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먹는 신이 내린 직업 국회의원…유권자의 올바른 선택 절실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의 막말로 전국이 떠들썩하고,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공천 문제로 막말과 추태가 난무하고 있다.

트럼프 공화당 경선후보가 막말로 대중의 인기와 비난을 동시에 몰고 다니고 있는 가운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트럼프 후보에게 보낸 편지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어린이는 학교에서 '뉴스를 보고 우리 주위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파악해 보라'는 선생님의 과제를 받고 트럼프에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어린이 눈으로 보는 트럼프 후보의 막말

이 초등학생 어린이는 트럼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당신에 대한 많은 기사들을 읽고 TV에서도 많이 봤는데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어른들이 투표를 하기 때문에 당신의 연설이 어른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란 걸 알지만, 우리 어린이들도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의 얘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과 언젠가는 우리도 투표를 하게 되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라고 훈계했다.

이 어린이는 편지 말미에 "이제 이 나라의 어린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우리는 곧 미래입니다. 우리가 우러러보고 존경할 수 있는 친절하고, 정직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저는 올해 우리 학교 학생회 일을 맡고 있는데 모든 학생으로부터 존경 받는 학생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중에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될 것이며, 또 경찰도 되고 싶은데, 아무튼 당신이 가르쳐준 것보다는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과 선생님과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쳐 주신대로 살 것이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런 훌륭한 어른들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꼭 기억하도록 하세요!"라고 꼬집었다
 
   
▲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의 막말로 전국이 떠들썩하고,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공천 문제로 막말과 추태가 난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TV 캡쳐

우리 정치판의 막말과 배신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전투구와 이합집산의 추태를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판의 막말들도 심심치 않다. 트럼프 경선후보보다도 더 심한 막말 꾼들이 우리 정치판에 즐비하다. 트럼프 경선후보가 미국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의 막말은 옳던 그르던 유권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 또는 소신을 무례할 정도로 확신에 찬 어조로 쏟아내는 폭탄적 막말이다. 이에 비해 우리 여야 정치인들이 뱉어내는 막말들은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의 표현이 아니라 뻔뻔한 궤변이거나 남을 폄훼(貶毁)하는 치졸한 막말이 대부분이다. 이 점에서 트럼프의 막말과 우리 정치판의 막말의 차원이 다르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말까지 들으며 지난 4년간 국민을 실망시켜온 19대 국회가 막판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법안 처리는 아예 내팽개친 채 공천 관련한 힘겨루기와 잡음이 도를 넘고 여야 각 계파간 밥그릇 싸움은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대법원 판결도 부정하며 교도소에 입성(?)한 후 추징금마저 안 내려고 꼼수를 부리는 사람도 국무총리까지 지낸 19대 야당의원이었고, 공천 탈락 즉시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사람도 국무총리를 지낸 7선의 야당의원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나랏일을 좌지우지해왔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공천에서 탈락한 현직의원들은 낙천 즉시 탈당하거나 재심청구나 집단시위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탈당 후 자신의 선거구에서 상대 정당의 공천을 받는 배신조차 서슴지 않은 3선의 여당의원도 있다. 나라나 당(黨)을 위해 정치를 하자는 게 아니라 오로지'신(神)이 내린 직업'인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당적을 갖자는 볼썽사나운 몰염치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국회의원이 된다면 20대 국회라고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신(神)이 내린 직업' 따먹기 식의 선거

"술주정뱅이와 어린이만이 진실을 말한다(Only drunks and children tell the truth)"라는 말이 있다. 캐나다 극작가 Drew Hayden Taylor가 1998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이 말처럼 대다수 유권자들이 정치판에 거짓말과 막말이 넘쳐나도 의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추가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공언하는 등 나라의 안보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 있고,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여야 모두 오로지 '공천'이라는 먹이를 놓고 물고 당기는 쌈질에만 여념이 없다. 심각한 경제 불황과 우리 역사상 가장 긴박한 남북대치 상황에서 치러지는 총선에서 여야간 안보와 경제 문제에 관한 정책논쟁은 없이 '공천' 타령만 하는 정당들이나 이를 무심히 지켜보는 유권자 모두 희한하지 않은가? 총선이 결국 정당과 후보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속여가며 벌이는 '신(神)이 내린 직업' 따먹기 싸움인 셈 아닌가?

