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부·노동자 새벽5시 결의모임·350개 구호 암기
중국서 대출 구걸 나선 중앙당 간부, 도박·성매매하다 숙청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올해 초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 모든 대북 경협이 중단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사상전’을 치르느라 고통을 겪고 있다.

새로운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에 따라 중국이 제재를 완전히 이행할 경우 북한이 다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있는데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5월 제7차 당대회를 앞두고 주민들의 생각을 옭아매는 데 여념이 없다.

올 초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로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이른바 ‘70일 전투’를 내세워 체제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오는 5월7일 열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는 북한의 7차 당대회는 36년만에 열리는 것이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선대인 ‘김정일 시대’에도 거의 안 열렸던 당대회를 개최한다고 선포하고 주민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북한의 매체들은 매일 ‘승리의 5월에로 가자’란 제목의 글을 싣고 주민들의 댐 쌓기와 발전소 등 건설 현장, 탄광, 각종 생산 현장에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고 있다. 

이번 당대회를 앞두고 북한 당국이 벌이는 대중 동원은 처음이 아니다. 1980년 6차 당대회 직전에 ‘100일 전투’,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인 2009년에 ‘150일 전투’ 등 북한은 위기 국면마다 속도전을 내세워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왔다.

그런데 이번 70일 전투는 과거보다 더욱 혹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12~14시간의 고된 노동을 강요하면서 ‘새벽5시 출근’과 ‘350개 구호 암기’ 등 사상전이 특히 강화된 것이다.

   
▲ 북한이 5월에 열기로 한 7차 당대회를 앞두고 주민들을 동원하는 '70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번 70일 전투는 과거보다 더욱 혹독해 하루 12~14시간의 고된 노동을 강요하면서 ‘새벽5시 출근’과 ‘350개 구호 암기’ 등 사상전이 특히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자료사진=연합뉴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22일 “북한의 중앙기관은 물론 공장과 기업소마다 근로자들이 매일 새벽5시에 출근해 결의모임을 갖고 있다”며 “과거부터 속도전을 해왔어도 이렇게 이른 새벽 시간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결의모임을 갖는 것은 처음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새벽 결의모임은 기관으로 출근하는 근로자들은 물론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소식통은 “시장에 나가는 사람들도 아침식사 전 각 구역 동사무소와 근로단체 조직본부에 가서 결의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주민 중 열외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까지도 똑같이 새벽5시에 근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소식통은 “학생들도 새벽 5시에 각 근로 현장에서 진행되는 결의모임에 참석한다”며 “학생들은 꽃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가창대’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일 피바다가극단과 국립연극단 예술인들이 평안북도 내 여러 곳을 순회하고 있는 소식을 전하며 “70일 전투가 힘있게 벌어지고 있는 각지에서 화선선전, 화선선동활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지만 어린 학생들까지 새벽시간대에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이번 7차 당대회를 기해 주민들에게 350여개의 구호를 제시해 암기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매 기념대회 때마다 구호를 정해 주민들에게 외우도록 하고 있으며, 당 창건일과 공화국 창건 정주년 때에도 150~200개 구호였던 것이 이번에 두배로 늘어난 것이다. 

당국이 제시한 구호도 ‘수소탄시험에서 성공한 그 기세로 올해의 총 진군을 힘있게 다그치자!’, ‘70일 전투를 힘있게 벌려 당 제7차대회를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빛내이자!’ 등이라고 한다. 수백개나 되는 구호를 외우는 것은 간부들도 예외가 없고, 매우 힘들어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렇다보니 중앙당 간부가 ‘70일 전투’를 피해 중국으로 나와서 일부러 도박과 성매매 등 불법 행위를 하다가 숙청당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소식통은 “지난 2월26일 중국에 나온 중앙당 민방위부 114지도국 국장이 당대회 자금은 구하지 않고 호텔에서 여성들과 도박을 일삼다가 북한으로 돌아가 해임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숙청당한 그 중앙당 간부는 ‘고양이가 소 대가리를 품었던 심정’이라며 숙청당한 것에 안도했다고 한다. 능력에 안 맞는 직분을 맡아 힘들었다는 말이겠지만 당국의 행사를 준비하는 당 간부가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빌리느라 굽신거려야 하고, 그동안 쌓인 채무로 신용이 떨어져 대출도 쉽지 않게 됐으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들 만해 보인다. 
   
오는 5월에 북한에서 열리는 당대회는 공식적으로 노동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소련이나 중국은 5년마다 전국 대표대회로 개최하고 있으며, 당대회에서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을 결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 중앙위원회나 정치국이 내리는 결정을 사후에 추인하는 형식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집권 내내 당대회를 거의 열지 않았다.
  
사실 지금 김정은 체제에서도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도 없고, 게다가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이 당대회를 여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많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번 7차 당대회를 자신의 시대를 본격 알리는 무대로 삼을 요량이다. 마침 김정일 5주기를 지냈고, 과거 김일성이 1차 당대회를 통해 최고지도자로 공인된 것을 모방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당대회 등 당국의 행사를 치를 때마다 주민동원령을 내려 노동력과 자금을 착취해온 데다 김정은이 아버지도 열지 않았던 당대회를 하겠다며 주민들을 옥죄고 나서니 지금 북한에서는 김정은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김정은 이름대신 미국을 거론하며 “핵 항공모함이니 스텔스 폭격기니 하면서 엄포만 놓는 종이범(종이호랑이)”라고 마음껏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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