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KIST, 세종대왕 영릉, 국립수목원, 선진국경영의 씨앗

   
▲ 권오용 전 SK그룹 사장, 현 효성그룹 상임고문
한국경제개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홍릉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시로 옮겨간다.

1971년 3월에 설립되었으니 42년만의 이전인 셈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입안과정에서 경제연구소의 필요성을 절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설립의 기원이었다. 박전 대통령은 사재 100만원을 건립비로 내놓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당시 주택복권의 1등 당첨금액이 10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KDI는 왜 홍릉에 세워졌을까? 그리고 홍릉에 있는 다른 국책기관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KDI 주변의 구글 맵을 한번 봤다.

70년대 홍릉의 국방과학원 (ADD)에는 둘째 형님께서 근무하셔서 내가 물건 전해주려고 몇 번 갔던 기억이 난다. 또 지금 우리 둘째 아이가 KDI 주변의 KIST(과학기술연구소)에 다니고 있어 홍릉일대에 있는 여러 개의 국책기관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경영 과제들을 개발하기위해 조성한 홍릉단지. 이곳엔 경제개발 산실인 KDI, 과학기술메카인 KIST, 자주국방의 씨앗을 뿌린 ADD, 문화창달과 문화융성을 위한 세종대왕 영릉, 녹화사업을위한 국립수목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구글 맵을 보니 홍릉 주변에는 1971년에 설립된 KDI, 1965년에 설립된 KIST, 1973년에 설립된 세종대왕기념관, 1970년에 설립된 국방과학원(ADD), 그리고 197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 된 국립 수목원이 자리해 있다. 찬찬히 이들 기관의 하는 일을 되짚어 봤다.

KDI = 경제개발, KIST = 기술입국, 세종대왕 = 문화창달, ADD = 자주국방, 국립 수목원 = 자연보호. 아! 우리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이었다. 이들 구호는 모두 국가의 목표였고 이를 달성하면 우리가 잘 살게 된다고 거의 외다시피 한 구호들이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을 몰아내기 위해 경제개발을 서둘렀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수출실적만 놓고 보면 7대 수출국가가 됐다. KDI는 국가의 경제개발의 중추였고 씽크 탱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자나깨나 북한의 침략위협에 시달리던 시절,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보체제 속에서 자주국방은 너무나도 절실한 과제였다. ADD가 만들어졌던 시절, 총알도 못 만들던 우리는 한국형 미사일을 개발했고 그 저력으로 이제는 전투기와 장갑차, 군함까지 수출하는 세계적인 군사강국이 됐다.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 국군을 월남에 파병할 때, 당시 미국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무엇이든 부탁하면 하나 들어 주겠다고 했다. 당시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은 나랏돈 빼먹기 바쁠 때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자들을 양성할 연구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존슨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KIST의 본관은 존슨홀로 명명돼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5대 R&D 대국으로 성장했다. 존슨 대통령이 꿈도 꾸기 어려운 발전을 해냈다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를 성역화 한 박정희 대통령은 동시에 세종대왕의 영릉도 성역화 단장을 했다. 그리고 군인출신이어서 문화를 무시한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세종대왕기념관이 홍릉에 자리잡은 이유는 아마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창달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잘 사는 길이라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화창달은 문화융성으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승계했다.

자연보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다른 관심사였다. 경제개발계획은 5년으로 하면서도 산림 녹화를 위해서는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구호가 어디든 걸려 있었다. 기업체들은 1사 1산, 1사 1천으로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가꿨다. 식목일을 공휴일로 하고 학생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심었다. 그것도 모자라 11월의 어느 날을 '육림의 날'을 정해 자기가 심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는지 가서 점검하기도 했다. 헐벗었던 산하는 이제 과밀을 걱정할 정도로 숲으로 가득 찼다. 국립수목원이 홍릉에 있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자연보호가 대통령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홍릉에 집적시켜놓은 당시의 국가경영과제들은 이렇듯 훌륭한 성과를 냈다. 세계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사람수가 너무 많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할 때 사람만이 우리의 자원이라는 걸 홍릉에 모인 나라의 인재들은 입증해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에 자족하고 있기에는 지금부터의 과제가 너무나 많다.

경제개발은 이제 양극화 해소, 선진 복지국가 달성이라는 패러다임의 질적인 변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주국방은 북한에 대해서 뿐 아니라 급변하는 동북아정세 속에 슈퍼강대국들 사이에 놓인 우리의 위상과도 연결해야만 한다.

문화는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 속의 문화를 가꾸고 보듬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다. 자연보호 역시 개발과 환경의 조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지구환경 과제와도 연결돼 있다. 과학입국은 이제 추적자(Follower)의 위치가 아니라 선도자(First-Mover)의 위치를 굳힐 수 있는 원천기술의 확보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숙제들은 우리가 지난 50년간 이룬 기적으로 불리우는 성공이 있었기에 나타난 것들이고 이들 과제를 해결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도약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잘 나가는 경제가 정쟁에 발목 잡혀있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홍릉에 정치문화연구소라도 하나 열었더라면 어땠을까? 정치의 선진화를 국가과제로 제시했더라면 지금보다도 훨씬 나아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왜 박 전대통령은 이걸 안 했을까? 어려워서였을까? 아니면 보기 싫어서였을까? 정쟁에 볼모가 되어 있는 지금의 나라 형편을 보면 그 아쉬움이 곱절로 되돌아 온다.  /권오용 전 SK그룹사장, 효성그룹 상임고문