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도 정강도 내팽개친 채 오로지 배지만…낯 뜨거운 야권연대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당이 시대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말은 이념과 정강정책도 내팽개치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변신을 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제1 야당 대표가 "일관성이 밥 먹여주는 줄 아느냐"며 뻔뻔하게 굴어도 정당들의 행태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이 지역 야권 단일후보로 뽑힌 노회찬은 불과 십수개월 전인 2014년 재보선 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를 주저앉히고 동작을 지역구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적이 있다. 그때 막판까지 단일후보를 놓고 기동민과 대결하던 노회찬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단일화가 어느 쪽으로든…그렇지 않다면 저는 결과에 관계없이 사퇴해서 그렇게라도 해서 새누리당 심판을 하자는 게 저의 뜻이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누가 되든 새누리당 심판만 하면 된다던 노회찬은 보기 좋게 나경원에 패배했다.

노회찬의 본래 지역구는 노원병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 노원병에서 당선됐다가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폭로로 통비법 위반에 걸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노회찬은 그때도 단일화라는 걸 거쳐 야권단일후보로 뽑혔었다. 그랬다가 2년여 뒤 재보궐 선거 때는 지역구를 옮겨 동작을에 출마해 떨어지더니 횟수로 2년여 뒤인 올해 총선에선 아예 연고도 없는 먼 경남의 지역구까지 날아가 야권단일후보로 또 뽑혔다.

동작을 출마 때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동작구민들 마음을 어떻게 얻을 생각이냐"고 질문하자 "저는 대한민국 출신"이라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답했던 노회찬은 이번엔 창원시 성산구민에게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필자가 많고 많은 사례 중에서 굳이 노회찬의 예를 든 것은 야권단일화란 이름으로 이 나라 야당들이 벌이는 짓들이 얼마나 타락한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 야권단일화에는 정당의 이념이고 정책이고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입만 열면 운운하는 이 나라 주인, 국민도 별 안중에 없다. 진짜 배신의 정치는 지금 문재인이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7·30 국회의원 보궐선거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같은 해 2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시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과 함께 시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라 말아먹을 '막장' 야권단일화

야권단일화에는 정당의 이념이고 정책이고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입만 열면 운운하는 이 나라 주인, 국민도 별 안중에 없다. 그러니 노회찬식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새누리당만 이길 수 있다면 악마에 영혼이라도 팔수 있을 것만 같은 강렬한 적개심, 일그러진 권력욕과 연대의식만 있을 뿐이다.

더민주당은 울산 동구, 북구에서 단일화로 구 통합진보당 출신들에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울산으로 달려간 문재인은 "야권승리를 위해서는 1대 1 구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단일화 후보를 지지해 달라"며 지원했다. 반역적 종북정당으로 헌법재판소가 강제 해산시킨 통진당 출신이라도 새누리당만 이길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태도다.

지난 1월 더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했다가 경선에서 탈락하니 "정체성이 불분명한 정당이 됐다"며 다시 탈당하고 더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했다는 어떤 야당 의원도 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이 나라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가 막힌 블랙코미디다. 상식을 가진 국민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구태란 구태가 야권단일화란 이름으로 때마다 벌어지고 있으니 이 나라 정치후퇴가 갈수록 저질화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체성도 이념도 다른 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벌이는 야권단일화야말로 이 나라 정치를 말아먹는 막장 중 막장이다. 선거 때마다 그 모든 걸 무시하고 단일화란 이벤트를 벌이는 국가가 세계에서 우리 말고 또 있나. 한 표는 단일화 후보에게 달라 하고 다른 한 표는 우리 정당에게 달라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긴가.

이거야말로 표 나눠먹기 아닌가. 이게 민심을 받드는 정치인가 아니면 민심에 엿을 먹이는 행위인가. 이 과정을 거쳐 나온 19대 국회처럼 야권 단일화는 아마 차기 국회도 역대 최악의 국회, 최악의 국회의원들이란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다. 묻지마 단일화가 자꾸 반복되니 당연한 일이다. 정당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민주주의를 깨부수는 일이 반복되는데 안 그렇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러면서 이 나라 제1야당의 수권능력은 계속 약화될 것이다. 이건 그동안의 야권단일화 역사적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또 단일화다. 정말이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노무현이 갔던 승리의 길 잊은 문재인

문재인은 29일 자기 SNS에 이런 말을 썼다. "이미 늦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도 성과없이 흘러간다면 야권 전체는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도 했다. "수도권내 야권 전체 지지율은 새누리당보다 10%포인트 이상 높고 민심은 새누리당 심판인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승리의 그릇에 민심을 담아야 한다." 이념도 정책도 뭣도 다 무시하는 그의 무개념이 오롯이 드러난다.

김종인의 말대로 문재인이 정말 정직한 정치인이라면 지지율로 표계산을 할 게 아니라 야권이 모두 합치자고 해야 한다. 때마다 야권연대 난리부르스로 국민 진심 피곤하게 하지 말고 말이다. 그게 정상이고 상식이다. 문재인은 SNS에 "김대중 대통령이 내가 가진 70%를 버려서라도 함께 가야 한다고 유언하신 그 길로 가야한다"는 말을 했다.

DJ 앞세워 괜히 국민의당 후려칠 생각 말고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부터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동안 김종인 앞세워 잠수 타더니 이제와 나대지 말고 진짜 노무현 정신을 되새겨 보란 말이다. 최소한 노 대통령은 문재인처럼 정치를 계산적으로 하지 않았다. 진짜 배신의 정치는 지금 문재인이 하고 있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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