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근 선문대 교수
                                                    지상파방송사들의 탐욕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수신료인상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간광고 허용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더니, 이번에는 광고총량제까지 바라고 있다.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를 허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말 그대로 접입가경이다. 어찌 보면 방송사나 규제기관 모두 그나마 이제까지 쓰고 있던 공익성이나 공공성이라는 가면조차 벗어버린 듯하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상파방송사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들이기 위해 종일방송과 중간광고 그리고 광고총량제를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이런 것들이 이제 거의 다 성취되기 직전인 셈이다.


종일방송은 2006년 낮방송 그리고 2011년에는 심야방송까지 허용되어 이미 완료된 상태다. 아마 지상파방송사들은 늘어난 시간에 인기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들을 재방송해서 광고수입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고자 하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낮 시간대 시청률이 워낙 낮다보니, 결과적으로 저예산의 연예인 신변잡기 토크쇼들만 양산해 놓고 말았다. 마치 종합편성채널들이 하루 종일 저예산 뉴스토크쇼로 도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심야방송 역시 기대했던 것만큼 실익이 없어서인지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다.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요구해온 것이 중간광고다. 최근 정부가 중간광고를 허용하겠다고 자주 언급하지만, 케이블TV를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들의 심한 반대 때문에 주춤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분위기로 보아 조만간 허용해줄 것처럼 보인다.

 

   
▲ 방통위가 지나치게 지상파 방송 돕기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심야방송 허용에 이어 중간광고와 광고총량제까지 지상파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중간광고가 왜 문제인가?

그 이유는 중간광고가 허용되면 프로그램 선정성과 오락성이 더욱 극심해진다는 것이다. 방송 광고효과의 핵심은 흔히 ‘지핑(zipping)’이라고 하는 시청자들의 광고 회피현상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끼워 넣게 되면, zipping현상을 막기 위해 더 선정적이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들을 늘려야만 한다.

단순히 광고량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방송의 상업화와 오락화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은 단순히 경쟁사업자들의 광고 파이를 빼앗아 가는 이해갈등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허용하겠다고 하는 광고총량제이다. 현행 방송법에 지상파방송은 매시간 단위로 1/10까지 광고를 편성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때문에 아무리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 광고시간을 늘릴 수 없다. 그렇지만 광고총량제가 실시되면, 인기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들이 방송되는 이른바 ‘황금시간대(prime time)’에 광고를 몰아서 하고, 다른 시간대에 광고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광고가 잘 붙지 않은 심야 혹은 낮 시간대 광고시간을 황금시간대 인기프로그램에 붙일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인기프로그램에 광고량을 늘리고 광고단가도 높여 조금이라도 수익을 올려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황금시간대에 방송사들간 광고유치경쟁이 극심해지고, 결국 모든 방송사들이 상업화경쟁에 골몰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지상파방송사들이 요구해온 이 세 가지 정책목표들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광고 수익을 극대화시키겠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방송광고시장이나 최근 경제악화로 광고판매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나름 ‘공영방송 혹은 공익적 지상파방송’이라고 주장해왔던 지상파방송사들이 안면몰수하고 광고수익 극대화에 목을 매는 것은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100번 양보해서 상업방송인 SBS와 스스로 공영방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상업방송과 동일한 MBC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이라고 자칭하는 KBS까지 여기에 묻어가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더구나 KBS는 진정한 공영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수신료 인상이 절대 필요하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인상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앞에서는 공영성을 명분으로 수신료인상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광고수익을 늘리기 위해 열을 올리는 모습은 이율배반을 넘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계나 업계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KBS 수신료인상은 광고수익 축소와 연동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광고 그리고 최근 광고총량제까지 추진하는 것은 절대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라는 개념도 없고, 한때 논의되었던 ‘공영방송법’ 조차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미흡한 법 틈새를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공영방송 답지 못한 비겁한 행동일 것이다. 얼마 전 스마트 폰 같은 디지털 개인 단말기에도 수신료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을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다.


이와 함께 더 우려되는 것은 방송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이다. 정권 초 유료방송은 미래창조과학부,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 보도채널은 방송통신위원회로 규제기관을 분리할 때 이미 우려했던 현상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행정문화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규제대상을 확보하고 파이를 늘려야 규제기구가 존립할 수 있다는 이른바 ‘지대추구(rent seeking)’ 현상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창조과학부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지상파 살리기’ 일색이라는 것이다.
 

이미 허용하겠다고 한 지상파 다채널방송(MMS) 그리고 중간광고와 광고총량제 같은 그동안 지상파방송사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들이 마치 기회 만났다는 듯이 줄줄이 허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같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기조가 지속된다면, 아마 미래창조과학부도 유료방송사들이 요구해온 것들을 경쟁적으로 허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노무현정부 시절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의 이해를 놓고 벌였던 대리전이 재현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방송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있는 정책은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형식적이나마 그동안 뒤집어쓰고 있던 방송의 공익성이라는 가면조차 벗어던지고 사업자와 규제기관들이 얽혀서 싸우는 ‘적도 아군도 없는 몬도가네 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판에 서 지금까지도 ‘말로만’ 떠들었던 ‘시청자 주권’이니 하는 거룩한 목표조차 아예 소멸될 것 같다./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