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경영 개선·공공개혁 안하겠다는 선언…과거회귀적인 시대착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을 진행 중인 노사정 대표단이 이사회에 노동조합을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잠정 합의했다. 노사정 대표단은 두 공사 노조의 투표를 거쳐 노동이사의 수와 경영협의회 구성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가 당초 통합을 추진한 이유는 누적부채가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서울지하철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통합의 본래 명분은 잊은 채 노조의 권력만 키워주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에 독일을 중심으로 처음 도입됐지만 지금은 시장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로막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울시 공기업 노동이사제 도입이 가져올 문제점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패널로 나선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특임교수는 "서울지하철에 노동이사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19개에 달하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동일한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는 곧이어 650개에 달하는 중앙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으로 확산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 교수는 “박원순 시장이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양대 기관을 통합하면서 방만경영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한데다 경영진에 노동이사를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공공부문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서울시의 이러한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인해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특임교수
공기업 노동이사제 도입, 공공부문 개혁 정면도전이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 중인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내년 1월 통합공사로 출범하면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보도다. ‘2명의 노조원에 상임이사 자격을 주어 경영에 참여케 하는’ 소위 노동이사제 도입에 서울시와 두 공사 노사가 지난 15일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4년 12월 양대 지하철 공기업 통합 계획 발표 당시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했다”며 후속조치로 노동이사제를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첫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박근혜정부는 4대 부문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이는 공공부문이 과도하게 방만하게 운영되어 온 나머지 공공기관 부채가 이미 통제하기 힘든 수준으로 증가해 이대로 가면 증가하고 있는 국가부채와 더불어 재정위기를 초래해 미래세대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 줄 우려가 크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공공기관 방만경영에 대한 강력한 개혁 추진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부채는 2014년 말 594.1조원으로 2013년말 594.9 조원에 비해 경우 8천억 원이 줄었을 뿐이다.  서울지하철 부채는 2013년 말 4조 5천억원으로 오히려 증가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 공공기관 부채 추이(단위: 조 원). /자료=공공기관부채; 기획재정부(2015), 지방공기업; 행정자치부, 서울지하철; 국회 국정감사자료(2014)


이런 가운데 서울지하철의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양대 기관을 통합하면서 방만경영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한데다 경영진에 노동이사를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공공부문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일단 서울지하철에 노동이사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19개에 달하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동일한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이는 곧이어 650개에 달하는 중앙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으로 확산될 개연성이 커서 공공부문 개혁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노동 이사제’ 도입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과거회귀적인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근로자의 이사회 참여는 독일에서 시행되어 왔다. 독일은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바탕으로 한 ‘사회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1951년 철강·석탄·광산 분야에서 경영자와 근로자가 협의해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공동결정제도가 도입됐으며, ‘1976년 공동결정법’에서 이 제도가 확립된 노사공동결정제도는 이사회를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로 나누고, 감독이사회의 이사 반수를 근로자의 대표로써 임명한다. 감독이사는 경영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감독이사의 멤버인 근로자는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말하자면 한국의 사외이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다. 감독이사회의 의장은 자본가의 대표가, 부의장은 근로자의 대표가 맡으며, 가부동수인 경우 의장에게 결정권을 준다.

이러한 독일의 제도는 독일의 경제제도가 은행중심 금융제도를 가지고 은행이 기업경영에 직간접으로 개입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과도 관련이 크다. 따라서 독일의 자본주의는 은행 경영자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여기서는 이해관계자의 한 축인 노동자가 경영이사회를 감시하는 감독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경영진과 은행 간의 있을지도 모르는 유착관계나 은행의 과도한 경영개입여부를 감시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서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기업을 ‘경제적 조직’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조직’으로 인식하고 ‘시장규율’보다는 ‘사회적 규율’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실제로 노동조합과 기업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축으로 하는 영국에 비해 파업성향이 낮아서 독일 경제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해 오기도 했다.

