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의 ‘자유가 있는 거리의 풍경’』

   
▲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아동착취 그 중에서도 아동의 노동착취만큼 공분(公憤)을 사는 일은 없다. 이는 은밀하지도 않은, 공개적인 사회범죄이기 때문이다. 1993년 방글라데시 아동들이 월마트(Wal-mart)에 납품하기 위해 만든 의류의 생산 현장이 공개된 적이 있다. 작업환경과 급여가 좋을 리 없다. 미국 언론은 이를 아동 노동착취로 대서특필했다.

미국 아이오아주 상원의원 탐 하킨(Tom Harkin)은 아동 노동착취를 금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미성년자가 만든 의류의 ‘미국내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방글라데시를 겨냥했다. 미국의 의류 수입이 중단되자 방글라데시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러면 공장에서 일하던 아동은 학교와 집으로 돌아갔는가? 그들은 ‘길거리의 아이들’로 남았다. 길거리가 공장보다 좋을 리 없다. 그들에게 공장은 미래의 꿈을 키우는 곳일 수도 있다. 미국 잣대로 그 꿈을 앗아간 것이다.

탐 하킨 법안이 만들어질 때는 좌파성향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인권과 아동복지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명분만 확보한다고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탐 하킨 법안은 그 후 ‘예기치 않은 결과의 가설’(hypotheses of unintended consequences)의 전형으로 교과서에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사전적으로 ‘선한 의도’가 항상 사후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리드만(M. Friedman)은 이를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로 명명했다.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인 ‘명분확보’가 세상을 바꾸는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현실을 인간의 이성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은 화를 초래하게 돼있다.

‘예기치 않은 결과’는 인간의 ‘인지능력 한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음의 두 가지 예화가 이를 말해 준다. 어떤 음식점에서 주인이 특별한 이유 없이 주방장을 구박했다. 하지만 주방장은 마땅히 주인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칠 요량으로 음식을 듬뿍듬뿍 내보냈다. 그랬더니 손님 사이에 주방장 인심이 좋다는 입소문이 났다. 당연히 장사는 더 잘됐다. 또 다른 예로, 어떤 보석상에서 새로운 보석을 들여왔는데 예상 밖으로 판매가 부진했다. 주인은 상심한 나머지 판매원에게 반값에 팔도록 지시하고 마음을 달랠 겸 여행을 떠났다. 판매원은 값을 2배로 올려 팔라는 것으로 잘못 알아듣고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보석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인위적인 경제민주화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 주부가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 대상이 됐던 대형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앞의 사례는 주인을 골탕 먹이려는 자신의 듬뿍듬뿍 행태가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뒤의 사례는 보석은 오히려 값이 비싸야 팔린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난 것은 소비자와 시장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결과’는 인간 이성에 대한 ‘오만’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지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전자에 의한 예기치 않은 결과가 사회적으로 더 해로운 것은 불문가지다. 명분과 독선에 빠지면 “손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는 것”으로 과신하게 된다.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각종 법안이 그렇다.

경제민주화는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전제로 한다. 강자의 것을 덜어내 약자에게 옮겨주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겠다”는 식이다. 골목상권 보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을 규제하겠다지만 SSM과 연계된 사회적 약자도 다수 존재한다. 국가는 서로 대립되는 경제주체 간의 이해를 조정할 만한 ‘경제계산능력’이 없다. 국가가 ‘경제민주화’ 이름으로 ‘특정 계층’의 편의를 도모하면, 이는 또 다른 기득권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해불일치로 인한 갈등은 점차 깊어질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를 복기해 보자. 당시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해 칼자루를 휘두른 것이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금지 조치였다. 셔틀버스를 없애고 나서 골목상권이 살아났는지 묻고 싶다. 골목상권이 무너진 것은 주거패턴이 변해 골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적(敵)은 대기업이 아닌 “또 다른 자영업자들”이다. 준비 안 된 자영업자이 밀물 듯이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전혀 딴 데 있다.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불공정행위도 과장된 것이다. 비상장 계열사로 하여금 여타 계열사에 시가보다 비싸게 재화와 용역을 팔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비싼 값에 구매하는 기업의 주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감을 비싼 가격에 몰아주기 위해 계열사를 세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업부제가 아닌 계열조직을 선택하다 보니 내부거래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순리이다.

국세청은 지난 7월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신고’ 안내문을 보낸 1만 658명의 기업인 가운데 96.9%인 1만 324명이 증여세 1,859억원을 신고했다고 밝혔다. 주주 구성을 기업규모별로 보면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대주주는 전체 신고자의 1.5%인 154명에 불과하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주주가 1.5%에 불과하다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총수 일가가 사익을 편취하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정확한 것인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한편 중소·중견기업의 비중이 98.5%라는 것은 엉뚱한 곳으로 불통이 튀었다는 것이다. 내부거래는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며, ‘거래비용 절감’을 위한 경영선택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주 대상이 중소·중견기업이라는 것은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판 ‘예기치 않은 결과의 가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이성으로 ‘시장 질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에 빠질수록 ‘예기치 않은 결과의 가설’이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이 그만큼 커진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