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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낙인찍는 시대의 지진아들…민족주의는 끝났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위대한 성취…절대로 수긍 않는 좌파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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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03-15 07: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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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민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목도했다. 역사적 경험이 의미 있는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어느 시기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판단하는 일은 중요하다. 1945년 미군에 의해 해방된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이라는 낙인이 횡행하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친일’이라는 낙인이 건국-산업화 인물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15일 ‘2016 친일을 생각한다’ 생각의 틀 깨기 연속세미나를 열었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주장이 ‘친일’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자리였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제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바라본 하늘은 이미 일본 하늘이었고, 이들이 연명해가는 일상의 생활터전은 모두 일본인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었다며 “이들 대다수는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모두 일본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밝혔다. 이어 송 교수는 “애국도 독립운동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친일 인명사전」을 만들어 해방7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친일파 규정, 규명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북에 비해 지나치게 격차를 벌려 놓은 대한민국의 거대한 성취를 절대로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송복 명예교수의 기조강연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친일(親日)’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친일논란이 일 때마다 생각나는 詩가 있다. 바로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株) (1915-2000)의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란 詩다.  2002년 未堂 2주기 추모행사를 그의 고향이 전북 고창에서 하기로 결정했는데, 누구라 하면 곧 알만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그의 제자 몇몇이 그리고 거기에 호응하는 문인들 상당수가 未堂을 친일파라 하여 고향행사를 저지했다. 거기에 지방행정당국도 가세해서 결국 未堂 2주기 추모행사는 고향에서 못하고 서울 혜화동소재 재능그룹 빌딩의 한 홀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내가 낭송한 詩가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였다. 이 詩는 장장 19쪽에 달하는 긴 서사시인데 앞 부문만을 발췌해서 보면 이러하다.

「從天順日派」

1943년 가을부터 약 반 해쯤 
나는 선배 문인 崔載瑞씨의 요청으로 
그의 출판사인 人文社에 들어가
일본말 시잡지 《國民詩人》의 편집 일을 맡았으나,
근년에 민중문학가 일부에서 나를 지탄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비양심이나 무지조를 내가 느끼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이게 내게도 불가피한 길이라고 판단되어서 그랬을 뿐이다.

일본은 이미 벌써 만주를 송두리째 그들의 손아귀에 넣어
만주제국이라는 그들의 괴뢰정권을 세운지 오래였고,
중국의 중화민국 정부도 먼 서쪽 변방으로 쫓아내고,
汪兆銘이를 시켜 南京에 더 큰 괴뢰정부를 세웠으며,
상가포르를 함락하고,
필리핀을 입수하고,
동남아 전체를 먹어 들어가며
〈대동아 공영권을 세우자〉고 우리 겨레에게도
강요하고 있어
그들의 이 무렵의 그 욱일승천지세 밑에서 
나는 그 가까운 1945년 8월의 그들의 패망은
상상도 못했고
다만 그들의 100년 200년의 장기 지배만이 
우리가 오래 두고 당할 운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처자를 거느리고 또 자손의 살아남을 길도 내다보아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의 인문사 입사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이때엔 판단되었을 뿐이다.
또 달리 호구연명할 길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 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
〈附日派〉린 말도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안다.
일본에 바짝 다붙어 사는 걸로 이익을 노리자면
끈적끈적 잘 다붙는 무얼 가졌어야 했을 것인데
나는 내가 해준 일이 싼 월급을 받은 외에 
그런 끈끈한 걸로 다붙어 보려고 한일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從天順日派〉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
그러나 친일파 그것 한가지로써만 
내 일정치하의 생애가 종지부를 찍기는 
무언가 좀 승겁고도 섭섭했던 것인지, 
1944년 봄 그 원수 것의 진달래가  또 피자
나는 독립고취 연극운동의 지도 혐의로 
수갑을 차고 끌려가게 되었지.
…………
하여 나는 여기 유치장에 잡범들과 함께 수감되어
두달 반쯤을 썩고(?)지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 그건 썩는 게 아니라 좀 얄궂은 대로의
일종의 휴양소는 휴양소였던 것 같다.

사실 未堂의 이 詩 제목대로 당시 우리나라 친일파로 지칭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從天順日派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詩의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하늘의 뜻에 따라 일본에 순종했을 뿐이라는 의미다. 지금 생각하면 목숨을 걸고 저항하거나 투쟁하다 죽어야 하는 것인데, 목숨도 아깝고 그들 칼날도 두려워서 그들 시키는 대로 그저 머리를 조아린 것이 종천순일이다. 이미 지목되어서 낙인 된 그런그런 친일파를 제하면 당시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⓵먹고 살기 위해서 ⓶그들에게 굴복해서 ⓷그들 시키는 대로 ⓸그들에게 이용되기도, 악용되기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들이 바라본 하늘은 이미 일본 하늘이었고, 그들이 연명해가는 일상의 생활터전은 모두 일본인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모두 일본이 만들어 주는 것이었고, 일순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構造란 구조는 죄다 일본이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그 구조를 고칠 재주도 고칠 힘도 없었고, 물론 그 구조에 저항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능력도 의지도 박약했다.