이는 주식시장이 발달되어 시장중심 금융제도를 가지고 있고 기업을 ‘사회적 조직’으로 보기 보다는 순수한 ‘경제적 조직’으로 인식하는 영미와는 다른 제도다. 영미에서는 주주가 중심은 ‘주주자본주의’다. 여기서는 주인인 주주와 주주를 대리해서 경영하는 경영진 간의 주인대리인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지배구조가 발달되어 왔다. ‘사회적 규율’보다는 ‘시장규율’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1970~80년대 독일의 안정적인 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독일식 기업지배구조는 1990년 대 들어 은행중심 금융제도로 부채가 많아진 독일 기업들이 외국기업들에 피인수합병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정보통신기업을 중심으로 혁신적인 벤처기업의 역할이 중요해 지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되기 시작하고 독일에서도 시장중심 금융제도의 발전과 “시장규율‘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공동결정제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역할이 많이 약화되었고 심지어 공기업은 1994년 연방철도청을 민영화하는 등 공기업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사관계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일자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었다. 그러한 개혁이 집약된 것이 ‘어젠다 2010’으로 유명한 ‘하르츠개혁’이다. 하르츠개혁을 주도한 정부는 다름 아닌 사회민주당 슈뢰더 수상이다. 그는 영국 노동당 블레어 총리와 함께 1999년 "슈뢰더 블레어 선언"을 통해 ‘사회적’ 개념보다 ‘경제적’ 개념을 강조한 사민주의의 현대화를 선언했다. 그 결과 정권을 내놓았지만 슈뢰더의 정책을 기민당의 메르켈이 이어받아 추진함으로써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받던 독일은 다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정권여부를 떠나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러한 지도자에게서 진정한 지도자상을 보게 된다.

   
▲ 박원순 시장은 2014년 12월 양대 지하철 공기업 통합 계획 발표 당시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했다"며 후속조치로 노동이사제를 언급한 바 있다./사진=연합뉴스


지금 한국은 국가부채와 공공기관부채가 천문학적이어서 이런 식의 방만경영이 이어질 경우 미래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남겨 줄 것임은 명약관화하고 세계경제가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공기업을 민영화해서 효율성을 높여야 할 마당에 1960~80년대 독일에서 시행되었던 노동이사제 보다도 더 강력한, 단지 감독하는 정도가 아니고 직접 경영에 참가하는 경영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는 발상은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 지도자의  발상이라고 보기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셋째, 혹시 이러한 노동이사제 도입 구상이 1990년대 독일의 개혁 이후 거의 사문화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제도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철학에서 나왔다면 더욱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제는 거의 사문화된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의 몇 구절을 보자. ‘시장경제가 저절로 공정한 소득분배와 재산의 분배를 보장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사회적 노동으로 나오는 수익 가운데 피고용자에게 돌아 올 정당한 몫을 획득하기 위해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공동결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피고용자는 경제적 노예에서 경제적 시민으로 되어야 한다’ (독일 사회민주당 기본강령)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공정한 분배를 위해 노동자의 투쟁을 권고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임금수준은 경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국민소득을 감안한 시간당 임금이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124로 세계 12위로 세계 31위의 싱가포르는 물론 19위의 일본, 22위의 미국보다도 높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단순 명목임금도 대기업의 경우에는 미국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최저임금도 국민소득이나 구매력을 감안하면 한국이 세계 9~10위로 미국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공기업은 이런 한국에서 신의 직장으로 꼽히면서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다. 오히려 그런 방만경영이 594조 원에 이르는 부채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공기업 임금수준이 투쟁을 권고할 만큼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넷째, 독일은 감독이사회이기는 하지만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에 쟁의가 적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노동이사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독일 국민들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이성적이어서 투쟁보다는 타협을 중시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독일철학을 이성철학이라고 까지 하겠는가. 즉 양 진영이 대등한 입장에서 논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타협을 이루어 낸다는 점이다. 이는 전 후 독일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두고 오랜 논쟁을 지속한 끝에 독일 특유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출해 낸 원동력이다. 

이성적이 보다는 감성적이어서 언제나 타협보다는 투쟁과 파행으로 끝나기 십상인 한국과는 다르다. 과거를 돌아 볼 것도 없이 지금의 노사현장과 정치현장을 보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OECD 1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2004~2013년 중 10년간의 파업성향 분석결과를 보면 한국은 덴마크 스페인 핀란드 이태리 다음으로 다섯 번 째로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이런 국가에서 노동이사제도가 도입되어 특히 노동조합 대표가 경영이사로 참여하게 되면 임금상승, 노동경직성 증가 등 한국 노동시장 불안 증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12.5% 까지 급증하고 있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기득권 정규직의 임금 안정, 노동유연성 제고가 한시가 급해서 노동개혁법 통과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때 한국에서 모든 청년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어 더욱 기득권이 증대되고 노동경직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감당할 수도 없는 부채만 남겨진다면 미래 청년세대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특임교수

   
▲ 박근혜정부는 4대 부문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왔지만, 이번 박원순 서울시장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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