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고 잘사는 한국 증오하는 좌파의 분열된 자아 표출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촛불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광화문 세종로가 꽉차서 덕수궁 담벽을 따라 간신히 걸어가면서 몇몇 시위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맥주 집에서는 4~5살 되는 아이가 'MB(이명박전대통령) 아웃'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연유로  한국 사회의 이런 모습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떤 학자도 이런 폭발적 집단최면, 집단망상, 집단광기를 대중사회의 병리로, 혹은 사회심리학적으로 혹은 정치이론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 그 자체가 망상인 촛불시위를 칭송하는 잡문, 논문, 기사 뿐입니다. 
교학사 한국사 역사 교과서의 교재 채택을 둘러싼 폭력적 철회사태도 학자들이 연구하고 분석해야 할 상황입니다. 전교조와 좌파언론의 반미주의와 집요함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2차 대전전에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에도 돌격대들이 거리에서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 폭력의 배경은 개인적 이해를 떠나 나치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었지만 폭민들의 심리 밑바닥에는 삶에 대한 깊은 좌절이 있었습니다.
그 좌절을 잊고 존재의 의미를 되찾게 해준 것이 나치운동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386세대의 좌절감을 덮고 있던 성소의 베일을 교학사 교과서가 '팩트'라는 이름하에 거칠게 걷어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한국이 망하지 않고 성공한 나라가 되었고 이들이 바로 그 나라에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서 잘 살아도 잘 사는 것이 고통인 세대입니다.

좌파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는 J씨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은 위치에서 잘 살고 있는 386세대들과 술을 마시고 이들이 취하면 마음 속으로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이 저절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좌파사관의 세례를 받은 세대에게 지금 현재의 삶은 20대의 순수에 대한 부정이고 과거의 순수란 반미, 반일,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반이승만, 반박정희에 눈을 떴을 때의 경이감, 수능과 획일식 교육에서 사육되었던 그들이 부모와 형 세대의 더러운 모습을 질타할 수 있을 때의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북한 독재자 김일성이 반공주의의 허구에 덮혀 있었던 '진실'이었다고 들었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성인식을 한 것입니다.
새가 알에서 나와 처음 본 어미를 영원히 기억하듯이 말입니다.

좌우의 역사논쟁이 팩트로 해결이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는 그들이 믿었던 그 많은 것이 허구였다는 것을 알수 있더라도 그것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것을 허용할 수가 없습니다.
 

몸은 한국사회에서 생존을 유지하지만, 정신은 그들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해주는 허구적 한국현대사에서 숨 쉬고 있는 분열된 자아입니다. 마치 히치코크의 영화 <사이코>의 주인공처럼.

교학사의 한국사 교재를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전교조와 좌파들의 폭력성 시위와 압력에 두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학사 교재를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교학사 교과서 구매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민과 민간부분에서 최대한 버텨서 성공한 우리역사에 대해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것입니다. /홍성기 아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