 해 10월에야 이루어졌다.

저축은행 사태이후 현 감독기구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국은행에 자료제출요구권과 공동검사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한은은 2011, 20112년에 자료를 받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아 책임회피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동양그룹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투자자들이다.

법정관리 절차나 불완전판매에 대한 소송의 진행에 달려있지만, 안타깝게도 4만 여명에 달하는 이들 투자자가 피해를 떠안게 될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차제에 금융소비자보호자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투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양의 부실화 조짐은 수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작년부터 주요 계열사의 기업어음이 투자부적격 판정을 받은 데이어 전 계열사의 신용등급 하락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기업어음이 3~6개월 만기의 단기어음이었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이를 재매입 했다는 점은 가장 적극적인  감시를 해야 할 당사자인 투자자들이 이를 소홀히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은행금리의 3배에 달하는 7~8퍼센트의 고금리 유혹에 빠져, 위험부담을 외면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비자보호의 목적이 고수익채권의 위험성을 잘 이해 못하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면, 투자자들에 대한 사전교육을 강화하거나 투자위험에 대한 사전인식을 의무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금감원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금소처를 이용하거나, 제삼자 투자상담의 기회제공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현재 거론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 정책이 금융 감시와 감독의 이런 특성과 사정을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졸속한 정책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책의 추진에 앞서 부실한 감시, 감독의 당사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선행되어야하고, 현존하는 감시, 감독체계를 보완한 방식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는지, 새 정책의 실효성과 비용은 무엇인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이 터지면 새로운 정부기구부터 만들고 보자는 발상을 경계해야 한다. /장대홍 한림대학교 금융경제학 명예교수, dtjaang@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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