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 10명 중 한명만 처벌, 가해자에 관대한 사회

   
▲ 이민정 바른교육권실천행동 운영위원, 한국여성유권자서울연맹 이사
우리나라에서 1990~2002년에 발생한 전체 살인사건의 25%가 가족관계에서 발생했다. 또 피살된 여성의 45%가 남성과 애인 등 이성파트너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이들 여성의 70%가 과거 지속적인 가정폭력과 학대를 당해왔다는 가슴 아픈 연구결과가 있다.

부부폭력 피해자의 63%는 외부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있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구속되는 비율은 0.8%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 91.2%의 피해자는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에게 2차 폭력을 당하고 있다. 또, 2010년 가정폭력범죄 처리현황을 보면, 구속되어도 기소되는 경우는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정리해보면,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 구속은 100건 중 10건 미만이고 구속된 10명 중 9명은 그냥 풀려나고 있다. 대략 가해자 100명 중 1명만이 처벌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특성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처벌을 받게 되도 ‘운이 나빠서’라고 생각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치료가 매우 어렵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1998년 7월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부부간의 문제를 밖으로 내비치거나 외부에서 간섭하는 것이 금기사항으로 여겨질 때다. 때문에, 가정폭력을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법을 잘 살펴보면 제정 당시 이해관계의 대립각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면서 재발방지 억제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최근 열린 행사에서 "성폭력 여성폭력 추방하자!"고 구호를 외치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은 형사절차와 보호절차라는 이원화된 구조는 가지고 있다. 당시 가정폭력에 형사처벌 위주의 개입정책은 가정파탄을 초래한다고 보는 사회적 반항이 컸다. 그래서 소년법의 보호처분을 도입하여 가해자에 대한 국가개입만 확보하는데 그쳤다.

또, 법의 목적을 범죄자의 처벌이 아니라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육성’하는데 두고, 범죄를 범한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행위자’로 명칭하고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니 무조건 참고 살아야한다거나 가장을 전과자로 만들면 안된다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관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혹자는 범죄자 처벌을 위해 제정된 가정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오히려 우리사회가 얼마나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가정폭력 문제는 통계적으로 여성이 폭력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여성문제로 보기도 한다. 페미니즘적 관점은 여성의 개인적 희생을 전제하고 가정의 유지를 목표로 국가가 개입하는 전략에 비판적이다. 가정폭력 초기에 사회적 개입이 일어나 경찰신고가 이루어지면 우선 구속 격리하도록 하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와 기소율을 높이기 위한 사법부의 의식개혁을 요구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적 관점이 남성을 잠재적 가정폭력 범죄자로 규정하고 모든 남성을 계도의 대상으로 접근하면서 오히려 정서적 저항을 일으키고 전체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폭력은 범죄다. 장소가 집 안이든 집 밖에든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사회적 범죄이며 처벌의 대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가정폭력 발생률이 60%에 이르고 있다. 통계로 잡힌 것만 그렇다. 그리고 최소 60%의 가정에서 자라난 우리 아이들은 처벌받지 않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집회, 성폭력, 학교폭력 등의 원인이 국가가 방조하고 있는 처벌 없는 가정폭력문제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민정 바른교육권실천행동 운영위원, 한국여성유권자서울연맹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