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주가연계증권(ELS)의 중간 평가일에 보유한 주식을 대량 매도해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더라도 거래가 위험회피 목적에 부합했다면 증권사는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김모(62)씨가 "ELS 투자로 손해본 92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BNP파리바은행과 신영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김씨는 2006년 3월 하이닉스와 기아자동차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신영증권 ELS에 1억원을 투자했다. 중간평가일 두 종목 종가가 모두 기준가격의 75% 이상인 경우, 중간평가일까지 종가가 동시에 115% 이상인 날이 있는 경우 연 16.1% 수익을 더해 조기상환받는 구조다.

첫 조기상환일인 2006년 9월4일 장 마감 10분전 하이닉스 주가는 기준가격 2만9300원을 훨씬 웃도는 3만8000원선이었다. 기아자동차도 기준가격의 75%인 1만5562.5원을 상회한 1만5950원에 거래됐다.

그러나 기아자동차 주가가 1만5550원으로 마감하는 바람에 조기상환이 무산됐다. BNP파리바은행이 기아자동차 주식 101만8000여주를 한꺼번에 팔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신영증권과 스왑계약을 맺어 김씨가 투자한 ELS와 동일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매입한 상태였다.

김씨는 이후 네 차례 중간평가에서도 조기상환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 만기일인 2009년 3월 2950여만원만 상환받고 나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일련의 행위가 시세조종이 아니라 위험회피와 상환재원 마련 목적의 정당한 거래라는 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주가 등락에 따라 기초자산 보유량을 조절하는 '델타헤지'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종가가 상환기준 가격 이상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은행은 주식 보유량 조절과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100만주를 매도할 필요가 있었다"며 "주가연계증권의 조건성취 여부는 상환기준일 종가로 결정되므로 델타헤지는 장 종료 직전 수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장모씨 등이 "중도상환 조건이 성취됐지만 대우증권이 중도상환을 막기 위해 시세를 조종했다"며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선 원고의 승소를 확정했다.

대우증권은 "델타헤지를 위한 정당한 거래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델타헤지에 따른 거래를 하지 않고 변동성을 이용한 차익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우증권은 호가를 높게 제시해 대부분 매도 계약이 무산됐고 오히려 매수 주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장 마감 10분 전부터 주식을 기준가격보다 저가에 집중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렸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반면 BNP파리바 은행은 100만주 가운데 60만주를 시장가에 매도 주문했다. 당일 오전 주가상승을 예상해 높은 호가로 매도 주문을 넣었다가 실제 주가가 오르지 않자 오후 들어 주문가격을 낮춰 파는 등 시세조종을 위한 가장·허위매매 흔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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