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은 관심 없고 목적만 중요했던 그들의 교활한 언론플레이

최민희 의원이 방송문화진흥회에 녹취록 전문과 녹음파일을 제공한 사실을 밝힌 후 필자의 흥미를 끈 것은 미디어스 기사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이른바 ‘MBC 백종문 녹취록’을 입수해 주요 내용을 언론을 통해 공개한 최민희 의원이 지난 12일 방송문화진흥회의 자료제출 요구에 응했다.”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마치 최 의원이 대단한 인심이라도 썼다는 뉘앙스다. 그런데 생각은 비뚤어졌어도 말을 똑바로 하자. 최 의원이 내내 강조한 것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조치(처벌)’였다. 녹취록을 폭로한 1월 25일 이전에 벌써 언론에다 자료를 제공하고 뿌린 당사자가 또 최 의원이다.

언론에다가 일찌감치 준 자료를 그것도 한참이나 뒤늦게 방문진에 마지못해 준다거나 제공해달라는 요청에 ‘응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긴가. 그러면 왜 방문진에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나. 최 의원이야말로 진정 그럴 의지가 있었다면 순서가 거꾸로 됐었어야 옳은 것 아닌가.

최 의원은 녹취록 전문과 녹음파일을 방문진에 제공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합당한 조치를 취할 의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 협조할 것임을 밝힌다”“여당추천 이사들은 녹취록 파문을 물타기하고 시간을 끌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진상규명과 MBC 바로 세우기에 지금이라도 동참해야 할 것” 필자는 이런 최 의원의 주장이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라고 본다.

녹취록과 음성파일을 자신이 믿는 매체에만 제공하고, 또 방문진 마저도 진상규명과 합당한 조치를 취할 의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협조하겠다니, 그러면서도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니 도무지 앞뒤 말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를 입수한 뒤 무려 3개월 동안이나 시간을 끈 당사자는 최 의원이다. 방문진에 진상규명을 요청하기 전에 언론에 풀어 ‘묻지마 폭로’ 소스로 제공한 사람도 최 의원이다. 최 의원에겐 애초 언론의 ‘작업’이 우선이고 방문진이 마지막 코스는 아니었나. 처음부터 이러려고 한 것 아닌가.

진상규명이 아닌 ‘언론 공작’에 몰두했던 그들

녹취록 폭로에서 현재까지 보인 최 의원의 태도야말로 진상규명을 원하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방문진에 자료를 먼저 가져가기보다 방문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될 수 있도록 사전에 자신이 ‘믿을만한 언론’에 뿌려 온갖 논란과 엉터리 의혹을 생산하도록 사실상 유도한 당사자가 최 의원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런 걸 두고 ‘언론 공작’이라고 부른다.

최 의원은 25일 녹취록을 폭로하고 26일부터 온갖 방송, 언론에 나와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주인공이다. 2월 4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자료요청을 결정하기까지 최 의원 뿐 아니라 언론노조가 발행하는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 PD저널과 같은 매체들은 최 의원이 일찌감치 제공한 자료와 면책특권에 기댄 무책임한 발언들을 토대로 정말이지 열심히들 기사를 갈겨댔다. 그걸 방조한 최 의원은 그래놓고 방문진 더러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고 명예훼손하지 말며 사실관계 확인에만 사용하라’고 주문했다. 지금 코미디를 하는 건가.

   
▲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MBC 노조원 해고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미 녹취록 언론보도로 거론이 안 된 이가 없을 만큼 거의 다 실명이 공개가 됐다. 더 훼손될 부분이 없을 만큼 그들의 명예가 너덜거리고 있다. 최 의원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그래놓고도 방문진 더러 명예훼손을 조심하라니 도대체 어떤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기에 버젓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독립적인 척, 양심적 공익적 보도인 척 하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최 의원이 제공한 소스로 확인도 없이 신나게 명예훼손성 기사를 갈겨대더니 최 의원이 실명 공개 말고 명예훼손을 조심하라고 하니 갑자기 ‘ㅍ매체 편집국장’이라고 쓴다. 또 어떤 매체는 최 의원이 방문진에 녹취록 전문과 녹음파일을 제공하겠다고 하니 너무나 당연한 걸 ‘응했다’고 쓴다. 어이가 없다. 주거니 받거니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라면, 국회의원과 언론의 이런 ‘꿍짝’을 보고 정상적 관계로 볼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짬짜미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아닌가.

진정한 ‘내부자들’의 모습

방문진 야당추천 이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녹취록을 수개월 묵힌 최민희 의원에 단 한마디 비판도, 따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해직자 복직이 시급하다고 위선을 떨고 있다. 처음부터 방문진에 들고 오지 않은 최 의원은 질책할 생각도 않고 여당추천 이사들이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야당추천 이사들은 우선 최 의원의 이런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부터 고백하기 바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면서 엉뚱한 언론 작업에나 애썼던 국회의원이나 그 의원과 사전에 각본을 짜기라도 한 것처럼 기획성 보도로 착착 진행하고 있는 일부 언론 매체들, 그리고 그런 의원에게 한마디 질책도 못하고, 근거도 없이 녹취록 보도는 무조건 사실이라는 야당추천 방문진 이사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내부자들’ 아닌가. 언론 취재에 찍소리도 못하고 거부하는 방문진 이사들, 국회의원, 그리고 녹취록 폭로에 앞장선 그들 언론, 이들이야말로 사악하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 진짜 내부자들의 모습 아닌가.

필자는 마지막으로 소위 자타칭 진보좌파 쪽 사람들에게도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녹취록을 두고 벌이는, 지금까지 ‘자기편’으로 철썩 같이 믿어온 저 사람들, 국회의원, 언론의 행태를 똑똑히 봐두라는 것이다. 저열하기 짝이 없는 형편없는 수준으로 남을 심판하고 짓밟으려하고 이익을 취하려 하는 이들의 실체를 똑똑히 봐두라는 얘기다.

녹취록과 관련해 필자의 입장은 처음부터 줄곧 하나다. 모든 것을 무책임하게 까발려 놓고 뒤늦게 실명, 명예훼손 운운하지 말고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우기던 언론들이 과연 어떤 부분은 빼고 어떤 부분만을 취사선택해 썼는지 검증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과연 어떤 부분엔 밑줄을 치고 어떤 부분은 건너뛰고 보도하지 않았는지 확인해보자는 얘기다. 폴리뷰는 앞으로도 이번 사건 이면의 추악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해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진실은 영원히 가둘 수 없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