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스템은 사회의 여러 가지 맥락과 가치가 혼재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법제 시스템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일관된 논리와 초 가치(Meta Value) 가 존재하여야 법이 가져야 하는 안정성을 갖출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률 시스템은 그와 같은 방향에서 점점 반대로 멀어져가고 있다. 법제 간에 공유하여야 하는 가치는 실종되고 있고, 실적 중심의 정책에 기댄 법률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법률을 만드는 국회나 행정입법을 하는 정부나 모두 할 수 있는 일과 하여야 하는 일을 혼동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즉 국가와 국민이 정말 필요로 하는 법률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유모(乳母)가 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법률 시스템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양상에 따라서 그 내용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함이 미덕이다는 점은 법률에서도 필요한 전제이다. 왜냐하면 법률은 사용자 친화적일수록 그 가치가 돋보이는 존재이다. 법률이 단순해질수록 정부기관, 기업,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법률을 이해하기 쉬운, 사용자 친화적인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단순함이란 법 내용과 체계, 구조의 명확성 및 합리성으로, 원래 내용이 복잡한 것을 인위적으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최대한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구조와 체계를 구현하고, 법률에 담을만한 합리성을 갖춘 내용들만을 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쉬운 내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단순함과 거리가 있다. 법률에 필요하지 않은 규제 내용들을 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된다. 결국 법률 시스템이 쓸모가 있으려면 단순함이 필요하고, 또한 법률이 국가가 유모가 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쓸모 있는 법률이 가져야 할 단순함에 다가가려 하면서도, 동시에 단순함에서도 멀어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들이 종종 관찰된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도 알기 어렵다는 세법의 경우에는 기획재정부 내에서의 알기 쉬운 세법 새로 쓰기 사업에 따라 사용자 친화적으로 변모해나가고자 한다. 반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에서는 엉뚱하게 법률의 목적인 상생(相生)과는 다른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국가가 법률을 쓸모있게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유모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최근 게임중독법으로 유명해진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다.

우선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우에는 해당 법률의 체계와 구조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기에 합리성이 없어서 단순함의 미덕에서 멀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업종을 선택하여 중소기업만의 시장으로 분리해내고자 하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적합업종제도와 같이 개별 업종별로 기업의 시장 진출과 퇴출을 인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제로섬(Zero-sum) 관계를 만드는 것이지, 상생(相生)이자 협력(協力)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시장에서 관찰되는 여러 부작용들은 이러한 점에 대한 생각 없이 해당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며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상생이자 협력에 해당하는 제도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미국 중소기업법(Small Business Act)상 멘토 프로그램(mentor-protege program)과 같이 공공조달사업 계약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컨소시엄에 대해 우대해주는 것이 더 적합하다.

중독예방관리법의 경우에는 기존 법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법률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해결하려는 것으로, 전형적으로 단순함에서 거리를 둔 사례이자 프레이밍에서도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해당 법률안의 입법취지에서도 밝히고 있다시피, 각 산업에 관한 진흥 법률에서는 중독에 대한 예방, 관리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실제 대응 정책이 각 법률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법률안에서는 각 물질 또는 행위의 특성에 따라 중독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예방하는 것이 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행되고 있는 정책을 수정, 개선하고, 더욱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도 해결 가능한 사안을 옥상옥(屋上屋) 법률을 만들고, 국가가 더욱 충실한 유모가 될 수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쯤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가 전반을 바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가 제시되고 있는 때, 국가는 국민의 유모가 되고 싶은 마음도 같이 버릴 줄 아는 미덕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창의성은 유모가 건네주는 달콤한 사탕과 잘 짜여진 계획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국가는 국민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고, 법률 시스템은 그러한 공간을 만드는 쓸모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승영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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