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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유보 과세하자는 괴담...유휴자금과 혼동
투자되지 않고 놀고 있는 돈으로 착각 말아야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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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3-12-12 17: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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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원장
김정호(연세대학교 특임교수, 프리덤팩토리 대표)
 

광우병 촛불 시위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하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정보와 지식들에 속아 넘어간 군중의 수준에 한숨이 나온다. 그런 지식을 퍼뜨린 지식인들의 무모함과 담대함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본능을 버리지 않는 한, 한심한 사태들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개방, 민영화와 관련된 괴담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소동 등 그후로도 이어지고 있는 소동들은 모두 그런 사례에 속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그런 소동을 겪고 있다. 사내유보는 투자를 안 하고 놀리고 있는 돈이니 세금을 매겨서 투자를 촉진하자는 움직임이다.
 

“복지재원 등이 부족한데도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을 반대하는 상황이니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그냥 갖고 있는 사내유보금에 과세하자는 것….”
 

최근 추미애 의원이 했던 발언이다. 이 발언과 생각이 문제인 이유는 사내 유보금이 무엇인지조차 이해 못한 소치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제안한 대로 사내유보에 과세하면 의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투자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유보는 회계 용어이다. 이것은 이익 중에서 배당하지 않은 돈을 뜻할 뿐, 투자가 되었는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배당하지 않고 유보된 금액은 현금형태로 있을 수도 있고, 공장, 설비, 건물 등 실무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유보금은 기계나 건물 같은 현물에 투자가 되더라도 회계상으로 계속 유보금으로 남아 있다.

한번 발생한 유보금은 배당 등으로 외부에 유출되지 않는 한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롯데그룹의 2013년 유보율이 5,496%라고 하여 놀라지 말라. 그것은 롯데그룹이 엄청난 유휴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외부차입보다 기업 자체 자금으로 투자해왔음을 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이 회계의 원리에 바탕을 둔 해석이다. 그런데 추미애 의원은 사내유보를 투자되지 않고 놀고 있는 돈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착각에서 비롯된 정책은 해롭기 십상이고,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도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사내유보는 이익 중 배당하지 않은 부분을 말한다. 거기에 세금을 매기게 되면 당연히 기업들은 배당을 늘린다. 그 만큼 내부자금이 줄어들 테니, 돈이 필요로 할 때, 외부차입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기업의 부채비율은 높아지고 투자도 줄어들기 십상이다. 투자 촉진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투자를 억누르는 것이 바로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이다.
 

안타까운 것은 틀린 사람이 추미애 의원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주당 이인영 의원 등 12인은 ‘적정 유보’를 초과하는 유보금에 대해서 세금을 매기자는 법을 이미 발의해 놓은 상태다. 그들 모두 사내유보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위 공직을 지냈던 학자들, 경제단체 조차 유보라는 단어에 속아서 엉뚱한 정책 제안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던 박승 교수는 2013년 6월 2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불임소득'"이라며 "이를 소득 재분배나 공공투자 자금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2013년 6월 5일 수원대학교 국토미래연구소의 주최로 열린 특강에서 "55조 원의 유휴 자금이 투자되지 않고 10대 기업에서 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2007년 7월 4일 발표한 ‘기업 유보율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사내 유보를 높이는 이유는 기업들이 적절한 투자기회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투자촉진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들에게 사내유보는 투자되지 않는 유휴자금으로 비쳐졌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나라 지식시장의 왜곡된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주장을 펴기 위해 엉터리 지식을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가 제대로 되려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전문가들이 나와서 틀렸음을 지적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유보의 뜻을 제대로 아는 수많은 회계사들이 있지만, 공개적으로 나와서 유보의 틀린 용법을 지적하지 않았다. 돈도 안 되는 일에 굳이 나서서 얼굴 붉히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그러는 동안 사회는 엉터리 지식들로 채워져간다. 나라도 나서면 조금 나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도 날을 세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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