   
▲ 민족주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시대도 벌써 오래 전에 의미를 잃었다. 이젠 완전히 민족을 초월해야 하고 초월함으로써 민족개념을 더 크게 더 넓게 그리고 더 친밀하게 만들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내 나라, 내 사회의 구조를 내 스스로 만들어 보겠다, 혹은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는 조선시대부터 미약했고,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글줄깨나 읽은 대개의 선비들은 이 나라 이 강토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후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 대표적 예가 20세기 초 1904∼5년 일본에 저항하다 강제로 흑산도에 유배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흑산 바위에 새겨 논 글이다. 조선은 바로 「기봉강산(箕封江山)의 홍무일월((洪武日月)」이라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 중국인(은나라) 기자가 이 땅에서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이 나라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은 누구의 것이냐.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해와 달이다. 그러니 얼마나 빛나는 나라며 얼마나 소중한 나라이냐. 그런 나라를 감히 일본 너희 놈들이―. 당시는 그런 사고였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쓴 육당(六堂)최남선(崔南善)의 회고록(잡지 「새벽」)을 보면 선언서 첫머리에 나오는 「조선독립」이라는 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시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1919년)해도 중국을 종주국(宗主國)으로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지금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것이 그 때 그렇게 논란 꺼리가 되었다면, 일본이 만들어준 구조와 일본 지배에 대한 저항의식 또한 미미하고 약했다 할 수 밖에 없다. 未堂의 詩제목처럼 종천순일이 당시 조선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이고 대체적인 풍조라 할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방을 맞은 내 어렸을 떼 기억으로는 저 하늘이 일본 하늘인지 우리 하늘인지에 대한 의식은 없었고, 더구나 일본의 압제 하에 우리가 살았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해방의 의미도 알았고, 그때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도 학교에서 배워 알았다. 해방이 되고 2년이 지난 4학년 때였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 일제시대를 회고하면서 「정치는 일본 사람들이 잘했어. 정직하고 경우가 발랐지.」 그러면서 해방시국을 개탄하고 한숨을 쉬며 오히려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 듣고 있던 내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촉망스레이 나서서 「일본 놈들은 나쁜 놈이고, 우리나라를 강제로 뺏어간 도적놈들이고, 우리 나라사람들을 징용으로 끌고 강제로 일시키고 우리 애국지사를 잡아다 죽이고 그런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좋게 말 하십니까」 하면서 어른들에게 대들었다. 어른들이 볼 때 무엄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맹랑하다 싶으셨는지 당돌하다 생각해서인지 크게 화는 내지 않고 「이놈아 네가 뭘 알아. 우리는 그 시대를 평생 살았어. 일본사람 하나도 욕할 게 못돼, 그 사람들에게 배워야 해」했다. 그야말로 한평생 종천순일한 어진 백성이고, 이 백성들에겐 일본은 가해자도 압제자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과 달리 나라를 되찾겠다고 평생을 분투한 독립투사나 애국지사들에겐 종천순일이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 분들에게 종천순일이란 친일하는 것이고 부일(附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두 친일파이고 부일파이다. 도시 민족의식이란 손톱만큼도 없는 매국노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뭐 태어나보니 일본 하늘이었다고, 그래서 날강도나 다름없는 놈들에게 순종했다고, 길길이 뛰어도 탱천(撐天)한 분노가 결코 삭으러 질 수 없는 말이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에겐 이 종천순일이다.

   
▲ 친일세력 친일파를 가장 증오하고 가장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그들을 달리 보고 기용한 것은 그들의 쓰임새였다. 그들이야 말로 공산세력을 막고 분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세력이며 가장 유용한 재목이라 본 것이다.


독립투사 애국지사야 그렇다 하고, 애국도 독립운동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친일 인명사전」을 만들어 해방7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친일파 규정규명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참으로 깊은 민족대계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뜻에서 인가. 지금까지 그들 행태를 보면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들 목적에 반(反)하고, 그들의 목적하는 바를 저지시키고, 그리고는 그들이 원하고 지향하는 바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그들이 철저히 반대하는 쪽에다 가져다 준 것이 친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엄청난 발전을 혐오하고, 북에 비해 지나치게 격차를 벌려 놓은 대한민국의 거대한 성취를 절대로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대로 좌파 혹은 좌편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친일 세력을 그렇게 증오하는가. 그 이유 또한 명백하다. 만일 친일 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또 대한민국의 발전- 산업화에 이바지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성공은 가능했겠는가. 그 어느 것도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다시 말해 존재할 수도 가능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친일 세력은 어떤 사람들인가. 한마디로 이용가치가 큰 사람들이었다. 대개는 일반 국민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고, 영리한 사람들이고, 동시에 영악한 사람들이었다. 기회도 남달리 잘 포착하고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고, 꾀도 많고 술수도 능하고 정략적으로 얼마든지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조용할 때는 잘 들어나지 않지만 역사가 굽이쳐 흐를 때는 남 앞서 달려가고 남위에 올라서는 사람들이었다.

