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을 보고싶다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예능 만능, 예능 대세다.

방송을 보면 드라마도 예능 풍이고 가요 프로그램도 진행에서부터 출연 싱어, 댄서까지 모두 예능 바래기다. 뉴스쇼 보는 건 친근할 정도가 되었고 정통 토크, 토론프로그램은 멸종 위기다. 심야토론, 100분토론 같은 시사 장르는 편성 구석으로 구겨져 거의 안 보일 정도다. 아나운서도 기자도 탤런트, 가수도 제 얼굴 뒤로 하고 만능 엔터테이너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방송만 예능 칠갑인 게 아니다. 신문, 잡지, 출판, 인터넷 매체들도 앞 다투어 자극하고 간질이고 유인하며 경쾌한 코믹을 추구한다. 예능 천국이라 부를까? 100여 년 전 뉴욕에서 신문왕 죠셉 퓰리처도 가담했던 선정적인 보도와 엔터테인먼트 증가 추세를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불렀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한국사회 예능은 메가 옐로쯤 된다. 이런 중증으로 보는 몇몇 근거가 있다.

첫째 예능으로 학습도 시도한다. 기사 ‘복잡한 세상살이, 예능으로 배웠어요(조선일보 2013.10.15.)’가 잘 다루었다. 예능 <무한도전>을 보고 자신을 두드러진 캐릭터로 만드는 방법과 같은 처세술을 익힌다는 뉴스였다. 리더인 유재석, 박명수에 가린 정형돈 같은 이가 자기 존재감을 높이려 들이는 노력은 조직 내 약자에게도 지침서가 된다는 얘기다.

예능이 인생참고서도 되고 주제별 인생사용설명서 역할도 한다는 얘기다. 이쯤 되니 예능은 인생버라이어티로 자리를 굳혀 동네방네 전파되고도 있다. 부장님, 선배님 건배사도 그렇고 노래방 회식도 교실 수업도, 사장단 회의도 예능 코드 일색이다.
 

   
▲ 지상파 3사가 연예과잉, 만능연예, 메가 옐로이즘에 빠지고 있다. 드라마 가요 등도 온통 예능성으로 변질되고 있다. 제대로 된 토크및 토론프로는 자취를 감췄다. 미디어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선 나쁜 예능, 가짜 예능산업등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긴요해지고 있다. 2013 MBC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아빠! 어디가?' 출연진이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둘째 나쁜 과잉 예능들이 미디어시장을 교란한다. 방송가 연말 시상식 폭주가 절정이었다. 얼마 전 연말에도 시청자들은 대형 예능 백화점 K, M, S 3군데를 드나들기 바빴다. 예능 이벤트들마다 구성도 진열도 엇비슷한데 군중들은 노상 모인다. 이 깊은 습관을 파고들어 남발하는 것이 어워드요 거친 멘트요 광고 뭉치들이다.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 따위 상 종류도 많다. 수상자들도 여럿 호명해 완전 예능잔치로 몰아간다.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나라 방송 전체를 통틀어 주는 최고 어워드는 나오지 않는다. 방송사 각자 가두리 양식 해놓고 집안잔치에 열중하다보니 무대 앞 한 두 줄 대기석만 덩그러니 보이는 처연함도 그냥 노출이다. 수상자도 시상자도 축하 무대 출연자들도 겹치기 순간이동 묘기 해보이며 헉헉 댄다.

김혜수 하지원 이보영이 각각 3사 연기대상으로 큰 인정을 받았지만 시청자들은 내심 한국의 에미상, 오스카상을 꿈꿔본다. 이건 아니라는 민심이 타오른다. 무슨 사내 방송도 아니고 각자 1년 회고하고 대표님한테 회사 상 타는 걸 공중파에 마구 싣는 것 자체가 뭔가 비정상 아닌가 싶다.

한 해 미디어시장 통틀어 최고 권위를 가진 대표적 연기대상, 가수대상으로 모을 수 없는가? 철도파업 때 그렇게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나무라던 지엄한 분들은 이 비정상 미디어들 폭주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다. 우리도 방송의 에미상, 영화 오스카상, 음악 그래미상, 공연 토니상과 같이 한 시기를 대표하고 문화 상징물로 남는 최고의 시상식을 보고 싶다.

이런 초보적인 시청자 권리가 너무 오랫동안 비정상으로 묵살되어왔다. 이런 정상의 비정상화 왜곡은 예능 이벤트 과잉에 집착한 무책임한 미디어들의 아집과 공급자 논리, 소비자 무시, 광고주 우대에 기인한 작태에 다름 아니다.
 

예능 이벤트 과잉에 허우적거릴수록 한국 사람들은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하수도 문화라 할 저급 통속 예능 따위 콘텐츠에 많이 의존할수록 행복감은 반비례한다. 활동사진을 보며 얻는 쾌감은 어디까지나 대리해서 간접으로 부여잡는 가상이므로. 활동사진을 치우고 실제 활동을 해야 몸도 마음도 상쾌해질 수 있다. 활동사진 중독. 한국 사람이 더 많은 미디어, 세계 최고화질을 즐기면서도 각종 행복 지표에서 바닥을 기는 주요 원인일지 모른다.

짜릿짜릿한 콘텐츠도 많고 고화질 시청이다 모바일 소셜 TV다 해서 미디어 풍요도는 한껏 높아졌지만 정작 사람들은 건강한 활동을 멈추고 말았다. 활동사진에 점점 더 의존하는 헛물켜는 군중으로 전락하고 있다. 활동사진이 활동을 앗아가고 압도하는 이 비정상을 만든 손은 나쁜 과잉 예능으로 극단화한 미디어기업들 강박관념이다.

눈물 삼키며 추억하던 신성한 병역 진짜사나이나 동심마저 예능 노리개가 휩쓸게끔 한 강박관념이 주범이다. 나쁜 예능, 가짜 예능, 과잉 예능이 분탕질해놓은 한국 미디어산업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과업은 새해 긴급 현안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