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가 산업 정책(industrial policy)을 실시했다. 1961년부터 수출 주도형 산업 정책이 실시됐고, 1973년부터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으로 바뀌었다.

그 뒤도 각 정부는 벤처 산업, 녹색 산업 등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펴 왔다. 한국의 높은 성장과 산업 정책이 병진했기 때문에 한국의 성장이 산업 정책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산업 정책이 경제 성장을 야기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산업 정책에는 문제가 많다.초기의 산업 정책은 은행 부문 국유화를 통한 수출 주도형 산업화였다. 수출 목표를 달성한 기업에는 저리 융자와 수입 허가로 보상했으며, 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수출업자들에게 무관세로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식으로 유망 기업을 키우고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특정 기업을 지원했다. 처음에는 정부가 승자와 패자를 선택하는 산업 정책이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사업상 성공이 증명된 수출업자들을 재정 및 규제 수단을 통하여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업가의 자질이 증명된 기업가에게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산업 정책이 잘 작동하는 것 같지만, 산업 정책은 장기적으로 유인을 왜곡하고 성장을 저해한다. 산업 정책으로 기업가들이 일단 특혜를 받으면 기업가들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지 않아도 시장에서 버틸 수 있다.

실제로도 계속적인 정부 지원으로 정부와 수혜 대상 기업들 간에 정치적 연결망이 형성되었다. 그 결과 기업들의 지대 추구가 조장되었고 기업들은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서보다 정치적 특혜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다.과거 한국은 저임금의 이점과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정부가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산업들은 성장하지 못했을까? 아마 정부가 법치를 통해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하고 경제적 거래를 보장하였더라면 산업들이 자연적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있었던 홍콩과 싱가포르는 정부가 산업 정책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경제 성장이 빠르고 부유하였다.

이렇게 보면 산업 정책이 없었더라도 혁신적인 기업들은 계속 번창하고 성장했을 것이며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유인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기업이 산업 정책으로 보조금을 받게 되면 정부 정책을 통해 얻게 되는 이점 때문에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지 않고 혁신을 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정부가 성장을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산업 정책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면 그 산업은 고전하는 것을 많이 본다, 반면 그 나라의 가장 강력한 부문은 대체로 정부가 경쟁을 가장 적게 제한한 산업이다. 1990년대 이후의 일본이나 최근의 우리나라가 겪는 경제 침체에는 산업 정책(과 한국의 경우 경제 민주주의도)의 몫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일본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그리고 한국은 1960년 이후 40년 가까이 성장이 급속히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정부의 산업 정책 밖의 산업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산업 정책 때문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산업 정책에도 불구하고 성장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한국이 작은 경제이기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 역시 산업 정책이 옳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마이클 델, 스티브 잡스, 그리고 빌 게이츠는 모두 아주 큰 경쟁자를 가진 산업에서 정부 지원 없이 조그만 기업으로 출발하여 세계 정상에 올랐다. 델, 애플,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산업에서 주요 주자가 된 것은 미국의 산업 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산업 정책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동태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산업 정책의 약점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약 미국이 1960년대에 IBM과 같은 주요 기업을 지원하는 산업 정책을 집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컴퓨터 산업은 IBM과 같은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와 같은 미니컴퓨터, 애플· 컴팩· 델과 같은 마이크로컴퓨터로 계속 바뀌었다. 산업 정책으로 IBM을 지원했더라면 IBM은 구 사업 모델에 매달렸을 것이고 기업은 더욱 약해졌을 것이다.

산업 정책이 IBM을 지원하였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산업 정책은 수혜 기업들에게서 기업가 정신을 빼앗으며, 더욱 혁신적일지도 모르는 신설 기업들이 기성 기업들에 대항해 경쟁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 결과 혁신이 저해되고 경제 성장이 억제된다.

