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학교 다닐 때 복잡한 수학문제를 가뿐한 마음으로 풀고 시험시간 종료 전에 교실을 유유히 나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엉뚱한 답을 쓰고 나온 것을 뒤 늦게 깨닫게 되었다. 문제의 의도는 다차(多次)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것인데 쉽게 풀어볼 요량으로 여러 개의 2차방정식으로 전환하여 풀고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들도 이런 식으로 풀고 나온 것이다. 선생님이 누구나 풀 수 있는 2차방정식을 출제할 리 없었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에 던져진 경제민주화 문제를 풀어가는 정치권의 해법도 필자가 저질렀던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경제민주화라는 다차 방정식을 ‘이분법 프레임’에 기초해 여러 개의 2차방정식으로 전환하여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쪽을 규제해 약한 쪽을 상대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이분법 프레임 정책은 손쉬운 해법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의롭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경제민주화의 본래 취지인 ‘상생’과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이분법 프레임’에 갇힌 골목상권 보호법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작년부터 유통법을 통해 대형마트의 골목진입과 영업시간을 규제해 왔다. 최근에는 상생법을 통해 사업조정제도를 강화했다. 강자의 손발을 묶어놨으니 약자인 골목상권의 영세상인들이 웃을 일만 남았다. 그러나 규제 시행 후 1년이 넘었지만 영세상인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진입해 있던 중·대형 규모의 점포 운영자들만 자신들의 경쟁자인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진입하지 못해 웃고 있다는 얘기만 들린다.

국내 대형 점포들이 규제를 받는 동안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규제할 수 없는 외국계 업체들만 자유롭게 활동하며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만 들린다. 애꿎은 소비자와 대형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던 영세 납품업자와 농민, 매장 직원 등의 또 다른 약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규제가 강화되자 대형유통업체들이 신규채용 계획을 철회 하는 등 고용창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민간소비만 위축시키고 있다는 얘기만 들린다. 누굴 위한 정책일까?

대형마트를 직접적으로 규제하기보다 골목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과 대형 유통점과는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개발을 통해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정책이 오히려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진정한 상생 정책 아닐까?

‘이분법 프레임’에 갇힌 ‘甲乙 관계법’

사업자간의 거래계약은 개인 간의 계약과 달리 계약 당사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시장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external effect)가 발생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바람직한 외부효과는 극대화해야 할 것이고 피해를 주는 외부효과는 철저히 규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업자간의 거래행위가 시장과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계약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의 남용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다. 물론 아무리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갑의 행위더라도 을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따라서 갑의 우월적 지위남용으로 피해를 입은 을은 당연히 민법(계약법)상의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소비자와 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갑의 행위는 규제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는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형유통업법, 대리점법 등을 ‘갑을관계법’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법들에서는 사업자간의 계약행위가 민법(계약법)상 정당하더라도 규제할 수 있다. 소비자와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할 필요도 없다.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고 민법(계약법)적으로도 정당한 행위라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규제명분을 찾는다면 을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보이는 외관을 띤 행위를 규제해 을의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갑의 행위가 진짜 부당한지 여부를 입증해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항상 과잉규제 논란이 초래된다. 외관상 부당해 보이지만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상적인 기업행위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을이 확실히 보호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하도급법 개정을 보자. 갑이 납품단가를 인하할 경우 외형적으로는 불공정해 보인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과 형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까지 할 수 있도록 하도급법이 개정되었다. 완성품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갑의 정상적인 납품단가 인하조차도 자칫 부당한 행위로 낙인찍힐 위험(legal risk)이 상당히 커진 것이다.