이번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던 임수경, 김현 의원 등과 북한 두둔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사방에 막말을 퍼부었던 정청래 의원이 탈락했다. 여당에서도 당대표를 겨냥한 막말로 물의를 일으킨 윤상현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국민들은 여야의 이런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이런 정치인들을 뽑은 장본인은 바로 유권자인 국민이다.

   
▲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뒤 탈당한 3선의 진영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권자가 바뀌어야 정치판이 바뀐다

트럼프 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위의 어린이처럼 어린이의 눈은 순수하고 올곧다. 맹자는 "대인(大人)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했다. 설령 위의 편지가 아이의 부모가 정리해준 것이라 하더라도, 이 편지 내용을 통해 미국 유권자들의 가치관과 정치인들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우리 국회의원들의 막말 대신에 국회의원을 빗댄 우스갯소리 하나를 살펴보자. "여의도에 있는 한 이발소에서 신부(神父)와 경찰관과 국회의원이 이발을 했는데, 이발소 주인이 '주님과 지역사회와 나라를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라며 돈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이발소 앞에는 신부가 보낸 감사편지와 구약성서 한 권, 경찰관이 보낸 감사 쪽지와 도넛 한 봉지가 놓여 있었으며, 그 뒤에 십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줄 서있었다……" 이 우스갯소리처럼 우리 국회를 TV프로 '봉숭아 학당(學堂)'에 비유하는 말도 있지만, '봉숭아 학당'은 웃음을 주지만 우리 국회는 분노를 준다. 그래서 요즘은 '봉숭아 악당(惡黨)'이라는 말도 나돈다.

북한의 광적인 도발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전투구의 내홍(內訌)이 심각한 정치판에서 최근 서울 서초갑 새누리당후보 경선에서 아쉽게 패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새누리당의 서울 용산 공천 제의를 고사(固辭)한 처신은 신선한 충격이다. "어제까지 '서초의 딸'이라고 하면서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이 지역구를 옮기는 건 서초 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서 정치의 도(道)가 보인다. 낙천 후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자신의 선거구인 용산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은 현직의원의 경우와는 극단적인 대조이다.

우리 국민은 김정은의 광기에 본격적으로 대처하면서 수렁에 빠진 나라의 경제를 살려야 할 중차대한 짐을 진 제20대 국회를 탄생시키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맞고 있다. 유권자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만 이 나라의 '막가파' 식의 정치풍토를 바로잡을 수 있다.

정치 9단들은 이세돌 9단의 정석을 배워야

북한의 무력위협과 총선 준비로 사회가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 국민들은 한동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온통 들떠 있었다. 이세돌 9단은 컴퓨터와의 대결이라는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집중, 절제, 냉정, 겸손함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알파고'에 연이어 세 차례를 패한 후 "이세돌이 졌을 뿐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는 이세돌의 말은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겸손함과 인간이 인공지능에 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제4국에서 '알파고'를 이겼지만, 이기는 길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려는 그의 진지함과 프로근성, 그리고 패자로서의 당당함과 승자로서의 겸손함을 지켜낸 그의 언행은 인간의 능력과 위엄을 과시한 대인(大人)의 모습이었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인가? 공천에서 탈락한 여당의원들이 당적(黨籍)을 바꿀 수 없는 후보등록 개시일 전날(3월 23일) 밤에 줄줄이 탈당했다. 이 중에는 당에 대해 '공천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낸 의원도 있다. 국민의 당혹감 반 기대 반 속에 "당(黨)을 바꾸겠다"며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을 맡은 사람은 당내 기득권층에 밀려 결국 자신의 '비례대표 2번'만을 챙기며 눌러앉은 꼴이 되었다.

공천위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는 여당 대표가 일부 지역구를 '무(無)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며 공천장에 당대표 직인(職印)을 찍어주지 않는 '옥새(玉璽) 반란' 해프닝은 가히 코미디 수준이다. 국회의 방종(放縱)이 오죽했으면 참다 못한 국민들이 "국회 일하라"라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대통령까지 서명에 동참했겠는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 글은 굿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철영]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