그러므로 설사 과거의 산업 정책이 다소 장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한국의 거대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정부 특혜 없이 혼자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늘의 기업가들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고 내일의 기업가들은 도전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한국이 성장할 때 산업 정책으로 말미암아 성장의 과실이 모든 한국인들 사이에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과거 산업 정책이 제조업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었던 만큼 이제는 국민의 태반을 차지하는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이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누린 독점적 관행, 토지 투기, 국가로부터의 특혜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원과 정치적 권력을 자신들이 더욱 공정하다고 보는 방식으로 재분배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사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는 이상은 어떻건 현실은 경제 권력을 통제하고 자원을 재분배하기 위한 정부 개입의 한 형태다.산업 정책은 기업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인 데 반해, 경제 민주주의는 근로자 계급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산업 정책이 수십 년간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었으며 근로자 계급을 산업화의 편익의 향유에서 배제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제 근로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가 혜택을 받건 상관없이 정부가 부여하는 특혜는 수혜 집단의 경쟁자들과 납세자들을 희생시키고 경쟁의 장을 어느 한 쪽에 유리하게 왜곡한다.오늘날 논자들 간에 대안은 산업 정책 아니면 경제 민주주의라는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는 모두 자유 시장이 아니라 정부에 의존하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은 생산적이기보다는 지대 추구를 하고, 근로의 결실을 얻으려하기 보다는 정치적 연결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경제 민주주의도 산업 정책과 마찬가지로 한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다른 집단의 정치적 이익으로 대체한다. 따라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정치적 이전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게 하는 유해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이러한 효과는 갈수록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해서 생산을 증대시키려 하기 보다 분배에서 어떻게 내 몫을 늘리고 남의 몫을 줄일 것인가에 치중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 정책도 정치적으로 강력한 집단과 계층의 이익을 반영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적은 쪽의 이익을 무시한다.

이상과 달리 경제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모두에게 균등하게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예상 밖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 민주주의도 산업 정책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게 이득을 분배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산업 정책으로 특정 기업이 이익을 얻고 다른 기업들이나 근로자들이 손해를 보듯이, 경제 민주주의로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은 이익을 얻고 다른 집단이나 계층은 손해를 본다.

오늘날 한국에는 산업 정책과 경제 민주주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안은 산업 정책이냐 경제 민주주의냐가 아니다. 대안은 랜들 홀콤(Randall G. Holcombe)이 주장하듯이 자발적인 합의와 상호 유리한 교환에 토대를 둔 자유방임 자본주의 경제 정책이다. 자유방임 자본주의 경제 정책은 대기업도 편애하지 않고 근로자도 편애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은 재산권과 계약을 시행하고,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게 취급되는 법의 지배를 확립할 뿐이다.

정부가 이렇게 중립적인 상황에서는 누가 부유해지는가는 시장의 힘이 결정한다. 남에게 더 많이 봉사하는 사람, 기업가적 정신이 더 풍부하고 더 혁신적이며 더 생산적인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번다.산업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나 경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나 경제의 게임 규칙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경제 정책을 옹호한다. 산업 정책은 의도적으로 특정 기업들에게 정부 편애와 지원을 제공하도록 설계된다. 경제 민주주의는 정부가 근로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도록 게임의 규칙을 다시 작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쪽 다 한 특정 이익을 다른 특정 이익보다 더 옹호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산업 정책이나 경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한, 반드시 이익 보는 집단이나 계층이 있고 피해 보는 집단이나 계층이 있다.자유방임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는다. 기업은 정부 편애나 지원 없이 시장의 규율 아래에서 실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근로자는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않고서, 채용·해고·보수·부가 급부에 대한 규제 없이, 그리고 노동 시장 바깥의 정부 지원 없이 시장 규율 아래에서 실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이 없는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 보상받는 환경을 만들고 경제 진보를 초래한다. 산업 정책이나 경제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방임 자본주의 경제 정책이 번영을 낳는 경제 정책이다. 바람직한 미래의 경제 정책 방향은 산업 정책과 경제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자유방임 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다. / 황수연  경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shwang@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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