친일세력 친일파를 가장 증오하고 가장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그들을 달리 보고 기용한 것은 그들의 쓰임새였다. 그들이야 말로 공산세력을 막고 분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세력이며 가장 유용한 재목이라 본 것이다. 이야말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적으로 적을 막는 것이다. 일반 국민은 순진했고,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더구나 그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어떤 나라를 만들려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당시 신생 독립하는 모든 나라의 경험에서 보듯이 국민은 공산세력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친일세력 친일파들은 달랐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거기에 싸울 능력이 있었고, 그들을 막고 분쇄할 의지가 있었다. 해방 2개월 후인 1945년 10월 미국으로부터 귀국 한 이승만 박사가 이들 친일 세력 친일파를 기용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현실적으로 불가피 했던 것이다. 남로당 南勞黨의 마지막 총수 박갑동朴甲東의 회고에서 보면 , 이승만 박사가 귀국했을 때 박헌영은 이미 공산당을 재건했고, 5∼7명으로 구성된 단위세포單位細胞조직을 도 시 군 면 단위로 1만개, 거기에 직장 세포 특수 세포 수를 합쳐 2만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각종 노동단체 문화단체 직능단체 등 외각 단체의 세력을 감안하면, 남한은 이미 그 같은 막강한 조직에 장악되어 있었고, 그 막강한 조직의 한 중심에 박헌영이 군림 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을 막고 그들 조직을 파괴하고 마침내 그들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이들 친일세력 친일파들이었다. 우리나라 좌파 좌편향 세력들이 집요하게 친일파를 공격하는 것은 식민시대의 그들 행위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 후 대한민국 건립에서의 그들의 지대한 공헌을 증오하는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드디어는 김일성 주도하의 남북통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북에서의 친일파 기용은 언급을 회피했다. 반대로 이북은 친일파를 완전히 소탕했다고만 지금도 거짓 주장하고 있다. 친일파의 유능함과 유용성은 이북도 이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남한이 친일세력을 「이이제이」 했다면 이북은 친일세력을 「이이호제」以夷護制했다. 친일파라는 적을 기용해서 그들 몸을 지키고 그들 체제를 보호한 것이다. 그것도 남쪽보다 더 노골적으로 더 높고 센 자리에 김일성이 친일파를 갖다 앉혔다. 그들은 숨기려 노력했지만 그 친일파들의 면면은 예나 이제나 잘 밝혀져 있다. 

   
▲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는 복된 나라다. 우리처럼 일본이나 중국 같은 좋은 이웃을 가진 나라도 이 지구상엔 많지 않다. 일본 사람들만큼 똑똑하고 영리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그리고 질서정연하고 남을 배려하고 그러면서 창의성이 많은 국민도 드물다. 일본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나라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제 7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남쪽은 세계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12∼13위에 오르는 경제대국이 되었고 10위권 안에 드는 군사대국도 되었다. 원조를 받는 수혜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바뀐 것도 오래 전이다. 세계 185개국과 경제 거래하고 그만큼 경제 영토도 넓어졌다. 그러나 북은 해방될 때의 70년 전 그대로이고 그래서 아직도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쪽의 좌파들 역시 따라 외치고 있다. 시대의 지진아(遲進兒) 들이다. 그 지진아들을 우리가 언제까지나 안고 갈 수는 없다.

민족주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시대도 벌써 오래 전에 의미를 잃었다. 이젠 완전히 민족을 초월해야 하고 초월함으로써 민족개념을 더 크게 더 넓게 그리고 더 친밀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185개국 사람들이 이 바뀐 민족 개념으로 나와 동일한 민족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친일親日이니 반일反日이니 혹을 배일排日이니 하는 말도 쓸 필요가 없고, 그런 심성도 가질 이유도 없다. 이 모두를 초극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초극의 시대를 이미 우리는 오래 전부터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아직도 친일을 말하는 것은 이미 말한 대로 시대의 지진아들이다. 지진아는 곧 도태된다. 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는 복된 나라다. 우리처럼 일본이나 중국 같은 좋은 이웃을 가진 나라도 이 지구상엔 많지 않다. 일본 사람들만큼 똑똑하고 영리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그리고 질서정연하고 남을 배려하고 그러면서 창의성이 많은 국민도 드물다. 일본은 언제나 우리가 배워야 하는 나라다. 중국만큼 땅이 넓고 인구가 많고 같은 한자를 쓰고 같은 문화권에서 수천 년을 이웃 해온 나라도 없다. 일본은 우리에게 「배움의 나라」고,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의 나라」다. 우리를 흔히 「고래 가운데 세우」로 비유한다. 일본과 중국이 고래인 것은 맞지만 우리는 이미 세우가 아니다. 더러 말하는 돌고래도 아니다. 우리 역시 이웃의 두 고래와 나란히 대양을 유영(游泳)하는 고래다. 덩치는 문제가 안 된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가 어디 덩치가 커서 거인이더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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