따라서 최근 대기업들이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신과 거래하고 있던 하도급업체의 수를 줄이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수많은 하도급업체와 거래를 하는데 이 중 한 곳이라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경우에는 승소여부를 떠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기업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소송에 휩싸이기 전에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주요 협력업체만 남겨두고 나머지 협력 업체와의 거래는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업체가 대기업과 수월하게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좋은 취지의 정책 때문에 오히려 중소업체의 거래기회 자체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갑을관계법’에 기초해 외형적으로 부당해 보이는 갑의 행위를 규제하려고 하기 보다는 공정거래법과 민법(계약법)에 기초하며 경쟁을 제한하고 을에게 피해를 주는 갑의 행위를 정확히 밝혀 철저히 규제하는 것이 갑과 을,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상생을 위한 정책 아닐까?

‘이분법 프레임’에 갇힌 순환출자 금지

우리나라에서는 창업자나 그 가족들인 지배주주들이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이용해 적은 지분만 소유한 상태에서 그 이상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판받아 왔다. 지배주주가 권한을 남용해 소수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금지해 지배주주가 실질 소유권을 초과하여 행사하는 지배권을 억제해야 소수주주들을 보호할 수 있고 경제민주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경제민주화 달성을 위해 기업들이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주가상승에만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근로자의 후생, 거래 중소기업과의 상생, 지역사회, 연구개발, 환경 등을 위해 투자하며 사회적 공헌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결국 경제민주화를 위해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촉진시켜 경제민주화 달성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주가상승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을 할 수 있는 소유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적대적 경영권 위협에 손쉽게 노출될 수 있는 소유구조를 가진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과 경영권보호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주식, 피라미드 소유구조, 황금주, 상호출자, 순환출자, 포이즌필 등과 같은 경영권 안정화 또는 보호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회적 공헌을 하고 있다는 구글도 창업자가 1주에 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하며 외부 주주들의 적대적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들 중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순환출자를 제외하고는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거나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도 순환출자 마저 금지하는 것이 정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한 상생의 방법인지 의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주요기업들의 경영실적은 상대적으로 좋다. 소수주주들도 당연히 이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순환출자 구조를 오히려 선호하는 소수주주들도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주주들도 있다. 따라서 순환출자 자체를 금지하기보다 순환출자 현황에 대한 공시가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 주주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것이 소수주주들을 위한 정책 아닐까?

순환출자는 지배주주의 지배권 남용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반면 경영권의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양면성을 가진 소유형태다. 따라서 순환출자 정책은 지배주주의 지배권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와 경영권을 안정화 시키는 제도를 각각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지배주주의 권한 남용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우리나라 회사법과 공정거래법, 세법, 형법 등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규제조항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 경영권 안정화 제도들은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배주주의 권한남용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며 순환출자를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경제민주화 정책일까?

이분법 프레임을 넘어 상생 프레임으로

현재 우리사회에서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이분법 프레임이라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s)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강자를 규제해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으로는 약자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분법 프레임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제3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경제민주화 정책은 모든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분법 프레임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제민주화 문제를 풀기 위한 상생 프레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서의 상생 프레임이란 과잉규제를 금지하는 법치주의 원칙에 기반을 두며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해 나가는 프레임이다. 대기업과 지배주주의 불공정행위와 경쟁제한 행위를 철저히 밝혀 엄격히 규제하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외형적으로 부당한 행위처럼 보인다거나 지배주주가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을 크게 하는 소유구조라는 이유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경우 필연적으로 과잉규제로 흐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해관계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만족해하지 못하며 상호간 갈등만 증폭시킨다.

우리사회에 던져진 경제민주화 문제는 2차방정식이 아닌 다차(多次) 방정식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여러 개의 2차방정식을 손쉽게 풀고 뿌듯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와 버려서는 안된다. 2013년 한 해 동안 공들여 푼 해법이 아깝더라도 지울 것은 빨리 지우고 다시 풀어가야 한다. 2014년에는 다차 방정식의 해(解)를 구하기 위한 상생 프레임을 짜야만 한다.
 

시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시험시간이 종료될 것이다. 재시험 기회를 기다릴 만큼 우리경제가 여유가 있지는 않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이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