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이동응 전무

   
▲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정부와 새누리당이 근로시간 단축에 발 벗고 나섰다.


당정은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현재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허용되는 근로시간을 주52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장시간근로 개선과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국정과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당정안은 사실상 휴일근로를 제한하는 것인데, 이 경우 한 주 동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무려 16시간이나 줄어들게 된다. 근로시간을 너무 갑자기 대폭 줄이는 것 아니냐는 기업들의 우려에 당정은 규모별 단계적 시행과 노사가 합의할 경우 1년에 6개월은 주 60시간까지 근로를 허용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기업들은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근로자의 실근로시간은 지난해 2,092시간이었다. 수치상으로는 OECD 평균(1,695시간)보다 약 400시간 많다. 다만 이 수치를 근거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근로시간이 몇 시간 많다는 식의 접근은 옳지 않다. OECD는 근로시간 측정대상 및 산출기준 등이 국가마다 상이하여 국가별 단순비교는 적절치 않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단시간 근로자 비중이 낮아 근로시간이 다른 국가에 비해 과대 계상되는 측면이 있다

우리 근로자들의 실근로시간이 세계적으로 긴 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실근로시간의 변화 추이와 속도이다. 2000년 이후 10여년 간 임금근로자(상용직) 근로시간은 약 300시간 줄어들었다.
상용직 근로시간은 글로벌 금융위기 회복 시점인 2010년 다소 증가했을 뿐,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취업자 근로시간도 감소하기는 매한가지다. 우리나라 취업자 근로시간은 2000~2011년 중 매년 38.4시간씩 감소해, OECD 연평균 감소폭 7.2시간보다 5.3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근로의 원인은 무엇이고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사 모두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 살펴보자. 근로자는 남성 외벌이 중심 가계, 높은 사교육비․집값, 노후대책 불안 등으로 가능한 한 오래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한다. 소득보전을 위해 장시간근로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상용직) 임금총액에서 초과근로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10.5%에 달했다.

근로자의 저조한 연차휴가 사용률도 장시간근로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40% 수준에 그치는 저조한 연차 사용률은 바로 미사용연차에 대해 금전보상을 해주는 관행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부족한 유연성, 낮은 생산성, 과도한 간접인건비 등으로 인해 신규채용보다는 기존 근로자의 초과근로를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 WEF 평가결과, 우리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148개국 중 130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사람을 마음대로 뽑기도 힘들고 내보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 근로자의 시간당 생산성은 28.9달러로 OECD 평균의 63%에 불과했다. 미국, 프랑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업들은 낮은 노동생산성을 장시간 근로로 보완하며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 왔다. 낮은 생산성은 우리 기업이 근로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또 다른 요인인 것이다.

노사의 필요성에 의해 산업현장에서 장시간근로가 이루어져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도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인적자본만이 성장의 밑거름이었던 현실에서 제도적, 관행적으로 장시간근로를 인정해왔다. 산업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채, 인위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인다면 생산 차질, 기업경쟁력 저하, 노사갈등 심화 등 부작용만 초래할 우려가 크다.

당정이 합의한 대로 휴일근로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된다면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 시간당임금 상승, 휴일근로수당 가중 등 상당한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또 인건비 부담 이외에도 설비 변경, 근무제도 변경과 이에 따른 인사관리시스템 변화 등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초과근로시간 단축이 기업 인력운용에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해고 유연성뿐 아니라 배치 전환 등 기능적 유연성도 부족한 우리 노동시장에서 기업은 초과근로를 통해 경기상황에 맞게 산출량을 조절해 왔다. 그러나 인위적인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런 최소한의 유연성 확보 수단마저 제한하는 것은 기업 인력운용을 심각히 제약함으로써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될 경우 상당수 기업은 덜 고용하고 덜 생산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조선업, 건설 등 수주베이스 산업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업은 인건비가 싼 해외로 나가거나 설비자동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어려운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불능력이 부족하고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유동적인 수급물량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휴일근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한다면 다수의 중소기업에서 생산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몇몇 조사에 따르면 휴일근로를 실시하는 중소기업이 물량 보전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약 20%의 생산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결과적으로 국가총생산 자체를
축소시켜 일자리창출의 근간인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으며, 우리 경제의 중추인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근로자의 소득 감소와 이에 따른 노사갈등이다. 당정이 합의한 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현재 휴일에 일하는 근로자는 약 20% 이상의 소득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초과근로가 적은 부서로 배치되면 부당전보라고 분쟁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어떤 근로자가 순순히 소득 감소를 감수할 지 의문시 된다.

양대 노총도 공공연히 임금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하고 있어, 임금보전을 둘러싼 노사갈등만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 지난해 설문조사에서는 약 70%의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분에 해당하는 초과급여 삭감은 노사관계 악화요인이라고 응답했다.

기업들도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으로 전국 459개사를 대상으로 휴일근로 연장근로 포함 등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업계의견 조사를 실시한 결과, 법 개정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 중 82.4%가 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업 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반대한다는 의견이 높게 나타났으나, 중소기업의 반대 비율(82.8%)이 대기업(81.1%)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으로 영향을 받는 기업이 물량 보전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생산차질은 기존 산출대비 평균 19.2%로 집계되었다. 생산차질은 중소기업(20.1%)이 대기업(14.2%)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규모가 작은 5~99인 사업장(20.6%)에서 가장 높게 집계되었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될 경우 기업들이 인식하는 가장 큰 경영상 애로사항은 ‘인건비 부담 가중’(28.7%)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외 애로사항에 대해 중소기업은 ‘생산량 차질’, ‘구인난’을, 대기업은 ‘유연화수단 상실’, ‘노사관계 악화 우려’를 많이 지적해, 기업 규모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당정이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에 정치력을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자리창출 기대이다.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법이 개정되더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기대하는 일자리창출은 힘들어 보인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창출은 현재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남는 시간에 다른 근로자를 채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부 전문가의 산술적 계산일 뿐 노사의 현실을 고려치 않고 있다. 기업은 노동비용 상승을 방치할 수 없으며,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스웨덴과 독일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효과가 가시화되지 못한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양보 부재를 지적하는 연구가 다수이다. 우리의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감안하면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창출로 이어지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노동 유연성이 매우 낮은 우리 노동시장 현실에서 기업은 초과근로를 통해 최소한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초과근로를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설령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더라도 근로시간 단축분보다 적은 비율로 근로자를 채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호황일 때 1,000명을 고용했다가 경기가 악화되어 700명만 필요하다면 나머지 300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거리가 없어 합법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한 한진중공업과 법정관리 하에서 정리해고를 단행한 쌍용자동차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장시간근로 개선은 우리 노동시장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급하게 서두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노동시장의 순리대로 풀어나가야 한다. 앞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 근로시간은 분명히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급격하고 인위적인 조치가 아니더라도 기존 추세에 노사의 자발적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2010년 노사정 합의가 목표로 하는 2020년 1,800시간대 진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근로시간 단축 추세가 유지된다면 2017년 1,800시간대에 진입하고, 2020년대 중반에는 OECD 평균을 하회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노사정의 근로시간 단축 목표가 정부․정치권의 인위적 개입 없이도 3년이나 앞당겨져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경제와 산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기업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근로시간 문제로 인한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근로시간을 규제의 잣대로만 재단한다면, 기업 경쟁력 약화, 노사갈등 초래 등으로 결국에는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정부․정치권은 급진적이고 규제적 근로시간 단축이 아닌, 산업현장의 현실을 고려한 점진적인 근로시간 단축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근로자 역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연차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도 우리 노동시장의 질적 발전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개별 기업의 상황에 맞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