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흔들리는 조선산업에도 봄은 오는가 下] 대우조선해양·현대상선, 고통분담 동참 기업 경영 정상화 모색할 때
[미디어펜=고이란 기자] "성장통을 회피한 늙어버린 아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된 한국 경제를 비유한 말이다. 이 전 부총리는 지난 1월12일 회계법인 EY한영 주관 '2016년 경제 전망 및 저성장 극복 방안'을 주제로 열린 신년 세미나 기조연설을 통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기관과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칫 기업구조조정을 늦춘다면 부실 기업들의 부메랑이 다른 산업까지 좀 먹을 수 있다는 경고다.

정책금융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으로 이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양사 모두 대형 조선사와 해운사로서 국가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에서 옥석가리기는 중요하다. 회생가능한 기업들의 경우 자율협약과 회생절차 추진으로 기업 정상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 기업들과 채권단은 고통분담을 통해 회사 정상화를 모색해야 한다.

정성립 사장 "대우조선해양, 방수처리 잘된 독"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5조505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채권단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존속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지출과 향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손실 비용을 한꺼번에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 지난 4일 대우조선해양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세계 최초로 건조한 PFLNG SATU의 모습. /사진=대우조선해양


산은 등 채권은행은 강도 높은 실사 끝에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결정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선박 건조와 관련된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수금환급보증(RG) 등 영업활동과 관련한 금융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경우 조기에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도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구조조정의 성공사례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지원이 확정된 4조2000억원 중 2조5000억원 가량이 집행되지 않았다. 자금 수급 상황을 봤을 때 연말까지는 더 손을 벌릴 일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우조선해양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을 살려 정상화로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올해 흑자전환 가능성에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 사장은 “능력도 역량도 없는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이야기가 가장 뼈아팠다”며 “30년 이상 대우조선과 같이한 입장에서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방수처리가 잘된 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잠시 경영적인 판단의 실수로 대규모 손실을 냈지만 올해와 내년에 결과로서 대우조선이 국민이 걱정하는 역량 없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배 만드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일념으로 ‘쉽야드 4.0’ 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독일이 인당 인건비가 최고수준이지만 지금도 제조업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독일이 인더스트리4.0 구호로 사이버공간과 제조업을 연결해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각각의 조직을 연결해 최상의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조선소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7년 상반기에 수주 제로를 기록했지만 하반기에만 150억 달러를 수주한 전례를 들며 하반기에 시장상황이 좋아질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유가가 30달러 선에서 바닥을 찍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며 위축된 글로벌 금융시장도 점차 호전돼 발주사들의 투자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란 분석했다.

현대상선 고강도 자구안 "뼈를 깎는 노력 다할 것"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2일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자율협약을 추진한다. 현대상선이 지난 17일 사채권자집회에서 회사채 1200억원의 만기 연장에 실패했지만 산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겪는 진통이라며 자율협약 추진을 이어갔다.

   
▲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2일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자율협약을 추진한다. /사진=미디어펜 DB


자율협약 내용에는 채권의 원금과 이자에 대해 3개월간 유예, 외부 회계법인 실사 이후 채무재조정 방안 수립 등이 포함됐다. 용선료 조정, 사채권자 등의 채무재조정 동참이 이뤄져야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산은은 현대상선에 대한 이번 조건부 자율협약 추진은 현대상선의 자구안과 해외 선주와의 용선료 조정 협상 등이 진전을 보임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등을 통한 회사의 정상화를 적극 뒷받침하고자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고가의 용선료. 현대상선은 매년 약 2조원의 용선료를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황기에 장기계약을 한 탓에 매년 시세보다 높은 용선료를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협상 베테랑 ‘마크 워커’ 변호사를 선임해 해외 선주들을 상대로 용선료 인하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사재 300억원으로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이사회의 중립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산은은 채권금융기관 차원의 구체적 정상화 방안 도출을 통해 회사의 해외 용선료 조정 작업과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등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 기대했다.

주주들도 현대상선 살리기에 뜻을 모았다. 현대상선은 자본잠식률이 79.8%에 이르러 2017년 상장 폐지될 위기에 놓였지만 지난 18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7대1 감자가 의결되면서 한숨 돌렸다. 감자 후 자본금은 1조2124억원에서 1732억원으로 줄었다.

산은은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 성사가 가시화되는 시점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모든 회차의 공모사채에 대한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형평성 있는 채무조정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산은은 “자율협약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손실최소화와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을 통한 동참만이 회사 정상화의 유일한 방안인 만큼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당부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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