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갑의 사생결단 싸움은 폐치, 경쟁하되 대결은 피해야

   
▲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2000년대 들어 사회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경쟁의 폭이 넓어지고, 경쟁의 강도도 한없이 세지고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경쟁이 나라간에, 기업간에, 혹은 조직간에, 개인간에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기득권자와 기득권자간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60~80년대 산업화시대 갈등은 경제적 갈등이 주된 이슈로 작용했다. 90년대엔 민주화열풍에 따른 정치전쟁, 정치갈등이 격화됐다. 2000년대에는 사회갈등의 시대다.

60~80년대 갈등은 비기득권자 대 비기득권자간의 갈등이었다. 90년대는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간의 갈등으로 변화했다. 초기의 갈등이 여우 대 여우의 싸움, 혹은 늑대 대 여우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호랑이 대 호랑이간의 싸움으로 격화됐다. 싸움의 성격이 달라졌다. 싸움의 맹렬성과 치열성이 완전히 변했다. 한쪽이 치명적 타격이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싸움으로 변모한 것이다.

요즘 철도파업과정을 보면 불법파업을 벌이는 귀족노조가 기득권세력으로 변해 밥그릇과 철밥통을 지키기위해 공권력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 노조가 기득권세력으로 변한 것은 법원의 판결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 등으로 생산차질을 빚게 하자 법원은 노조에 대해 9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금속노조도 쌍용차와 경찰에 46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대기업노조가 더 이상 약자-비기득권자가 아닌 셈이다.

이전에 우리사회의 갈등은 지역, 계급, 이념갈등이었다. 90년대까지는 지역갈등이든, 계급 및 이념갈등이든 당사자 한쪽은 갑이고, 다른 한쪽은 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갈등이든 모두 갑의 위치에서 갈등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기득권자의 수가 증가했다. 기득권자의 지위도 지속성이 보장되고 있다. 보장보다는 확립이라는 안정성이 내포된 용어가 오히려 더 사실에 가깝다.
 

우리 사회 갈등의 당사자들은 옛날과 달리 엄청난 파워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모두 파워 엘리트들이다.

파워 엘리트간의 싸움,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파워엘리트들을 동물세계의 사자나 호랑이에 비유한다면 이 맹수들의 싸움은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는가? 그 어느 한쪽이 죽고 어느 한쪽이 살아남는다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피할 수 없다. 이긴 쪽이든, 지는 쪽이든 다 죽는다.

이를 먼저 경험한 서구 선진국들의 파워 엘리트들이 찾아낸 묘안이 ‘거버넌스(Governance)’다. 우리말로 협치(協治)라고 한다. 협치는 입장과 주견이 다르고 요구도 다른 당사자들이 함께 앉아 협의하고, 타협하고, 협상해서 마침내 하나의 의견, 하나의 묘안, 하나의 대책을 강구해내는 것이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협상이다. 협상은 상대방의 말을 진정으로 경청(傾聽)하는 인내와 상대방의 인격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협의와 타협의 과정에서 성실성과 결과에 대한 복종, 이행을 기본으로 한다.

더 좋은 협상, 더 생산적인 협상, 그리고 더 유리한 협상을 위해서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대안을 찾는다. 좋은 대안일수록 좋은 정책이 된다. 좋은 정책일수록 경쟁력을 갖는다. 경쟁력이 있어야 협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거버넌스, 즉 협치의 과정에서 파워엘리트들은 자연적으로 경쟁이 체화(體化)한다.

선진국들의 파워엘리트들은 경쟁(competition)은 하되, 대결(confrontation)하지 않는다는 기풍(discipline)과 행위규범을 지켜왔다. 이는 기득권자와 기득권자의 갈등을 해결하는 거버넌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쟁은 각인각색의 장점이며, 강점을 겨룸으로써 발전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해낸다. 그러나 대결은 사생결단식 맹수들의 투쟁이다. 이는 부정적인 거버넌스, 즉 폐치(弊治)로 전락한다.
결과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 외에 아무런 이득이 없다.
 

협치에서 협상은 파워 엘리트들의 갈등을 더 큰 발전의 도약대로 삼는다. 더 나아가 마침내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핵심수단이 된다. 협상이 통합이라는 경험칙은 여기서 비롯된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헌법질서를 훼손하는 세력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 법으로 다스려야 할 대상이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